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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2022.10.07
'유학생문학의 시조' 위리화(於梨華) - 사진: '북미중국어작가협회(北美華文作家協會)' 사이트 페이지 캡쳐

21세기 최악의 바이러스, 코로나19가 2019년 12월 31일 중국 우한에서 첫 확진자가 보고된 이래 현재까지 2년 10개월 동안 이미 전 세계에서 최소 1000만명의 목숨을 앗아 갔습니다. 특히 평소에 텔리비전이나 인터넷에서 자주 볼 수 있었 유명인들의 사망 소식이 들릴 때마다 정말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포르모사문학관 시간에서 제가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작가는 바로 2020년 4월 코로나로 인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유학생문학의 비조’위리화(於梨華, 어리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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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2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궈정(郭箏)의 무협소설 작품인 《귀신 있어요!사부님(鬼啊!師父)》- 사진: 보커라이(博客來) 사이트 페이지 캡쳐

궈정(郭箏)은 1955년 8월 24일에 태어났고, 본명은 타오더산(陶德三)입니다. 집안 배경은 매우 혁혁합니다. 할아버지 타오시성(陶希聖)은 장제스(蔣介石) 전 중화민국 총통의 연설문, 선언문 집필 협조를 담당했던 중요한 보좌관이고, 어머니 옌장위안(晏章沅)은 주태국 대사관 비서였으며 작은 형 타오더천(陶德辰)은 ‘타이완 뉴웨이브'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여겨진 <세월 이야기(光陰的故事)>를 제작한 감독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친척들도 모두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한 고학력자입니다. 학자 집안에 태아나 자랐으나 궈정은 공부를 싫어하는 ‘가족의 흑양(Black sheep of the family)’이었습니다. 그는 '입시위주 교육'과 '주입식 교육'을 받고 싶어하지 않아서 중학교까지만 다녔습니다. 학교 교육시스템을 거부하여 정규적인 글쓰기 훈련을 받지 못했지만 궈정은 스스로 관련 책을 읽으며 글쓰기 수법을 모색하면서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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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2
도시인의 자유에 대한 추구를 즐겨 묘사하는 타이완 여류작가 주사오린(朱少麟, 주소린) - 사진: 보커라이(博客來) 사이트 페이지 캡쳐

도시인의 자유에 대한 추구를 즐겨 묘사하는 타이완 여류작가 주사오린(朱少麟, 주소린)은 30세인 1996년 10월에 처녀작 장편소설 <새드 카페의 노래(傷心咖啡店之歌, The Ballad of the Sad Cafe)>를 발표하고 폭발적 인기를 얻었으며 타이완 대표 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인 마선(馬森)으로부터 ‘천생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각각 1999년과 2005년에 발표한 2편 장편소설 <제비(燕子)>와 <지하 3만 피트(地底三萬呎)도 대중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으면서 주사오린은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위상을 확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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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0
전후(戰後)시기 타이완 문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부부 소설가 궈송펀(郭松棻, 좌)과 리위(李渝, 우) - 사진: '국립타이완대학교 도선관' 사이트 페이지 캡쳐

오늘은 전후(戰後)시기 타이완 문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부부 소설가 궈송펀(郭松棻)과 리위(李渝)에 대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궈송펀은 일제시기 타이완을 대표하는 화가 궈쉐후(郭雪湖)의 아들이며 1983년 타이베이 다다오청(大稻埕)에서 태어났습니다. 리위는 1944년 중국 충칭(重慶)에서 태어났으며 5세인 1949년 부모와 함께 국민당 정부를 따라 타이완으로 건너와 타이베이 운저우가(溫州街)에 정착하여 자랐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국립타이완대학교 외국어학과 졸업생으로, 대학 시절에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당시 그들은 대량의 외국어 서적을 읽으면서 실존주의, 정신 분석, 모더니즘 등 서양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문학 창작에 있어 모더니즘적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1960년대 두 사람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학위 중 결혼을 했으며, 1970년대 초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 명 尖閣센카쿠) 보호운동에 함께 참여하여 국민당 정부의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약 20년 동안 타이완으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이후 귀국 금지령이 해제되고 두 사람은 타이완으로 돌아와 정착하려고 했으나 궈송펀은 뇌중풍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아야 돼서 두 사람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2005년 궈송펀은 뇌중풍으로 사망했으며, 이에 슬픔과 우울증에 빠지게 된 리위는 결국 9년 뒤인 2014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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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7
타이완 소설가이자 문학 평론가인 예스타오(葉石濤)를 소재로 한 영화 <타이완 남자 예스타오(台灣男子葉石濤)> - 사진: '台灣男子葉石濤'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 캡쳐

일본 통치 시기와 중화민국의 소설가이자 문학 평론가인 예스타오(葉石濤, 엽석도)는 1925년 11월 1일 타이난시에서 태어났습니다. 16살 때부터 일본어로 소설을 만들어 여러 문학잡지에 투고했고 뽑히지 못했지만 <문예타이완(文藝臺灣)>의 창립자인 니시노미츠루(西川滿)의 눈에 들어, 1943년 중학교를 갓 졸업하자 <문예타이완> 편집보조로 발탁됐습니다. 당시 낭만주의를 숭상했던 예스타오는 <문예타이완>에서 일하면서 양쿠이(楊逵), 우줘류(吳濁流) 등 타이완 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었던 본토 작가들을 알게 되고 큰 영향을 받았는데 이후 그의 문학관이 '예술성 우선'에서 점차 ‘현실 비판’으로 바뀌어가면서 그는 식민자로서 타이완을 바라보며 ‘타이완 문학’을 ‘일본 문학’의 분파로 여기고 있었던 니시노미츠루의 관점에 더 이상 동의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1944년에 <문예타이완>을 떠났고 타이난으로 돌아가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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