서울 신촌에는 무려 50년간 매운라면을 판 가게가 있습니다. 한 때 파는 라면의 이름이 ‘최루탄 해장라면'이었다고 하네요. 최루탄. 이 세 글자만 들어도 지난 1980년대 작은 땅덩어리의 한 나라에서 민주사회를 열망하던 대학생들과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폭력도 마다하지 않던 군사 정부 간의 치열한 다툼의 장면이 떠오릅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아직 세상에 없었던 저는 역사시간을 통해 배우거나 다큐멘터리, 외신 뉴스 등을 통해 당시의 실상을 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 대한 저의 기억은 최루탄, 뿌연 연기,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대학생 등 비교적 자극적인 장면에 집중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만, 이 모든 장면들은 사실이었기에 당시를 떠올리면 가슴 한 켠이 찡 아려옵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산지이자 대학생들의 거점이었던 신촌의 이 라면가게는 당시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졌을 때 함께 병원을 지켰던 학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도 하는 등 그 현장의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 연세대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금도 신촌에 들를 일이 있으면 이 가게를 찾는다고 하네요. 한 때 ‘최루탄 해장라면'이었던 라면의 이름이 지금은 최루탄은 빠진 채 그냥 ‘얼큰한 해장라면' 혹은 ‘매운 해장라면’으로 바뀌었고, 사장님도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50년간 한 자리를 지켜오면서 한 도시, 한 나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더보기타이베이
6월 21일인 오늘은 24절기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입니다. 태양이 계속 북쪽으로 이동하다 황도상 가장 북쪽에 위치해서일까요. 태양이 가장 북쪽에서 직사광선을 내리 꽂은 듯 하지인 오늘 타이베이는 무척 무더운 날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최고기온은 35도를 육박하는 데다 체감 기온은 무려 41도까지 올라갑니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너무나 예뻐 무더위로 인한 짜증과 불편함을 잠시 식혀주기도 합니다. 낮밤 할 거 없이 3~4월이면 야외 공원의 잔디 밭을 가득 채웠던 타이베이 시민들은 여름의 시작인 입하를 지나 한여름의 절정을 알리는 하지가 되자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하고, 실내 쇼핑몰이나 음식점들은 무더위를 피해 놀러 온 시민들로 가득합니다. 물론 백화점과 같이 에어컨 시원하게 틀어주는 실내 공공 시설도 좋습니다만 이런 무더위 때는 시원한 여름바다도 떠오르죠.
...더보기“사람의 목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는 표현이 새삼스레 떠올랐습니다. 매우 섬세한 작은 소리에서 시작해 시간 차를 두고 소리의 층을 입체적으로 쌓아 나아가다 모든 단원들이 한꺼번에 우렁차게 내는 소리가 4층 규모, 3천 여 석의 공연장을 가득 메울 때, 그 현장에 있던 청중의 한 사람으로서 감동의 깊이는 말로 형용하기 불가능할 정도의 지경까지 이르더군요. 작은 문자로 공연 레퍼토리의 정보를 빼곡하게 써내려간 팜플렛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장소에서 무대의 소리를 온몸으로 직접 만끽하는 것, 그 황홀감을 느끼는 것만이 중요했습니다.
...더보기4월 5일 오늘은 24절기 중 다섯 번 째 절기인 청명입니다. 하늘이 맑아진다는 뜻의 청명은 봄밭갈이를 하며 봄 농사 준비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보통 양력으로 4월 4-6일 중 하루 인 청명은 타이완에서 중요한 국가공휴일 중 하나입니다. 청명절을 타이완에서는 소분절(掃墳節)이라고도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무덤을 찾아가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내죠. 타이완의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올해 청명절은 무려 5일간 쉴 수 있는 한 해 몇 안되는 연휴 기간으로 더 와닿을 겁니다. 이 연휴 기간을 놓치지 않고 미리 항공권을 구매해 가까운 일본이나 한국, 동남아로 여행을 다녀오는 타이완 사람들도 많더군요. 타이완 국내에 남아 성묘와 벌초를 하러 가는 사람들은 청명절 당일이나 그 전에 조상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국내 인구 이동이 많다보니 정체된 고속도로에서 6-7시간을 허비하는 일도 여전히 있다고 합니다. 한국 같으면 설이나 추석 때 벌어지는 일들이 타이완에서는 바로 오늘 청명절에도 벌어집니다. 그만큼 청명절은 타이완 사람들에게 중요한 공휴일 중 하나이지요.
...더보기지난 주 이노 카노리, 토리 류조, 모리 유시노스케 등 일본 인류학자들의 타이완 원주민 답사 과정과 그 연구물들을 살펴보며 일본인이 어떻게 타이완 원주민들과 조우했는지 살펴보았는데요. 이번 주에는 일명 “타이완 미술계의 아버지”이라고 불리는 서양화 화가 이시카와 긴이치로(石川欽一郎, 1871-1945)의 시선을 통해 현재 타이완의 수도인 타이베이의 도시화 과정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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