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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을 떠나는 타이완 여학생들의 학구열

  • 2024.07.09
대만주간신보
일본으로 유학 가 1921년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타이완 최초의 여의사 차이아신(蔡阿信) - 사진: 위키피디아

<대만주간신보> 벌써 80번째 시간입니다. 한국인에게는 아픈 역사로 기억되는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타이완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들여다 본지도 어느덧 만 2년 여가 되어 갑니다. 일본의 식민 역사를 겪은 타이완 사람들의 서로 다른 경험과 기억을 되짚어 보는 작업은 동시대 유사한 역사경험을 가진 한국인들에게 일종의 ‘거울효과’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시작하게 된 <대만주간신보>. 최대한 다양한 주제와 관점을 갖고 타이완의 일제강점기 역사를 청취자님들께 소개해드리고자 오늘도 이곳저곳 사료를 뒤적거리며 흥미로운 소재들을 찾습니다. 80회를 맞은 오늘 <대만주간신보> 시간에는 자신의 거처를 떠나 ‘유학’을 떠났던 당시 타이완 여학생들의 학구열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906년, 타이완의 남부 도시 타이난의 한 신문에서는 관청이 초등학생들을 동원하여 한 선배의 유학 환송회를 하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이 선배의 이름은 궈시윈(郭希韞). 상인인 아버지 아래서 자란 궈 양은 궈 씨 집안 내 사숙(私塾)이라고 하는 일종의 서당을 갖고 있어, 선생님으로부터 시원(希韞)이라는 학명을 받았습니다. 물을 기르거나 가축을 기르는 등 집안일만 하는 동시대 다른 딸과는 달랐던 궈 양은 15세의 나이네 당시 초등학교였던 공학교(公學校)를 졸업하고, 안핑(安平)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 단수이(淡水)로 가 타이베이 스린(士林)에 소재한 여학교에 들어갈 예정이었습니다.  

타이완 섬이 청나라의 일부였을 당시, 여자가 공부한다는 것은 상당히 희귀한 일이었습니다. 그나마 사회적 신분이 높았던 여아에 한해서 아주 소수의 여자만이 공부를 할 수 있었죠. 공부하는 장소는 집에서 멀지 않은 사숙, 즉 서당에 가는 것뿐이었습니다. 사실 집 근처 사숙에서 공부하는 건 남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에는 남자라 하더라도 산 넘고 고개 넘어 어느 명문 학교의 어느 선생님을 쫓아 더 높은 수준의 학문을 구한다는 상황은 있지 않았죠. 

1895년에 일본인들이 타이완에 정착해 식민정부를 꾸리기 시작하면서 타이완의 각 지역에는 오늘날의 학교와 같은 현대식 학교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교실에는 칠판과 분필이 놓여있고, 교실의 벽면에는 일본제국의 지도가 걸려있었으며, 수학이나 체육과 같은 과목을 가르치기 시작했죠. 이러한 현대식 학교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십대의 어린 타이완 여아들도 부모와 고향을 떠나 학문을 위해 길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타이난 출신 궈 양과 같이 초등학교를 졸업해 중학교 진학을 위해 타이난에서 타이베이로까지 가는 것이 무슨 ‘유학’이냐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국경을 건너 다른 나라로 가야지만 유학이라고 생각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100년 전에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 작은 배를 타고 풍랑을 헤쳐나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모험이었습니다. 특히 과거 집안일을 도맡아 했어야 했던 여성들에게는 보다 어려운 도전이었습니다. 

실제로 다른 나라에 가서 지식을 구하는 유학도 사실 궈시원 양보다 앞선 1898년에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1898년에 유학을 떠난 타이완의 첫 여자 유학생은 황잉(黃鶯)과 우샤오(吳笑). 공교롭게도 모두 타이난 태생인대요. 두 학생의 집안형편은 궈 양만큼 좋지는 않았습니다. 황잉 양의 부모는 일찍이 돌아가셔서 나이 많으신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소녀였고, 우샤오 양의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럼에도 두 소녀는 어렸을 적 영국 선교사가 운영하는 미션스쿨에서 공부할 수 있었고, 각각 12살, 13살이 되던 해 한 일본인 목사가 두 소녀를 데리고 일본 도쿄에 소재한 메이지여학교에 가서 계속 공부를 시켰습니다. 이 때 초기 학비는 모두 메이지여학교의 이와모토 요시하루(巖本善治) 교장이 지원했고, 후기에는 타이완 총독부의 국비로 지급이 되었죠. 그렇게 황 양과 우 양은 타이완 최초의 국비 여자 유학생이 되었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황 양과 우 양은 10년 간 일본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왔는데요. 마치 일본 여성이 된 듯한 분위기와 행동, 말투를 가졌다고 합니다. 타이완에서는 볼 수 없는 일본 겨울의 하얀 눈을 그리워했고요. 타이완으로 돌아온 두 국비 유학생은 타이베이의 한 학교에서 교직을 맡았습니다. 고생 끝의 낙이 온다고, 10년 간의 유학으로 그들의 신분과 인생이 새롭게 탈바꿈 되었죠.    

이 둘을 시작으로 1910년대를 지나 20년대가 되자, 타이완에서는 외국으로 유학 가는 여학생이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타이완 여학생들이 주로 가는 유학지는 당연 일본이었습니다. 1927년 일본 교토에는 300여 명의 타이완 유학생이 있었고, 이중 여학생은 10여 명이 있었죠. 타이완 여학생은 일본에서 주로 중등학교인 고등여학교를 다녔습니다. 일반학교에 불과했던 고등여학교에서 전문 기능까지 갖기는 어려웠죠. 그러나 일본에 소재한 고등여학교에 재학했던 타이완 여학생들은 의학이나 음악, 미술 등 자신의 전공을 발견할 수 있었고, 고등여학교 졸업 후 전문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타이완 최초의 여의사 차이아신(蔡阿信) 역시 일본 유학 출신으로 1921년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수재였습니다.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는 타이완 여성사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는 유학지 중 하나입니다. 타이완 최초 여성 의사들이 탄생한 곳이기 때문이죠. 국립대만대학 공공위생과에서 수 많은 의사 제자들을 길러낸 리수위(李淑玉) 교수도 일제시기였던 1938년 타이베이의 한 고등여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타이완에서 입학할 수 있었던 상급학교는 지금의 국립대만대학의 전신인 타이베이제국대학이었으나, 당시 제국대학은 여학생을 받고 있지 않았죠. 그랬기에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출국, 유학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해 타이완으로 돌아온 리 양은 의사로서 또 후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오늘날 40세 이상의 대만대학 출신 의사들은 모두 리 씨의 학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타이완 의학계에 헌신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1930년대가 되자 타이완 여성들의 유학은 훨씬 활발해졌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하나둘씩 생겨나자, 당시 타이난제2고등여학교를 졸업한 수펑밍(蘇鳳鳴) 바로 도쿄로 유학가 메이지 대학, 일본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죠. 뿐만 아닙니다. 타이베이 출신의 천싱춘(陳杏村)은 당시 도쿄 긴자에 소재한 패션 스쿨로 유학해 졸업 후 1935년 타이베이에서 가장 번화했던 시내 한복판에 매장을 차려 15명의 직원을 고용해 운영하던 타이완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일제시기 일본 유학에 이어 일본 외 다른 나라로 유학 갔던 타이완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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