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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원다와 안창남 1: 식민지를 대표하는 두 청년 비행사

  • 2024.03.05
대만주간신보
1922년 일본에서 열린 도쿄오사카 우편비행대회에 참여해 수상한 셰원다와 안창남. 같은 해에 태어나 비행에 대한 열망으로 식민지 타이완과 조선에서 일본으로 유학 온 이 둘의 인생 전반부는 참으로 유사하다. - 사진: 다큐멘터리 '1920을 찾아서(尋找1920)'의 장면 중 캡처

1901년에 태어나 중학교 시절 미국에서 건너온 아트 스미스(Art Smith)라는 파일럿의 곡예 비행을 보고 일본으로 건너 가 비행을 배운 청년. 이 청년은 공교롭게도 타이완에도 한국에도 있었습니다. 바로 셰원다(謝文達, 1901-1983)와 안창남(安昌男, 1901-1930). 일제강점기 서로 다른 식민지에서 자랐지만, 한 제국아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기 때문일까요? 비행을 배우기까지 이들이 각각 타이중 그리고 경성에서 겪은 이야기는 놀라울만큼 비슷한데요. 같은 해에 태어나 타이완과 한국을 대표하는 첫 비행사가 된 두 청년의 이야기 <대만주간신보>에서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타이완과 조선의 하늘은 연결되있죠. 그렇게 연결된 하늘과 같이 서로 다른 식민지 출신의 두 청년은 자신의 자리에서 동시에 비행의 꿈을 꾸었습니다. 

1910년 미국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비행 훈련에 성공하면서 비행기를 선전하기 시작해 전세계는 곡예 비행을 하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상공에 있는 비행기에서 전단지를 뿌리는 것으로 광고를 하기도 했죠. 1917년 그 해 야간 곡예 비행으로 유명했던 미국인 파일럿 아트 스미스가 일본의 초대로 5월과 6월 각각 조선과 타이완에 왔고, 이 때 현장에서 아트 스미스의 비행을 지켜본 두 청년은 비행을 결심하게 됩니다. 

타이중 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셰원다는 마침 학교 근처에 있는 타이중 비행장에서 공연을 봤습니다. 아트 스미스가 온 그 날 타이중 지역의 모든 학교와 공공기관은 종일 휴일을 했고, 현장에만 2만명의 관중이 모였는데요. 당시 16살이었던 셰원다는 아트 스미스의 곡예 비행을 보고 원대한 꿈을 갖게 됩니다. 당시 타이완에서는 전례가 없었던 비행을 말입니다. 셰원다가 다니고 있던 타이중 중학교는 타이완 지식인들이 총독부를 설득해 세운 학교로 타이완 학생을 위한 첫 중학교였습니다. 타이완 총독부가 세웠던 중학교가 대부분이었던 당시 타이완의 몇 안되는 타이완 학교였죠. 부모님은 자랑스런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한 후 총독부의학교 시험을 봐서 의사를 하거나 공부로 일본으로 유학 가기를 기대했습니다. 아들로부터 비행을 배우러 일본으로 가겠다는 이야기는 상상할 수 없었죠. 

한편, 일본 오사카 출신의 이토 오토지로(伊藤音次郎)는 민간 비행기 제작 선구자의 길에 들어선 일본의 대표적인 인물로, 도쿄로 넘어와 비행학교를 세웠는데요. 1919년 3월 30일 이토의 일기에는 “오늘 타이완에서 셰원다가 왔다”라고 적혀있습니다. 1919년 셰원다는 타이중 중학교를 졸업하고 결국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금식을 하면서까지 비행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강하게 드러낸 후 18살의 나이에 혼자 도쿄로 향했습니다. 

도쿄 근교인 도쿄만(Tokyo Bay) 주변에는 당시 여러 비행학교가 모여 있었습니다. 이곳이 바로 일본 민용 항공의 발상지라 할 수 있죠.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경계인 이곳에서 타이완인, 조선인, 일본인, 그리고 그 외 아시아 나라 학생들은 비행조종사의 꿈을 향해 이곳에서 훈련을 했습니다. 셰원다가 다닌 이토 비행학교는 치바현(千葉)의 이나게(稲毛) 해변으로 그 일대는 갯벌 연안이었습니다. 이나게 해안이 썰물이 되면 비행의 활주로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학생들은 썰물과 밀물 사이 시간을 활용해 해안선을 따라 매일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셰원다는 도쿄에 온지 1년 만인 1920년 3월 무사히 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리고 비행조종사로서의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죠. 학교에 남아 조교를 맡기도 하고, 학교를 대표하여 일본에서 열린 제1회 현상비행경기대회에 참여, 3등을 해 상금을 획득하기도 합니다. 민간 비행 고수들의 경쟁속에서 타이완에서 온 셰원다는 당대 일본 조종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죠. 또 다시 도쿄오사카 우편비행대회에 참여해 고액의 상금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상을 받은 또 한 사람, 조선에서 온 안창남이 있습니다. 일본의 신문은 식민지에서 온 두 청년의 비행 기술을 극찬하며 이 둘을 주목하기도 했습니다.     

타이완 총독부의 관영지인 <타이완일일신보>는 1920년 10월 31일 셰원다의 타이베이 상공 비행을 대대적으로 보도합니다. 

“본도 유일의 비행사 셰원다가 타이베이에 왔다! (本島唯一的飛行家謝文達)”

미국인, 일본인 이후 타이완 상공에 첫 타이완 파일럿이 출현하게 된 것입니다. 그가 귀국한 당시 마침 일본 천황 탄생일을 축하하는 천장절(天長節)를 기념하기 위해 셰원다는 비행 퍼포먼스에서 천황생일을 경축하는 전단지를 뿌리고, 타이완을 방문한 구니노미야 구니요시 왕(久邇宮邦彥王)을 만나 상금과 일본 황실가 문양이 새겨진 실버컵을 선물로 받기도 했습니다. 

한편, 조선의 청년 안창남 역시 셰원다와 마찬가지로 1917년 아트 스미스가 경성의 여의도 활주로에서 선보인 곡예 비행을 보고는 비행조종사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비행학교로 바로 진학한 셰원다와 달리 안창남은 먼저 오사카 니시코에 있는 자동차학교 전수과에 들어가 발동기에 관해 공부한 후, 도쿄만에 있는 또 다른 비행학교인 오구리(小栗) 비행학교로 입학합니다. 

셰원다의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와 안창남은 알던 사이라고 말했습니다. 

“저희 아버지와 오구리씨는 알던 사이였습니다. 오구리씨는 저희 아버지에게 안창남씨를 소개해주면서 너희 둘은 모두 일본 식민지에서 일본으로 처음 온 사람들이라며 좋은 친구로 지내길 바란다고요.”

 그리고 안창남은 비행학교 졸업 후 셰원다와 같은 해인 1921년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 시험에 통과해 자격증을 획득합니다. 경기대회에도 출전할 수 있는 실력이었던 안창남은 자신의 비행기가 없어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죠. 그랬던 그가 1922년 자신의 첫 대회에 나갑니다. 바로 앞서 소개한 셰원다와 함께 출전한 도쿄오사카 우편비행경기대회입니다. 그가 어떻게 대회에 참여할 수 있었냐하면, 일본 육군항공학교에서 사용했던 고물 비행기를 빌려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안창남에 따르면 “폐물과 같이 창고에 버려두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낡고 오래된 비행기를 갖고도 안창남은 대회에서 좋은 성적으로 수상합니다.  

그렇게 안창남은 수상의 성원에 힘입어 같은 해 ‘고국방문'을 합니다. 조선 경성의 여의도 활주로에서 안창남은 처음으로 조선 상공을 가르는 비행 공연을 선보이죠. 당시 경성 인구가 30만 명이었는데 무려 5만 명이 모여 환호를 하고 만세를 부르며 안창남의 비행을 응원했습니다.  

“부산에 발을 디디면서부터 남대문에 도착하기까지 여러분이 불러주시는 만세 소리를 들을 때 내 몸에는 소름이 쪽쪽 끼치고, 알지못할 눈물까지 핑 돌았습니다.” 안창남, ‘공중에서 본 경성과 인천’ 중 

타이완과 조선의 하늘은 연결되었지만, 두 청년에 대한 각 총독부의 대접은 판이했습니다. 

셰원다가 귀국해 타이중의 상공을 날자 타이완 총독 덴 겐지로(田健治郞, 1855~1930)는 직접 후원회를 만들어 셰원다 개인 비행기 구입을 위한 모금을 지시하고 이에 성공하죠. 반면에 조선 총독인 사이토 마코토(1858~1936)는 안창남의 성과를 묵인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리고 셰원다의 아들, 셰동한(謝東漢)이 남긴 인터뷰에서 그는,

“저희 아버지는 메이지, 다이쇼, 쇼와, 중화민국를 거쳐 그 시대의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 때 일어난 일에 대해 아버지께서는 제게 출판할거냐 물으셨고, 너 돈 있느냐? 하지 말거라 하셨습니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적게 알수록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셰원다의 아들이 이야기했듯, 셰원다의 귀국 이후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습니다. 타이완과 조선을 대표하는 첫 비행조종사로서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은 두 청년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다음 주 대만주간신보 시간에는 식민지의 하늘을 활주한 셰원다와 안창남의 다음 이야기에 대해 들려드리겠습니다. 

 ►참고자료

      謝東漢、吳餘德,《徘徊在兩個祖國》臺北,2016。​

      다큐멘터리 《尋找1920》,2019。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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