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중정기념당의 남동쪽, 항저우난루(杭州南路)와 진산난루(金山南路) 사이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진화제(金華街) 한 켠에 마치 일본 교토의 유적을 되살려놓은 듯한 도시 공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거 일제시기에나 있을 법한 일본식 전통 건축물들이 새롭게 탈바꿈해 젊은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세련되고 맛있는 맛집들이 들어차 있는 이 곳은 바로 진화제 135호에서 177호에 걸쳐 있는 롱진 파크입니다. 이 단지는 검정색의 일본식 목제 건물이 가진 특색과 울창한 노목을 그대로 살린채 요즘 감성의 카페, 일본식 식당, 바, 베이글와 머핀을 파는 베이커리, 이자카야 등이 들어서 있어, 말그대로 SNS에 올리기 딱 좋은 그런 분위기를 갖추고 있습니다. 마치 서울의 복고풍의 카페나 한옥으로 된 식당, 바 들이 유행하는 것과 같이요. 타이베이 진화제에 가면 일본의 교토 거리 한복판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물씬 풍겨집니다.
사실 타이베이시에서 과거 일제시기 건축물들을 복원해 현재에도 사용하고 있는 사례는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주 타이베이의 야경을 소개하며 말씀드린 타이완총통부가 있고요, 과거 타이완제국대학(현 국립대만대학)이 소재했던 캠퍼스 주변에도 당시 일본인 교수들이 거주했던 일본식 주거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롱진 고저스타임 파크(榕錦時光生活園區, Rongjin Gorgeous Time, 이하 롱진 파크)는 타이베이 시정부 문화국에서 진행한 "오래된 집 문화 운동 프로젝트(老房子文化運動計畫)”를 통해 되살아난 도시 공간입니다. 타이베이 시정부는 과거 일제시기에 지어진 건축물과 그에 관련된 문화 자산을 복원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3년 이상에 걸쳐 2억이 넘는 비용을 투자해 이곳을 복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작년인 2022년 9월 7일 정식으로 개장했죠. 지금은 SNS 감성으로 충만한 이곳 룽진 파크가 원래는 ‘타이베이 형무소 관사'였다고 합니다.
일제시기 타이베이 형무소
타이베이 형무소 관사는 일제시기인 1904년 완공된 타이완 최대 규모의 감옥인 타이베이 형무소를 관리 운영하는 관료들의 숙소였습니다. 과거 타이베이 형무소에는 타이완 신문학의 아버지인 라이허(賴和)가 수감된 바 있고 항일열사인 뤄푸싱(羅福星)도 이곳에서 고문을 받다 1914년 결국 교수형에 처했던 곳으로, 타이완의 항일운동 관련 열사들과 관계된 중요한 역사적 현장인데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타이완으로 넘어온 국민정부는 이곳을 '타이베이 교도소'로 이름을 바꿔 1950년대 가장 많은 정치범을 수감하기도 했습니다. 국민당 정부를 따라 타이완으로 옮겨온 법무부 관계자들이 점차 이곳으로 모여들었고 교도소의 면회 수요로 상가들이 몰려들면서 교도소 입구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도 3,000명에 달하기 시작했습니다. 1963년 타이베이 교도소는 타오위안 구이산(桃園龜山)으로 이전되면서 과거 일제시기 형무소의 흔적을 점점 지워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는 새로운 이주민들이 자리를 잡으며 자신들만의 생활터전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화광 커뮤니티(華光社區)
진화제 이 구역은 1970년대에 화광 커뮤니티(華光社區)라는 새로운 도시 개발 지구로 불리며,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백 가구가 정착했습니다. 화광 커뮤니티 거주자로는 합법 가구, 불법 가구 및 불법 건설 가구, 이렇게 세 가지 유형이 있었는데, 합법 가구는 법무부 직원으로 기숙사를 갖추고 정부가 보상금을 지급해 가장 먼저 이사한 주민들이고, 불법 가구는 거주자격을 잃고도 이 기숙사에 계속 머문 사람, 불법 건설 가구로는 1950-60년대 농촌 이주민으로 농촌에서 타이베이 도시로 올라와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입니다. 불법 건설 가구가 약 100여 가구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2007년까지 행정원은 화광 커뮤니티 토지를 금융특구인 '타이베이 월 스트리트'로 환수하기 위해 도시재생 4대 계획을 제시했고, 법무부는 이 구역 주민들을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 및 철거를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해 이사를 거부하는 주민들과 이들을 돕기 위해 지역사회에 들어간 대학생들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습니다. 법무부는 결국 2013년 3월 경찰력을 동원해 주민들을 강제퇴거시킨 후 집을 철거하기 시작했고, 이어 항쟁에 가담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해 이 중 5명은 징역 50일을 선고받았습니다.
화광 커뮤니티의 강제이주가 시작된지 10년째가 된 올해 2023년. 결국 행정원이 제시한 '타이베이 월 스트리트' 환수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고, 대신 유료 주차장과 넓은 잔디밭, 그리고 일본식 거리를 재현한 룽진 타임 라이프 파크가 생겨나 사진 촬영의 명소가 된 것이죠.
타이베이시의 복원 “오래된 건물의 활성화와 오래된 나무와의 공생”
바이페이위(白佩玉) 롱진 파크 운영장은 ‘룽진 타임 라이프 파크'에서 ‘룽진'이라는 이름은 이 구역 내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된 반얀트리, 즉 용수(榕樹)의 앞글자인 ‘룽(榕)'과 일제시기 이 거리의 명칭인 진마치(錦町)의 ‘진(錦)'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타임(時光)’을 넣은 이유는 이곳이 과거의 영광을 되돌릴 수 있기를 희망하는 의미를 담기위해서라고 했습니다.
20세기 초 일제시기에는 항일운동가들의 교도소였고, 20세기 말에는 농촌 이주자들의 거주지였던 이곳 진화제를 룽진 파크로 복원하는 타이베이시의 슬로건은 “역사적인 건물의 생명과 이야기를 보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과거 공중목욕탕 건물 옆에 있는 큰 나무의 무성함을 살려 건축물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공원 단지 안에 역사전시공간을 함께 조성해 문화재 등 역사적 자료를 통해 형무소 관사의 전생을 보여주는 것.
타이완의 언론매체, 더 리포터(報導者, The Reporter)의 작년 11월 보도는 “일본식 풍취와 세련된 소비의 장 뒤에 과거 교도소 총살범들의 망령뿐 아니라 수백 가구의 서민들의 항쟁의 피눈물도 배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불과 9년 전만 해도 식당이나 잔디밭, 주차장이 아니라 수백 명이 살고 있는 거주지였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강제 철거로 뿔뿔이 흩어진 주민들을 찾아 인터뷰한 결과, 주민들에 대한 법적 소추는 “아직도 진행형”으로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강제 철거로 40년 넘게 자신이 살았던 옛날 집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천샤오밍(陳孝明) 씨는 더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산시(的老西)성 출신으로 젊었을 때 국민당에 붙잡혀 결국 타이완에서 살다 40대가 되서야 결혼해 6명의 자녀를 낳았고, 아버지는 그 해에 약 8만 위안을 주고 진화제 135호의 이 집을 샀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결혼도 했고 딸 둘을 낳아서 우리 부모님이랑 여섯 식구랑 살았습니다. 초저녁만 되면 마당에 앉아 있는 걸 좋아했어요. 겨울에는 불을 피우고 마당에서 술을 마시고 꽃향기를 맡았죠. 우리 집 대문을 나오면 왼편에 바로 옛 성벽이 있는데, 많은 영화와 뮤직비디오가 이곳을 찾아와 촬영을 했습니다. 갑자기 법원의 통지가 오더니 우리 가족은 모두 피고인이 되었 고 정부는 우리에게 300만 위안의 부당이득을 배상하라고 했습니다. 강제 철거 소송 기간 동안 우리 집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엔딩곡으로는 천젠니엔(陳建年)의 ‘옛 사원 옆 오래된 벽돌담(古廟旁的老磚牆)’을 띄워드립니다. 유명 관광지인 용캉제에서 멀지않은 진화제의 룽진 고저스타임 파크. 진화제를 걷다 우연히 이곳을 발견한다면 맛있는 음식과 디저트의 풍미를 한껏 느끼시면서, 동시에 이렇게 아름다운 장소 이면에 숨겨진 역사도 기억해보시는 것 어떨까요?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Rti 중앙방송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