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디지털 음원으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 스마트폰이 있기 전엔 mp3음원으로, 그 전엔 CD, 카세트테이프, 그리고 LP판 등 음악을 듣는 방법과 수단이 시간에 따라 달라져 오고 있죠. 그렇다면 타이완에서는 언제 처음 음악을 음반에 취입하기 시작했을까요? 우선 1909년으로 돌아가봅니다.
일제시기 타이완의 주요 일간지였던『대만일일신보』에 처음 올라온 ‘일본축음기상회’(日本蓄音器商會) 광고가 눈에 띕니다. 1909년 10월 31일자 신문에 실린 이 광고에는 일본 도쿄 긴자에 본점이 있는 일본축음기상회가 타이완으로 출장을 와 최신 축음기를 판매한다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광고 한 가운데에는 당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주요 매체였던 큰 나팔의 축음기 사진이 있습니다. 당시 일본의 유명 노래 천 여곡과 ‘지나 가곡’(支那歌曲), 즉 중국의 노래도 수 백 곡이 있다는 것으로 보아 음반도 함께 취급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 정식으로 가게를 열지는 않았는지 당시 타이베이에 소재한 주요 호텔 중 하나인, 타이호쿠 히노마루칸(臺北日之丸館)에서 5일간 특가 할인으로 대 판매 행사를 진행한다고 소개합니다.
1909년 타이완에 처음 진출한 일본축음기상회는 2년이 지난 1911년 9월 타이완 출장소를 본격적으로 설치했습니다. 타이완 역사상 최초의 음반 회사입니다. 당시 식민지 타이완에서 외국의 음반을 판매하는 통로는 여럿 있었지만, 음반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음반 회사가 생긴 것은 처음이라고 하네요. 타이완에서 축음기를 판매하기 시작하고, 첫 음반 회사를 차린 일본축음기상회는 일본 최초 축음기와 자체 음반 제작 회사로, 1907년 일본과 미국 양국가의 합자로 출시한 일미축음기제조주식회사로 시작했습니다. 1910년부터 일본축음기상회로 개명해 이듬해인 9월 타이완에 타이베이 출장소를 설립했습니다. 타이완에 출장소를 설립한지 3년차인 1914년, 일본축음기상회는 타이완 북부 커자(客家) 출신 예인 약 15명을 일본 도쿄의 음반 제작 녹음실로 초대해 59장의 커자 음반을 녹음했습니다. 녹음된 음반의 표지에는 ‘FORMOSA SONG’이라고 명시되어 있어 타이완의 소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렇게 타이완의 소리가 처음으로 음반에 녹음이 되었고, 타이완어의 난관(南管) 음악 '점등홍'(點燈紅)과 타이완 전통 오페라 거자이시(歌仔戲)인 '삼백영대'(三伯英臺)가 처음으로 취입되었습니다.
1910년대 타이완의 소리를 본격적으로 음반에 담은 최초의 음반이 출시되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음반은 반드시 일본으로 넘어가야만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까지 타이완의 음반 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했습니다. ‘유행가’(流行歌)라는 장르의 대중음악이 성행하기 시작했고 타이완에서 직접 음반을 제작해 타이완 사람들도 유행가를 듣고 흥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타이완 음악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시기를 타이완 대중음악 발전의 황금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는 앞서 소개한 일본축음기상회 뿐만 아니라 일본의 빅터, 타이헤이, 아사히, 닛토 등 다양한 음반사들이 이미 타이완으로 진출했고, 타이완 본토의 현지 음반 회사 들도 잇따라 설립되면서 운영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이 10년 동안 빠른 도시화 및 새로운 녹음 기술이 발달하면서 각 음반 회사들도 전업 작곡가와 작사가, 그리고 가수를 섭외해 유행가 창작이 성황을 이룹니다. 도시 생활에 맞는 가요 창작이 점차 난관이나 거자이시 같은 전통 음악의 공식을 깨고 보다 활기차고 발랄한 백화문 형태로 대중들의 삶 속에 스며들면서 유행가란 장르가 기존의 전통 민요나 희곡을 대신해 성행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오늘날까지도 타이완에서 회자되는 고전 가요, 망춘풍(望春風), 우야화(雨夜花), 사계홍(四季紅), 월야수(月夜愁), 심산산(心酸酸), 청춘령(青春嶺) 등이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지고 불렸습니다. 청취자님들께서 지금 듣고 계신 <대만주간신보>의 인트로 음악 역시 1932년에 발매된 '도화읍혈기'(桃花泣血記)라는 영화 주제곡의 전주입니다. 이 때 타이완의 유행가는 모두 타이완어, 즉 민남어였고, 당시 일본 제국에서 성행했던 일본 유행가 특유의 멜로디와 리듬이 가미되어, 이후 타이완 대중음악의 주요 언어가 된 만다린 중국어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렇게 타이완에서 유행가가 성행하기 직전인 1926년 5월, 타이완에서 최초의 음반이 제작되었습니다. 1926년 5월 19일자 『대만일일신보』는 “일축(일본축음기상회)의 손으로 타이완의 향토예술이 세상에 나오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며 타이완 최초로 음반 녹음을 실행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바야흐로 타이완의 선전은 모든 방면에서 시도되고 있어 본 섬의 개발에 있어서는 진심으로 경사스러운 일이지만, 내지(일본)에서 타이완으로 관광이나 시찰을 하러 온 사람들은 그 애조(哀調)를 띤 타이완의 독특한 노래를 접하고 꼭 선물로 갖고 싶다라며 축음기 상점에 타이완 가요의 취입 레코드를 사러 오지만, 슬프게도 아직 그런 것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어 쌍방 모두 아쉬워하고 있는데…”
일본축음기상회에는 오사카에서 음악 취입 기계를 가져와 타이베이시 아카시초, 타이베이 빌딩의 한 층상에서 5월 16일부터 18일까지 첫 음반을 무사히 녹음했습니다. 타이완에서는 첫 녹음이었던 만큼 현장에서 녹음하는 일이 순조롭지 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당시 녹음한 첫 음원은 기존 타이완 각 지역의 속요와 청나라 음악으로, 앞서 소개한 도시풍의 유행가는 아니었습니다. 일제시기 타이베이시의 최대 상업지구였던 대도정(大稻埕)에서 음악을 전업으로 하는 여성(藝姐) 10명과 해당 분야의 음악 스승들이 16일부터 18일까지 호궁(胡弓), 월금(月琴), 징(銅鑼) 등 타이완 전통 악기를 들고 와 매일 교대로 연주를 하면서 타이완 소리를 녹음했습니다. 당시 녹음실에서는 “애수비련한 멜로디가 여성들의 입에서 나오면 연주자부터 감독까지 땀에 흠뻑 젖은 채 취입을 했다”며 더운 날씨에 무거운 악기를 들고 좁은 녹음실에서 힘들게 소리를 취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타이완에서는 처음 한 녹음인만큼, 녹음에 관한 요령도 서로 잘 몰라 우여곡절 끝에 녹음 첫 날인 16일에는 겨우 4장밖에 못 찍었지만, 다음날인 17일에는 조금 익숙해져 8장을 찍고, 18일에는 10장까지 찍어내 다들 무척 기뻐했다고 보도는 전합니다. 게다가 이렇게 취입된 타이완의 첫 음반의 원판인 왁스를 일본 도쿄로 보내 다음 달 초에 레코드로 출시되면서 타이완의 소리가 타이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일본에도 소개될 수 있었습니다.
음반은 소리를 저장할 수 있는 매개체입니다. 음반에 저장된 음악은 당대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공유할 수 있는 감정 저장소인 한편, 몇 십년이 흘러 그 시대를 되돌아보았을 때 그 어떤 수기의 기록보다 당시를 선명하게 그려내는 역사적 사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음악을 담은 음반은 공간적 경계를 쉽게 초월할 수 있습니다. 과거 20세기 중후반 미국의 팝송이 미국 문화의 영향권에 있는 많은 나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 대중음악의 전형으로 각인되어 있던 것처럼, 20세기 초 일본 제국의 식민지였던 타이완 그리고 조선은 이미 음반과 축음기 유통이 시작된 당시 일본의 녹음 방식, 음반 제작 방식, 그리고 유행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26년 5월 타이완에서 녹음하고 제작된 음반은 일본축음기상회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지만, 일본과 차별화된 타이완의 소리와 음악문화가 있지 않았다면 시도되지 않았을 겁니다. 타이완 첫 음반 제작을 위해 함께 평소 연행하던 절이나 시장이 아닌 낯선 녹음실에서 노래하고 연주한 타이완인과 그들의 소리와 음악을 기록하고 유통시킬 필요성을 느껴 음반으로 제작한 일본인 모두의 노고로 완성된 타이완의 첫 음반은 이후 10년간 타이완 유행가의 황금시기를 여는 전초였습니다. 그리고 일본풍의 유행가가 성행하기 전 타이완 고유의 전통민요와 악기 연주를 기억하고 있는 소중한 사료가 되었습니다.
참고문헌 및 자료
台灣日日新報 聲音文化資料庫 1898-1944
徐登芳. 留聲曲盤中的臺灣 : 聽見百年美聲與歷史風情. 臺北市: 國立臺灣大學, 2021.
-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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