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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목조 건물(木樓)의 음악 교실에서 부른 합창의 순수함을 되살리는 뮐러 합창단(木樓合唱團)의 2023년 정기공연

  • 2023.06.07
어반 스케쳐스 타이베이
6월 5일(월) 타이베이 국가음악청에서 열린 뮐러 합창단(müller chamber choir, 木樓合唱團) 2023년 정기 공연 ‘컨템포러리의 극치, 금빛의 하루’(極致當代.金色之日)의 커튼콜 장면 - 사진: Rti 한국어방송 서승임

“사람의 목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는 표현이 새삼스레 떠올랐습니다. 매우 섬세한 작은 소리에서 시작해 시간 차를 두고 소리의 층을 입체적으로 쌓아 나아가다 모든 단원들이 한꺼번에 우렁차게 내는 소리가 4층 규모, 3천 여 석의 공연장을 가득 메울 때, 그 현장에 있던 청중의 한 사람으로서 감동의 깊이는 말로 형용하기 불가능할 정도의 지경까지 이르더군요. 작은 문자로 공연 레퍼토리의 정보를 빼곡하게 써내려간 팜플렛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장소에서 무대의 소리를 온몸으로 직접 만끽하는 것, 그 황홀감을 느끼는 것만이 중요했습니다. 

6월 5일 월요일 저녁 타이베이 국가음악청에서는 타이완의 대표 남성 합창단체인 뮐러 합창단(müller chamber choir, 木樓合唱團)이 2023년 정기공연을 했습니다. 이번 정기 공연은 5월 28일 자이를 시작으로 6월 5일 타이베이, 17일에는 화롄에서 공연하는데, 특히 자이와 화롄에서는 각각 자이 기독교 병원 65주년 기념 공익 음악회와 메노파 기독교 병원 75주년 기념 공익 음악회에 출연해서 공연 수익금을 병원에 기증한다고 해요. 우연이겠지만, 산지와 시골 마을에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각각 자이와 화롄에 설립된 두 병원은 공교롭게도 같은 북회귀선 23.5도에 위치한다는 사실도 참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올해 뮐러 합창단 정기공연의 제목은 ‘컨템포러리의 극치, 금빛의 하루’(極致當代.金色之日)입니다. 의미심장하죠.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땐 추상적이어서 그 의미가 와닿지 않았지만, 직접 공연장에서 레퍼토리를 듣고 제목을 다시 상기해보니 ‘극(極)치(致)당(當)대(代), 금(金)색(色)지(之)일(日)' 8 글자의 한자 한 글자, 한 글자가 또렷하게 다가오더군요. 이번 공연 레퍼토리는 미사곡 등 기존의 오래된 종교 합창음악이나, 민요 등 작은 마을에서 구전된 노래에 현대적인 창작 기법을 더해 음악의 새로운 빛을 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부의 곡은 모두 가톨릭 미사곡의 가사와 그 종교음악 특유의 색채를 갖고 있었죠. 알레그리(Allegri)의 '미세레레'(miserere)나 그레오리오 찬트 등을 연상하시면 어떤 느낌인지 이해가 되실겁니다. 굵은 화음 대신 얇고 긴 선율이 진행되면 그 위에 또 다른 선율이 오묘한 화성감을 가지며 진행되죠. 이 때 동시에 진행되는 두 개 혹은 서너 개의 선율이 빚어내는 화음은 인간이 상상하는 아름다움의 경지를 초월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게다가 남성 합창단이 내는 특유의 미성은 이 신비로움을 한층 더 끌어올려주죠. 그리고 2부에는 종교음악이 아닌 세계 곳곳에 숨어있는 작은 시골마을의 색채감 있는 민요 선율을 가져다 새롭게 창작한 합창작품을 선보였습니다. 1부가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종교 음악을 선보였다면 2부에서는 꽤 현대적인 사운드, 이를테면 박수나 발동작, 휘파람 등 가창이 아닌 다른 신체 움직입에서 나는 소리와 여기에 입으로 내는 바람소리, 외침 등 목소리가 가진 다양한 사운드가 덧입혀졌습니다. 그리고 1부의 종교음악에서 드러나는 전통적인 화성진행 대신 조성이 없는 무조성의 진행도 빈번하게 등장했죠. 

1999년에 창단된 뮐러 실내 남성 합창단은 20여 년 간 타이완의 남성 합창단을 대표하는 목소리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3년부터 현재 합창단의 지휘자이자 예술감독인 펑멍셴(彭孟賢)이 합창단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하면서 큰 도약을 이루었는데요. 2018년부터 지난 3년간 중화민국 국가문화예술재단으로부터 후원을 받았고, 2016년에는 문화부 공연예술단에 선정되어 타이베이시의 우수공연예술단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국내뿐만이 아닙니다. 2015년에는 제9회 요하네스 브람스 국제 합창제에서 남성 합창 부분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2016년에는 러시아 소치에서 개최된 제9회 세계 합창 대회에서 남성 실내 합창 및 아카펠라 부문에서 금메달을 받기도 했다는군요. 이듬해인 2017년에는 매년 열리는 싱가포르 국제 합창제에서 2회나 공연하는 영광을 얻고, 이어 중국 푸저우와 샤먼에서 각각 열린 제1회와 2회 양안 합창 세미나에 초청받기도 했습니다. 2018년에는 시애틀을 시작으로 달라스,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투어를 하기도 했죠. 이렇게 타이완 국내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상당한 명성을 자랑하게 된 타이완 뮐러 실내 남성 합창단은 전세계 합창 문화를 선도하는 인터컬처(INTERKULTUR) 순위에서 상위 1,000개 합창단 중 7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뮐러 합창단은 현재 타이완 남성의 목소리를 독특한 사운드 레퍼토리로 글로벌 합창 문화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뮐러 합창단이 올해 정기공연에서 선보인 작품들의 출신 또한 다양했습니다. 작품의 작곡가들을 보니 이탈리아 출신의 로렌조 도나티, 슬로베니아 출신의 다미얀 모츠니크, 라트비아 출신의 프테리스 바스크, 프랑스 출신의 클로드 드뷔시까지, 이탈리아와 프랑스, 북부 이탈리아 옆에서 아드리아 해를 마주하고 있는 슬로베니아, 그리고 북유럽 발트해에 인접해있는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까지 ‘현대 남성 합창’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평소에는 쉽게 접하지 못하는 여러 유럽 국가들의 민요 선율과 그곳 작곡가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방송에서 모든 곡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6월 5일 타이베이 국가음악청에서 타이완 뮐러 합창단이 부른 레퍼토리 중 몇 곡을 꼽아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데우스 인 아디우토리움 메움’(Deus in adiutorium meum)입니다.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라는 뜻의 라틴어인 이 제목은 예로부터 가톨릭 교회에서 묵주기도를 드릴 때 성호경을 긋고 이어지는 시작기도에 나오는 문구 중 하나입니다. 17세기 종교음악을 다수 작곡한 이탈리아 작곡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97-1643)도 1610년 작곡한 ‘성모마리아를 위한 저녁기도’라는 작품에서 이어지는 폭발적인 합창이 등장하기 직전, ‘하느님 저희를 구하소서’라는 문구로 독창으로 곡을 시작하기도 했죠. 뮐러 합창단이 이 날 선보인 곡은 리투아니아 출신 작곡가 유리유스 칼카스(Jurijus Kalcas)가 작곡한 곡으로 1956년생인 이 작곡가는 현대적 기법으로 과거 종교음악을 재창작해내었습니다. 작곡가 본인도 1991년부터 리투아니아 맹인협회의 혼성 합창단의 지휘자와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서유럽 고전 작품과 리투아니아 작곡가의 다양한 작품으로 해외 투어도 다닐 정도로 합창 음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더군요.  

다음으로 소개할 작품은 ‘칸토 델라 테라’(Canto della Terra)입니다. ‘대지의 노래’를 의미하는 이 작품은 이탈리아 출신 팝 테너인 안드레아 보첼리도 1999년 같은 제목의 노래를 앨범으로 낸 바 있는데요, 뮐러 합창단이 선보인 ‘대지의 노래’는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 로렌조 도나티(Lorenzo Donati)의 작품입니다. 

다음으로는 ‘하얀 조각들’을 의미하는 ‘Baltais fragments’라는 작품으로 남성 합창을 위해 라트비아 출신 작곡가 프테리스 바스크(Pēteris Vasks, 1946-)가 1978년에 작곡한 이 곡은 라트비아의 작은 시골 마을인 아이스푸테(Aizpute) 출신의 작곡가가 자신의 마을을 상징하는 여러 소재의 선율을 사용해서 민속적이면서도 세련된 작품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날 세계 초연을 한 작품도 있었습니다. 바로 타이완 작곡가 판자린(潘家琳)의 ‘소리의 여정’(聲之旅)인데요. 이 작품은 현재 타이베이시립대학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판자린 작곡가에게 뮐러 합창단이 직접 위탁해 창작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날 이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죠. 

이렇게 이 날 타이베이 국가음악청에서 뮐러 합창단의 공연을 관람한 청중들은 중세 시대 이탈리아의 가톨릭 성당에서 출발해 슬로베니아를 거쳐 북유럽 발트해 3국인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작은 마을의 자연 풍경, 프랑스를 거쳐 타이완까지 물리적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이 긴 여정의 여행을 뮐러 합창단의 목소리와 함께 떠날 수 있었습니다. 

뮐러 합창단의 중국어 이름인 ‘무로우’(木樓)는 ‘목조 건물’을 의미합니다. 창립 멤버들이 합창 음악의 즐거움을 처음 발견했던 과거 낡은 목조 건물의 음악 교실을 가리킨다고 해요. 합창음악의 소리에 자신의 온 마음을 내어줄 수 있었던 순수하고 열정적인 마음을 늘 간직하며, 합창을 통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희망과 평화의 불꽃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힘을 끊임없이 믿는 것이겠이죠. 

그 이름 만큼이나 6월 5일 타이베이 국가음악청을 가득 메운 뮐러 합창단의 울림은 청중 한 명, 한 명의 마음 깊숙한 곳에 깊이 각인 되었을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연주곡목

Lorenzo Donati: Baraca

Lorenzo Donati: Canto della Terra

Damijan Močnik: Acclamatio

Jurijus Kalcas: Deus in adiutorium meum

Pēteris Vasks: Baltais fragments

Pēteris Vasks: Mūsu māšu vārdi

arr. Ambrož Čopi: Eno drevce mi je zraslo

Claude Debussy: Invocation

Paul A. Aitken: Flanders Fields

Toby Hession: Master of Music

arr. Aaron Dale: Notre Dame Medley

潘家琳:聲之旅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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