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럴 때 있잖아요. 시끌벅적한 도시 소음에서 잠시 벗어나 조용한 밤거리를 산책하고 싶을 때. 사람들이 많이 몰린 서울 강남역보다는 사람들이 다 퇴근하고 텅 비어있는 종로나 정동길을 걷고 싶을 때. 특히 요즘같이 무더운 날이면 햇빛이 내리쬐는 낮 대신 여름바람 솔솔 불어오는 밤 시간에 보다 활기가 생기죠. ‘타이베이의 밤’하면 야시장만 떠오르셨나요? 아니면 타이베이101 타워만 생각나신다고요? 어반스케처스 타이베이 30회를 맞는 오늘 이 시간에는 7월 말 무더위에 걷기 좋은 운치있는 타이베이 밤 산책길을 생동감 넘치게 소개해드릴게요.
지하철 레드라인과 옐로우라인이 교차하는 동먼(東門)역. 무더운 여름해가 지고 캄캄한 어둠이 짙은 밤 9시. 가로등 불빛은 여전히 환하게 빛나지만 편의점을 제외한 1층 상가들은 이제 슬슬 장사를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동문역 1번 출구 앞에 있는 타이베이의 노랑 따릉이, 유바이크(Ubike)를 타고 서쪽 방향으로 향합니다. 유바이크의 장점은 제가 지난 시간에서도 소개해드린 바 있죠. (바로가기)
신이루 1단(信義路一段)
동먼역이 위치하고 있는 신이루 1단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면, 한 낮의 무더위 대신 솔솔 불어오는 여름 바람이 비록 에어컨 바람처럼 시원하진 않더라도 자전거 타며 차오르는 열기를 식혀줍니다. 게다가 밤거리라 인도에 사람들도 많지 않죠. 그렇게 바람을 가르며 신이루 1단의 자전거길을 따라 10분 정도 달리다 보면 왼편에 어둠 속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거대한 건물이 하나 보입니다. 바로 중정기념당이 있는 자유광장에 소재한 국가음악청(國家音樂廳)입니다.
국가음악청(國家音樂廳)
타이베이 야경의 매력은 이곳 신이루 1단에서 보이는 국가음악청 건물의 뒷모습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지난 6월 7일자 <어반 스케처스 타이베이>에서 한 합창단의 공연을 소개하면서 ‘국가음악청'에 대해 잠깐 언급해 드린 바 있는데요. (바로가기) 타이베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음악홀인 국가음악청은 해가 지는 밤이 되면 캄캄한 어둠 속에 웅장한 건물을 비추는 조명과 함께 타이베이의 야경을 수놓는 새로운 오브제로 재탄생합니다. 국가음악청을 상징하는 붉은 기둥과 황금색 벽면은 여느때보다 또렷하면서도 그윽하게 보입니다. 이 야경이 주는 아우라에 압도된 나머지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전진하던 자전거도 잠시 속도를 늦추고 국가음악청 건물을 가만히 바라보게 됩니다. 특히나 국가음악청이 시야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순간 신이루 1단은 동먼역 주변에서 보던 상권들이 사라지고, 어둠 속에 조용하고 운치있는 곳으로 탈바꿈하죠.
타이베이의 동문, 경복문(景福門)
그렇게 국가음악청 건물이 밤에 가져다주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지나가다 보면, 어느새 신이루 1단이 남북을 가로지르는 중산난루(中山南路)와 교차하는 지점에 도착하게 됩니다. 중산난루는 국가도서관, 외교부, 입법원, 국립타이완대학병원, 감찰원 등 타이베이, 아니 타이완을 대표하는 각종 정부 기관들이 양쪽으로 빽빽히 들어차있는 길입니다. 그리고 중정기념당에서 끝나는 신이루 1단과 중산난루가 교차하는 로터리의 중심에는 바로 동문(東門)이 있습니다. 동쪽에 있는 문이란 뜻의 동문의 정식 명칭은 경복문(景福門, 징푸먼). 한국인이라면 ‘경복(景福)'이란 용어가 낯설지 않으실겁니다. 한국의 경복궁은 과거 정도전이 고대 중국의 시 모음집인 <시경>(詩經)의 ‘주아’(周雅)에 나오는 “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기취이주 기포이덕 군자만년 개이경복)”의 두자를 따서 조선 궁궐의 이름을 지었다고 알려져있는데요, '경복(景福)'은 왕과 그 자손, 온 백성들이 태평성대의 큰 복을 누리기를 축원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타이베이의 경복문은 청나라 광서 10년인 1884년 완공된 타이베이 성곽을 구성하는 문 중 하나로, 현재에는 경복문을 포함해 남문인 여정문(麗正門), 소남문인 중희문(重熙門), 북문인 승은문(承恩門), 이렇게 네 개의 성문이 남아있습니다.
깜깜한 한 여름 밤, 신이루 1단의 끝에서 마주한 경복문은 홀로 빛나고 있습니다. 성곽 문 위로 지어진 옥색 기와 지붕과 황금색 테두리가 가진 정갈하고 기품있는 색감이 건물을 비추는 조명으로 더욱 살아납니다. 새까만 색의 여름 밤 하늘과 대조를 이루어 그 대비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타이완 정부부처들이 밀집해있는 곳의 가장 동쪽에 있는 경복문은 늦은 밤에도 그렇게 우리를 환하게 반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잠시 넋을 잃고 경복문을 바라보다보면 경복문 뒤로 어둠 속에 또 하나 반짝이는 건축물이 살며시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중화민국 총통부입니다.
중화민국 총통부(中華民國總統府)
19세기 말에 지어진 경복문이 청나라의 기운을 담고 있다면, 중화민국 총통부는 일제시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베이징과 난징에 이은 역대 세 번째 중화민국의의 청사이기도 한 총통부 건물은 사실 일제시기 타이완총독부의 청사였습니다. 일본이 타이완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기존 청나라 때 세운 타이완성 최고 관청 대신 자신들의 청사를 세우고자 해서 1912년에 착공에 들어가 1919년에 완공된 건물이죠.

새까만 밤을 비추는 중화민국 총통부 건물 - 사진: Rti 서승임
경복문에서 총통부를 향하는 일직선의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야자수 가로수 뒤로 우뚝 솟아 있는 총통부 건물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목전에서 만끽할 수 있습니다. 청와대가 현재 일반 국민들에게 개방되었다지만,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에 있는 위치상 인도나 차도에서 한 눈에 들어오기 힘든 반면, 타이완의 총통부는 평지에 사면이 개방되어 있어 그 건물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꽤 낯설게 느껴지죠. 비록 전쟁 중에 건축물이 상흔을 입고 정권이 바뀌면서 조금씩 형태를 달리해 온 총통부이지만, 자그마치 100년 이상 된 오래된 건축물만이 갖고 있는 역사성을 총통부 건물을 드러냅니다.
‘타이베이의 밤’하면 여전히 야시장만 아니면 타이베이101 타워만 떠오르셨다면, 이번 기회에 루트를 바꿔보시는 건 어떨까요? 신이루 1단을 따라 중정기념당을 거쳐 타이베이 부성 동문인 경복문과 총통부까지 도심 속 타이베이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의 향연을 느끼시는 것도 타이베이에서의 밤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 중 하나일 것입니다. 유바이크를 타도 좋고, 조용한 길을 따라 밤산책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오늘 소개해드린 이 구역엔 상가가 거의 없이 가로등 조명만 있어 다른 곳 보다 어두울 수 있으니 지인과 동반하시는 것을 추천드려요.
엔딩곡으로는 가오우런(告五人) 밴드의 ‘또 다시 밤이네-우린 괜찮을거야’(又到天黑 We will be fine) 라는 노래를 띄워드립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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