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타이완의 소리 RTI공식 앱 내려받기
열기
:::

타이베이 도심에 울려퍼지는 인도네시아 발리 가믈란 음악

  • 2023.04.26
어반 스케쳐스 타이베이
타이베이에 소재한 국립대만대학에서 연주하는 발리 가믈란 음악. 두 개의 다른 선율을 동시에 연주해 하나의 선율을 만들어내는 묘미가 있는 고테칸(kotekan)을 연주하고 있다. - 사진: Rti 서승임

평일 저녁 6시 25분. 타이베이 지하철 녹색선 공관(公館)역 인근에 위치한 국립대만대학교 캠퍼스의 한 교실에서는 낯선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타이완의 전통 악기, 이를테면 비파(琵琶), 산시엔(三絃), 동샤오(洞簫)와 같이 잔잔한 소리도 아니고, 지난 <어반 스케처스 타이베이> 골목길 시리즈 루이안제 편에서 소개해드렸던 베이관(北管)의 쩌렁쩌렁한 북과 징 소리도 아닙니다. 현을 튕겨서 내는 현악기 소리는 분명 아니며 무언가를 두드려서 나는 소리인 것 같은데, 하나의 음만 있는 북이나 징과 달리 선율이 있습니다. 마치 서양악기의 실로폰이나 마림바 같이요. 그리고 악기가 한 두대만 있다고 하기에는 그 소리가 매우 우렁차서 소규모의 사람들이 모여 연주하는 악기는 아닌 듯 합니다. 

타이베이 도심 한복판에서 울려퍼지는 이 악기와 음악은 바로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 걸쳐 있는 인도네시아, 특히 발리 섬에서 연주하는 가믈란(Gamelan) 음악입니다. 한국인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 가믈란 음악은 그 전통과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는 1899년 파리 국제전람회에서 들은 가믈란 음악의 음계와 진행에 영감을 받아 1903년 ‘탑(Pagodes)’이라는 작품을 쓰기도 했죠.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섬이 많은 나라이자, 인구는 인도, 중국, 미국에 이은 세계 4위인 나라이고, 이슬람의 발원지인 아라비아 반도에서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입니다. 인구의 약 85% 이상이 무슬림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개신교, 힌두교, 불교, 유교 등 여섯 개의 종교도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다종교 국가입니다. 타이완과 인도네시아의 관계는 주로 ‘이주노동자’를 매개로 이루어집니다. 특히 타이베이 도심의 각 가정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가사 노동자들이 바쁜 타이베이 시민들을 대신에 가정을 돌보거나 연세가 지긋하신 노인을 간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른 오전 타이베이 시내 작은 공원 주변으로 타이완 노인이 타고 있는 휠체어를 끌고 산책을 하거나 늦은 밤 타이완 사람을 대신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는 젊은 인도네시아 여성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죠. (“2020년 국내 약 70만 이주노동자 있어” 2021.04.08 Rti 보도)

그래서일까요? 타이완의 대표적인 명문대인 대만대학교 캠퍼스에서 매일 저녁 인도네시아 발리의 가믈란 음악이 울려퍼지는 일은 무척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무려 만 칠천여개가 넘는 섬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에서 가믈란 음악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합니다. 그 중 발리 섬에서 연주되는 가믈란 음악(Balinese Gamelan)은 템포가 매우 빠르며 음악의 다이내믹 변화가 굉장히 다채롭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박진감이 넘치죠. 교실 안에서 가믈란 음악을 연습하는 학생들 중에는 타이완인만 있지는 않습니다. 홍콩, 말레이시아, 한국, 일본, 그리고 심지어는 대만대학교에 유학 온 인도네시아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만대에 유학 온 인도네시아 학생들은 대부분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 출신이므로 발리 음악은 교과서에서 글자로만 읽거나 어쩌다 들어본 정도였다고 하나 같이 입을 맞춰 이야기 합니다. 웨스트 자바섬에 위치한 자카르타와 이스트 자바섬 동쪽 끝에 위치한 발리 섬은 지리적으로 거리도 멀뿐만 아니라 언어와 종교도 꽤 다르죠. 무슬람이 대부분인 인도네시아 다른 섬과 달리 발리 섬은 힌두교인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마을 단위의 사원에서 각종 의식과 행사를 치루는 이벤트가 많은데, 바로 이 때마다 가믈란 음악이 자주 연주되지요. 궁정 의식에서 자주 연주되던 자바 가믈란 음악과 달리 발리의 가믈란 음악은 사원과 민간인을 중심으로 계승되고 연주되고 있습니다. 

발리 가믈란 음악은 그 난이도가 높다고 볼수도 쉽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우선 악기를 전혀 못하는 사람도 접근하는 데 어렵지 않습니다. 오른손에 해머를 들고 적게는 5개에서 많게는 10개가 되는 건반을 두드리며 선율을 연주합니다. 한 사람이 연주하는 건반 수가 피아노처럼 많지 않아서 부담이 적죠. 한 음을 두드리고 난 후 다른 음악 두드릴 때 먼저 두드렸던 음의 건반을 왼손의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 잡아줍니다. 건반 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뮤트(mute)’, 즉 소리를 줄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그래도 쩌렁쩌렁한 악기 소리의 여러 음이 한꺼번에 울려 음악을 소란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발리 가믈란 음악 특유의 리듬감을 살리지 못하죠. 발리 가믈란 음악에서 리듬감은 매우 중요합니다. 건반 수가 적은 만큼 적은 수의 건반 사이에서 빠르게 전개되는 리듬이 박진감 넘치죠. 그래서 처음 가믈란 음악을 접하는 사람도 리듬이 복잡하지 않은 선율은 쉽게 연주할 수 있습니다만, 리듬이 복잡해지면 질수록 결코 그 진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고테칸(kotekan)’이라고 부르는 연주방식은 발리 가믈란 음악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매우 빠른 템포의 선율을 한 사람이 모두 연주할 수 없으니 두 사람이 서로 나눠 연주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한 사람은 정박에 맞춰 악기를 연주하고, 다른 한 사람은 엇박에 맞춰 연주해야 하는데 이 둘의 호흡을 맞추는 일이 꽤 어렵습니다. 연습 끝에 두 사람의 선율이 맞아 떨어져 하나의 선율로 들릴 때 그 희열과 감동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대만대에서 발리 가믈란 음악을 배우는 학생들은 모두 음악 전공자가 아닙니다. 가믈란 음악을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경우가 더 많죠. 타이완에서 발리 음악을 들을 일이 언제 있겠어요. 저도 한국에서 발리 음악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걸요. 소위 ‘신명나다’라는 형용사를 한국의 전통음악, 특히 신나는 장단과 가락으로 이루어진 민요를 두고만 사용해왔습니다만, 발리 가믈란 음악을 연주하거나 듣다 보면 ‘신명나다’라는 표현이 새삼스레 절로 떠오릅니다. 그만큼 발리 가믈란 음악은 국경을 초월해서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고 기쁘게 하며 연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호흡’과 ‘하나됨’이 중요한 음악입니다. 발리 가믈란 음악은 더 이상 발리에서만 연주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가믈란 음악을 제도권에서 가르치기 시작했고, 이웃국가 일본에서도 가믈란을 연주하는 단체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곳 타이완에서도 대학을 중심으로 90년대부터 가믈란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죠. 타이베이 시내에서 인도네시아 발리의 전통음악을 직접 연주하고 무대에 오르는 행위는 단순히 그 음악 자체만을 배우는 것 뿐만 아니라 기존의 타이완 사회가 갖고 있던 인도네시아에 대한 인식의 틀을 한 차원 넓히는 중요한 사회적 퍼포먼스이기도 합니다.   

엔딩곡으로는 대만대학교 발리 가믈란 음악 연주 단체가 연주했던 곡 중 하나인 타리 펜뎃(Tari Pendet)을 들려드립니다. 귀빈을 환영할 때 추는 춤이라는 뜻의 ‘타리 펜뎃’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중요 행사가 있을 때 무용과 함께 자주 선보이는 레퍼토리 중 하나입니다. 타이베이 시내 한복판에서 울려퍼지는 발리 가믈란 음악, 그 몰입의 현장에는 국경을 초월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 땀을 흘리며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관련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