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오늘은 24절기 중 다섯 번 째 절기인 청명입니다. 하늘이 맑아진다는 뜻의 청명은 봄밭갈이를 하며 봄 농사 준비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보통 양력으로 4월 4-6일 중 하루 인 청명은 타이완에서 중요한 국가공휴일 중 하나입니다. 청명절을 타이완에서는 소분절(掃墳節)이라고도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무덤을 찾아가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내죠. 타이완의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올해 청명절은 무려 5일간 쉴 수 있는 한 해 몇 안되는 연휴 기간으로 더 와닿을 겁니다. 이 연휴 기간을 놓치지 않고 미리 항공권을 구매해 가까운 일본이나 한국, 동남아로 여행을 다녀오는 타이완 사람들도 많더군요. 타이완 국내에 남아 성묘와 벌초를 하러 가는 사람들은 청명절 당일이나 그 전에 조상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국내 인구 이동이 많다보니 정체된 고속도로에서 6-7시간을 허비하는 일도 여전히 있다고 합니다. 한국 같으면 설이나 추석 때 벌어지는 일들이 타이완에서는 바로 오늘 청명절에도 벌어집니다. 그만큼 청명절은 타이완 사람들에게 중요한 공휴일 중 하나이지요.
성묘를 미리 마친 사람들은 타이베이 도심에서 연휴의 여유로움을 만끽합니다. 이제 제법 따사로워진 태양 아래 푸른 잔디 밭에서 말이죠. 영국에서 시작된 잔디 문화는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수단었습니다. 집 앞 정원의 잔디를 짧고 정갈하게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런 영국의 잔디 문화를 미국에서 들여오면서 잔디는 개인의 소유물에서 도시 계획의 일부가 됩니다. 개인이 유지하는 대신 정부나 시에서 관리하는 것이죠. 뉴욕 센트럴파크와 같이 말입니다. 서울이나 타이베이에서도 잔디 하면 피크닉이나 캠핑이 떠오르는 이유도 이 때문일겁니다. 서울에서 잔디하면 여의도 공원이나 서울숲이 떠오르는 것처럼 잔디는 개인의 사유지라기 보다는 시민들이 함께 휴식을 즐기는 장소이죠. 특히 캠핑이 유행하는 요즘, 개인 전용 텐트와 간이 의자, 테이블 같은 간단한 캠핑 용품을 챙겨와 도심 속 공원에서 피크닉 즐기는 사람 늘었습니다.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잔디 하면 지룽강이나 단수이강 뚝방길에 있는 다양한 종류의 강변공원(河濱公園, Riverside Park)을 들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타이베이 북부에 위치한 다즈의 메이티(美堤) 공원이 있죠. 원산취에 위치한 푸더컹 환경보호 공원(福德坑環保公園), 네이후(内湖)의 큰 호수 주위를 감싸는 비후공원(碧湖公園), 화산문화창의단지에 위치한 화산대초원(華山大草原), 완화취의 청년공원(青年公園) 등도 푸른 잔디 밭으로 유명합니다.
타이베이의 푸른 잔디 하면 타이베이시에서 가장 큰 공원, 다안삼림공원(大安森林公園)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남북으로 허핑동루(和平東路)와 신의루(信義路), 동서로는 젠궈난루(建國南路)와 신성난루(新生南路) 사이에 위치해있는 다안삼림공원에는 청명절 당일 아침부터 가족, 친구 단위의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12시가 되자 잔디 위 사람들로 가득찹니다. 이제 한낮이면 28, 29도까지 올라 덥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무 아래 그늘에서 태양을 피해 가만히 앉아 있으면 솔솔 불어오는 봄바람은 제법 시원합니다. 다안삼림공원의 넓은 잔디밭에는 반경 2-3미터 간격으로 4-5미터 가량 되는 높이의 나무들이 심어져있습니다. 그래서 잔디 안 나무 그늘 아래 앉으면 무더운 날씨에도 시원한 봄바람을 느낄 수 있죠. 그렇게 나무 아래로 시민들이 옹기종기 모입니다. 돗자리를 펴고 그 위로 챙겨온 간식과 맥주 여러 캔을 꺼내 한낮의 여유로움을 즐기는 어른들, 돗자리 없이 혼자 야자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스마트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한 청년, 트램펄린을 가운데 두고 그 트램펄린 위로 번갈아 가며 공을 튀기며 노는 외국인 청년 무리들. 나무가 비교적 적은 다른 한 켠의 잔디위에서는 아빠와 어린 아들이 열심히 셔틀콕을 주고받으며 배드민턴을 치고 있습니다. 한국에 비해 대형견을 키우는 인구가 많은 타이완에서 여러 견종의 대형견이 산책하는 풍경도 다안삼림공원의 특색 중 하나입니다. 나무가 촘촘하게 심어져 있지 않은 잔디 밭 한가운데 넒은 부지는 공놀이하는 아이들의 천국입니다. 축구공을 뻥뻥차거나, 캐치볼을 하는 어린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과 활기가 넘쳐납니다.
다안삼림공원의 진미는 남녀노소, 타이완인 외국인 할 것 없이 모두들 잔디 위에서 어린아이같이 해맑은 미소를 띄며 현재 지금을 충분히 만끽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2월말부터 타이베이 길거리 곳곳에 피기시작한 형형색색의 꽃들이 봄의 시작을 알렸다면, 4월 첫째주 청명절 연휴에 다안삼림공원에 놀러온 타이베이 시민들은 봄의 절정을 알립니다. 오후 5-6시 무렵, 사람들이 한바탕 봄햇살을 즐기고 돌아간 빈자리는 누가 왔다갔나 싶을 정도로 깨끗합니다. 가족과 친구 단위의 사람들이 머물렀던 그 자리에는 저녁 무렵이 되자 연인이, 또는 혼자 산책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유독 많이 보입니다.
여전히 푸르른 잔디 위에 작은 돗자리를 편 채 드러누워 저물어 가는 햇빛을 이불 삼아 하늘을 덩그러니 쳐다봅니다. 눈을 감고 잔디 위에 누우면 눈으로 보이지 않는 다른 감각들이 보다 민감하게 느껴집니다. 바람, 공기, 냄새, 소리 등 말이죠. 그렇게 2023년 타이베이의 봄을 온몸 가득 느낍니다. 타이베이 시내의 두견화, 카라, 벚꽃 등 꽃이 주었던 시각적 아름다움으로부터 겨울의 스산함에서 깨어나 다안삼림공원의 잔디 위에서는 타이베이 봄을 오감으로 만끽합니다. 청명절 연휴의 다안삼림공원 도시 풍경은 바쁜 일상 중에도 청명절 연휴만큼은 푸른 녹색의 나무 아래서 나만의 시간을 찾는 타이베이 시민들이 준 봄의 선물입니다.
엔딩곡으로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M.A.Y in the Backyard'를 들려드립니다. 일본 작곡가인 류이치 사카모토, 일본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카모토는 다양한 영화음악을 창작했는데요. 대표적인 영화로는 1986년작인 마지막 황제, 2017년작 한국의 남한산성, 그리고 오늘의 엔딩곡이 삽입된 2018년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있습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피아노 곡으로 영화의 서사를 더욱 극화시켜 전세계 음악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류이치 사카모토가 지난달 28일 별세했죠. 'M.A.Y in the Backyard' 노래를 들으면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배경이 되는 이탈리아의 한 주택 앞 푸른 정원이 떠오릅니다. 해맑은 남자 주인공이 잔디 위에서 겪은 수많은 감정선을 이 노래는 절묘하게 그려냅니다.
-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t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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