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원주민 작가이자 의사인 토바스 타마피마(拓拔斯•塔瑪匹瑪, Tulbus Tamapima)는 1960년 6월 27일 난타우(南投)현 신이(信義)향 부농(布農)족 부락에서 태어났습니다. 18세인 1978년 가오슝의학원(현 가오슝의학대학교) 공비 장학생으로 선발되고 의학과 학생이 됐습니다. 대학시절 동안 학교의 문학 동아리 ‘아미바시사(阿米巴詩社)’에 가입하여 한족 이름 티엔야거(田雅各)로 동아리가 운영하는 잡지 ‘아미바시간(阿米巴詩刊)’에 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전달하려는 이야기를 더욱 완전하게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으면 시보다 소설을 이용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설로 창작 장르를 바꿨습니다. 1983년 10월 자신의 이름을 딴 소설 <토바스 타마피마>로 제2회 ‘남행(南杏)문학상’ 2등(1등 수상자 없음)으로 선정이 되면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이때부터 원주민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 의학원 졸업 후 토바스 타마피마는 외딴섬 란위(蘭嶼)로 가서 근 4년 동안 현지의 원주민 다우(達悟)족인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이후 가오슝, 화롄, 타이둥 등 지방 의료기관에서 의사로 근무한 적이 있으며 현재는 고향인 난터우현에서 은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더보기문학
오늘은 전후(戰後)시기 타이완 문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부부 소설가 궈송펀(郭松棻)과 리위(李渝)에 대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궈송펀은 일제시기 타이완을 대표하는 화가 궈쉐후(郭雪湖)의 아들이며 1983년 타이베이 다다오청(大稻埕)에서 태어났습니다. 리위는 1944년 중국 충칭(重慶)에서 태어났으며 5세인 1949년 부모와 함께 국민당 정부를 따라 타이완으로 건너와 타이베이 운저우가(溫州街)에 정착하여 자랐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국립타이완대학교 외국어학과 졸업생으로, 대학 시절에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당시 그들은 대량의 외국어 서적을 읽으면서 실존주의, 정신 분석, 모더니즘 등 서양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문학 창작에 있어 모더니즘적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1960년대 두 사람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학위 중 결혼을 했으며, 1970년대 초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 명 尖閣센카쿠) 보호운동에 함께 참여하여 국민당 정부의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약 20년 동안 타이완으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이후 귀국 금지령이 해제되고 두 사람은 타이완으로 돌아와 정착하려고 했으나 궈송펀은 뇌중풍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아야 돼서 두 사람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2005년 궈송펀은 뇌중풍으로 사망했으며, 이에 슬픔과 우울증에 빠지게 된 리위는 결국 9년 뒤인 2014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더보기류융(劉墉, 유용)은 1949년 2월 26일 타이베이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나이는 73세입니다. 1973년 문단에서 데뷔한 이래 100편이 넘는 소설과 산문 작품을 발표했으며, 아시아 지역에서 큰 인기를 누릴 뿐만 아니라 작품들이 한국어, 영어, 베이트남어, 태국어 등 언어로 반역되어 출판되기도 합니다. 그는 또한 저명한 화가로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30회 이상의 개인전시회를 개최했으며, 작품들이 타이완, 중국, 미국, 독일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소장되고 있습니다. 글과 그림에 재능이 있는 것 외에도, 그는 연설, 연극, 뉴스보도, TV방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게 활동했으며, 1976년 TV프로그램 <시사포럼(時事論壇>의 MC로 타이완 방송시상식 제13회 금종장 ‘사회건설상(社會建設獎)’을 수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선가이기도 하며, 오랫동안 양안의 공익단체 운영과 희망 초등학교 건설에 기부 및 협조를 해 왔습니다.
...더보기일본 통치 시기와 중화민국의 소설가이자 문학 평론가인 예스타오(葉石濤, 엽석도)는 1925년 11월 1일 타이난시에서 태어났습니다. 16살 때부터 일본어로 소설을 만들어 여러 문학잡지에 투고했고 뽑히지 못했지만 <문예타이완(文藝臺灣)>의 창립자인 니시노미츠루(西川滿)의 눈에 들어, 1943년 중학교를 갓 졸업하자 <문예타이완> 편집보조로 발탁됐습니다. 당시 낭만주의를 숭상했던 예스타오는 <문예타이완>에서 일하면서 양쿠이(楊逵), 우줘류(吳濁流) 등 타이완 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었던 본토 작가들을 알게 되고 큰 영향을 받았는데 이후 그의 문학관이 '예술성 우선'에서 점차 ‘현실 비판’으로 바뀌어가면서 그는 식민자로서 타이완을 바라보며 ‘타이완 문학’을 ‘일본 문학’의 분파로 여기고 있었던 니시노미츠루의 관점에 더 이상 동의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1944년에 <문예타이완>을 떠났고 타이난으로 돌아가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보기타이완 소설가이자 동화 작가인 정칭원(鄭清文-정청문)은 일제시기인 1932년 9월 16일 타오위안(桃園)에서 태어났으며 원래 성은 리(李)였으나 삼촌의 양자로 입적하면서 정으로 바뀌고 신베이 신좡(新莊)으로 옮겨 자랐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때까지는 일본어 교육을 받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중학교를 다니면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1951년부터 40여 년 동안 화남(華南)은행에서 근무하며 글을 썼고 정년퇴직 후에도 문학 창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2017년 11월 4일 심근경색으로 8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