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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합창의 아버지, 천스즈(陳泗治), 첫번째 이야기

  • 2024.06.18
대만주간신보
단수이중학교에서 피아노를 연습하는 천스즈. - 사진: 국립전통예술중심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고향의 봄이란 제목의 동요를 모르는 한국인들은 거의 없겠죠? 그러나 이 동요의 음악과 가사를 누가 창작했을까 물어보면 선뜻 누구인지 떠올리기 힘듭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 말, 당시만 해도 상당히 낯설었던 오선보와 서양악기를 배운 홍난파가 이 동요의 음악을, 아동문학가였던 이원수가 가사를 만들어 발표했다고 하는데요. 일본이 식민지배를 하던 이 시기, 한국과 타이완 모두 서양음악이라는 새로운 소리와 문화가 이 땅에 들어와 많은 사람들과 공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고향의 봄’이란 동요를 알듯, 타이완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한번즘은 불러봤다는 ‘‘타이완광복기념가(台灣光復紀念歌)'. 그러나 이 노래를 누가 작곡했는지는 타이완 사람들도 잘 모른다고 하는데요. 타이완의 광복을 기념하기 위해 중국 전통음악에서 드러나는 5음음계를 사용해 작곡된 이 노래를 창작한 인물은 바로 타이완의 1세대 서양음악 작곡가, 천스즈(陳泗治)입니다. 

1911년생인 천스즈씨는 창작한 작품 수가 뛰어나게 많지는 않지만, ‘타이완’과 관련된 주제의 곡을 많이 남겼는데요. 예를 들어, 타이완 산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나나 잎이라던지, 타이완 원주민, 드래곤 보트 등 타이완의 한인 문화, 원주민 문화 할 것 없이 타이완의 향토색을 드러내는 주제를 갖고 서양음악을 사용해 새로운 음악을 창작했습니다. 게다가 타이완 최초의 ‘합창곡’과 ‘피아노곡’도 작곡한 천스즈. 그의 일생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오늘 대만주간신보 시간에는 타이완 1세대 서양음악가 천스즈의 유년시절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타이베이 스린(士林)에서 태어난 천스즈(陳泗治, 1911-1992). 스린은 청나라 시대부터 문인들이 많은 지역으로 유명한 곳인데요. 천스즈의 아버지 천잉린(陳應麟) 역시 청나라 시기였던 1887년 급제한 사대부(秀才)였습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양반 가문 출신인 셈이죠. 12살에 일본 총독부가 설립한 공학교를 졸업한 천스즈는 이후 타이완이 아닌 중국 샤먼(廈門)으로 건너가 학업을 이어나게 되었는데요. 천스즈의 장남인 천신슝(陳信雄)씨의 말에 따르면, 천씨 가문의 많은 친척들이 당시 샤먼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의 권유로 천스즈가 샤먼으로 갔는데, 적응을 잘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해 얼마 있지 않아 타이완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단수이 중학교

샤먼에서 학업을 이어나가지 못한 채 타이완으로 다시 돌아온 천스즈는 중학교 정식 입학 시기를 놓치게 되버렸는데요. 그래서 당시 ‘단수이 중학(淡水中學)’이라고 불리는 캐나다 선교사가 세운 미션스쿨에 입학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단수이는 캐나다 선교사 맥케이(George Leslie Mackay, 1844-1901)가 타이완에서 학교와 교회를 설립해 활동하기 시작한 곳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타이완 서양문화의 창구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지역인데요. 특히 서양음악은 바로 이곳 단수이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단수이를 중심으로 타이완에 서양음악의 싹이 트일 무렵, 윌리엄 굴드(William Gauld, 吳威廉) 목사의 부인인 마가렛 굴드(吳瑪利, Margaret Mellis Gauld, 1867-1960) 선교사는 1911년부터 단수이 중학교에서 피아노, 풍금, 성악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요. 서양음악에 대해 생전 들어보지도 접해보지도 못했던 천스즈는 1923년 단수이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피아노 소리를 듣고 매료됩니다. 

천스즈의 장남 천신슝(陳信雄)씨의 따르면, 

“아버님 말에 따르면 아버님의 인생은 피아노를 처음 들었던 그 때서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윌리엄 목사를 통해 기독교를 알게 되고, 마가렛 선교사로부터 피아노와 노래, 성가 등 음악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 두 분은 저희 아버지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아버님 인생의 발전에 시초가 되주신 분이죠.”

1920년대 타이완에서 피아노를 보유한 학교는 거의 없었지만, 다행히 단수이중학교에는 몇 대를 갖고 있어, 모든 학생들이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학생 한 명 당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진 않았죠. 그러자 이미 피아노에 매료된 천스즈는 저녁이 되면 두꺼운 면보를 챙겨 피아노실로 들어가 창문을 가린 채 작은 소리로 몰래 연습했다고 합니다. 조건이 어떠하던 피아노를 연습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에겐 행복이었던 것이죠. 

천스즈가 단수이중학교에서 배운건 피아노뿐만이 아닙니다. 당시 타이완 최초의 남성합창단이 바로 단수이중학교에 설립되었는데요. 당시 천칭충(陳清忠, 1895-1960) 교장이 설립한 글리클럽(Glee Club)에서 천스즈는 합창활동도 병행할 수 있었습니다. 단수이중학교의 글리클럽은 타이완 각지에서 공연했을뿐만 아니라 심지어 일본, 중국 대련(大連) 등에서 공연하기도 했을 정도로 실력도 인기도 좋았다고 하는군요. 타이완 역사의 첫 남성합창단 자리에 바로 천스즈가 있었던 것입니다. 

10대 소년이었던 천스즈는 학교 재학 중에 그의 첫 피아노 작품 ‘바나나 이파리 날리는 산들바람(蕉葉微風 Breezes through the Banana Leaves)’을 작곡하기도 합니다. 간단한 곡조이지만, 선율이 상당히 우아한 곡이죠. 

일본 유학

단수이중학교를 통해 천스즈는 정식으로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졸업후인 1930년 타이베이신학교에 들어가 학업을 이어나갑니다. 이곳에서 타이완에 온 또 다른 캐나다 선교사 이사벨 테일러(Miss Isabel Taylor, 德明利, 1909-1992)를 만나는데요. 캐나다 로열 컨서버토리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전공한 이사벨 테일러를 천스즈는 사사했고, 당시 음악 전문학교가 없었던 타이완에서 전문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천스즈는 일본으로 유학가는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1934년, 23살의 천스즈는 세 명의 선교사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일본 도쿄신학대학(Tokyo Union Theological Seminary)에 입학할 수 있었는데요. 당시 세 명의 선교사들은 천스즈에게 매달 10엔씩(총 30엔) 장학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본으로 유학 간 천스즈는 당시 일본 신학교의 기오카 에자부로오(木岡英三郎, 1895-1982) 선생의 지도 하에 작곡을, 나카다 우고(中田羽後, 1896-1974)로부터 발성과 지휘법을 배우면서 전문 음악가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죠. 

일본에 유학하는 동안 같은 시기에 유학중인 다른 타이완 음악가들(장원예[江文也], 바이올리니스트 웡롱마오[翁榮茂], 작곡가 뤼취안성[呂泉生] 등)도 만납니다. 

그가 일본으로 유학 한 첫 해인 1934년 6월 24일, 마침 일본에 유학중인 타이완 학생들이 모여 ‘타이완동향회’를 결성해 도쿄에서 창립대회를 열었는데요. 당시 천 명 이상의 재일타이완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지식인 양자오자는 일본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타이완 학생들이 타이완으로 돌아가 ‘향토방문 음악회’를 개최하는 것 어떻겠냐고 제의했고, 이 음악회에서 천스즈는 모든 공연의 피아노 반주를 맡았습니다. 타이완 1세대 서양음악가들이 모여 선보인 첫 공연에 천스즈도 함께 있었던 것이죠. 

다음주 대만주간신보 시간에는 이어서 타이완 1세대 서양음악가 천스즈의 인생 후반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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