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영화의 단골소재 중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세계대전이라는 말에 걸맞게 5대양 6대륙에서 56개국 이상이 참전했으며 희생자만 6천만 명에 달한 20세기 최대·최악의 전쟁이었습니다. 1년 뒤면 종전 80주년으로, 여전히 수많은 이의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만큼, 적지 않은 TV 드라마, 영화, 소설 등 예술 작품들이 그 아픔을 꾸준히 담아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많지만, 타이완인의 관점에서 출발한 관련 작품이 없었었으니 지난 8월 공영방송 PTS(公共電視)를 통해 방송된 최초의 타이완인 중심의 제2차세계대전 드라마 ‘쓰리 티얼스 인 보르네오(聽海湧, Three Tears in Borneo)’가 주목을 끌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총 5부작으로 제작된 쓰리 티얼스 인 보르네오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제에 징집돼 포로감시원으로 보르네오 섬에 보내진 타이완 청년 3명이 냉혈한 학살에 연루되어 전후 전범재판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드라마의 중문 원제는 ‘聽海湧_청해용’입니다. 타이완어 발음으로 ‘파도 소리를 듣는다’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눈을 감고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 고향인 해담동의 파도 소리와 똑같지? 그러니 파도 소리를 들을 때마다 고향으로 돌아왔다고만 생각하면 두려움이 사라질 거야”라고 드라마에서 한 타이완 포로감시원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동포를 위로합니다. 당시 보르네오 섬에 보내진 타이완 청년들은 산과 정글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살며 울창한 나무들 때문에 바다를 볼 수 없었지만, 멀리서 파도소리가 바닷파람을 타고 나무 틈 사이로 그들의 귀에 들려오게 됐는데, 이 파도소리는 그들에게는 그리운 고향의 상징이고 지금은 힘들게 살지만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하는 동기였다고 쓰리 티얼스 인 보르네오의 순지에헝(孫介珩)이 감독은 밝혔습니다.

쓰리 티얼스 인 보르네오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섞인 이야기로,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 포로감시원으로 동원됐다가 전범이 된 타이완인 커징싱(柯景星)의 실화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터진 직후, 타이완 중부 장화(彰化) 농촌 출신인 커징싱은 가정의 경제 사정을 개선하기 위해 22세이던 1942년 일본의 연합군 포로를 감시하는 포로감시원에 지원했습니다. 키징싱이 배치된 곳은 말레이제도에 있는 보르네오 섬의 포로수용소였습니다. 커징싱은 이곳에서 일본군에 붙잡힌 영국·오스트레일리아·인도네시아군 병사들을 감시하는 일에 내몰렸습니다.
포로수용소 감시원의 신분은 ‘군속(軍屬, 군무원)’이었습니다. 군속은 정규군은 아니지만 군의 위계질서에 순응하고 복종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일본군 이등병보다 더 밑으로 천대를 받았고 폭행을 당하곤 했으며, 일본군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양심을 무시하고 전쟁포로를 구타하고 학대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보르네오 포로수용소 감시원을 역임하던 커징싱은 역시 이러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태평양전쟁 말기, 전황은 일본 쪽에 불리하게 전개되었고, 밀고 밀리는 사투 끝에 연합군은 일본군을 궤멸시키고 남양군도(南洋群島)의 섬나라들을 점령했습니다. 당시 보르네오 섬에 있던 일본군들은 연합군 상륙 소식을 듣고 포로들이 부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포로의 식량을 줄이고 패잔병을 버리며 심지어 협약을 위반하고 포로 집단 학살을 감행했습니다.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 커징싱을 포함한 많은 타이완적 포로감시원들은 어쩔 수 없이 수십 명의 포로들에 총격을 가해 살해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와 일본의 패망으로 종전되자 일본군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던 타이완 청년들은 포로를 학대했다는 이유로 전범으로 기소됐습니다. 이들 가운데에는 사형을 선고받고 타향에서 죽게 된 사람도 있고, 목숨을 건졌으나 긴 세월 구금의 고통을 겪어야 했고, 풀려나 타이완에 돌아온 후에도 ‘적국 공범’이라는 사회적 냉대를 감수하며 정부로부터 사찰과 감시에 시달렸던 사람도 있습니다. 커징싱은 후자였습니다. 그는 1심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일본적 상관이 학살 지시를 내렸다고 시인했기 때문에 결국 10년 징역으로 감형됐습니다.

이러한 커징싱의 경력을 주축으로 하는 전제 하에 드라마의 이야기 전개를 좀 더 풍부하고 만들며 역사적 관점의 다양성도 확보하기 위해 드라마는 커징싱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 아위안(阿遠) 외에도, 롱훼이(榮輝), 더자이(德仔) 등 2명의 캐릭터에 상당 부분의 분량을 할애했습니다.
친형제는 아니지만 형제보다 더 애틋한 3명의 타이완적 포로감시원은 참군동기가 각각 다르고 포로를 대하는 태도에도 차이가 보입니다. 맏형 롱훼이는 어릴 적부터 일본 중심의 교육을 받고 자신을 일본인으로 생각하며, 포로수용소에서 일본 상관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포로에게 구타, 학대, 기타 비인도적 대우를 자행하곤 합니다. 둘째형 아위안은 일본인 여자친구 아버지의 연애 허락을 받기 위해 군에 지원하기로 하지만, 포로감시원으로 일하는 동안 늘 포로들을 동정하고 일본군의 금지령에도 담배를 달걀로 교환하고 포로에게 줍니다. 막내 더자이는 가족의 생계에 도움을 보태기 위해 나이를 속이고 일본군에 가입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훨씬 잔혹한 전장에서 살아남고자 순진하고 사냥하던 그는 점차 냉혹하고 분노에 찬 인물로 변모하게 됩니다. 서로 다른 정체성과 입장 변화를 나타내는 세 포로감시원의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정체성의 혼란과 인성의 방황을 겪었던 타이완적 일본군인의 모습을 재현하여 시청자들로 하여금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그 아프고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에 빠져들게 합니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반영한 드라마와 영화는 있을 수 없지만, 이들 작품을 통해서라도 잊혀졌거나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이완인 시각에서 보는 태평양전쟁 역사와 그 역사에 가려진 타이완 포로감시원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드라마 ‘쓰리 티얼스 인 보르네오’를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오늘의 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상으로 Rti한국어방송의 진옥순이었습니다.

사진:‘쓰리 티얼스 인 보르네오’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Rti 중앙방송국
Rti 중앙방송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