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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펑제 41가 골목길의 작은 독립서점

  • 2024.04.24
어반 스케쳐스 타이베이
'타이완'을 주제로 한 츠펑제 골목길의 작은 독립서점, 기모치 서점. - 사진: 奎府聚書店 Kimotsi 페이스북

타이베이에는 새벽부터 거센 비가 내렸습니다. 밤에도 날씨가 후덥지근 한 요즘, 베란다 창문을 살짝 열어두고 잠을 잤던 저는 거센 빗소리에 놀라 잠을 깨고 말았는데요. 비는 오전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간만에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니 마음 한 켠에 묵혀두었던 걱정이나 잡념이 시원하게 씻겨내려가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오전 내내 내리던 비는 점심이 되어서야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비가 세차게 오는 날이면 밖에 나가지 않고 집이나 집 근처 작은 카페에 앉아 조용히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러고보니 생각나는 타이베이 작은 서점 겸 카페가 있네요. 오늘 어반스케처스타이베이 시간을 빌어 청취자님들께 소개드릴까 합니다. 

츠펑제(赤峰街) 

타이베이 지하철 그린라인과 레드라인이 만나는 교통의 중심지인 중산역(中山站) 

4번 출구로 나오면 작은 골목길이 모여있는 구역이 나옵니다. 바로 츠펑제(赤峰街) 골목길인데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레드라인 중산역과 쐉롄역(雙連站) 사이입니다. 츠펑제는 오래되고 낡은 골목 사이로 소위 MZ 감성의 작은 편집샵이나 빈티지샵, 맛집들이 있는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새 것과 낡은 것이 공존하는 거리 풍경이 인상적이죠. 마치 서울의 을지로 3가 철물점 거리와 유사합니다.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한때 공구, 조명, 알루미늄, 타일 등 가게로 활기를 띄던 을지로 3가는 2015년 서울시에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인근에 젊은 감성의 카페나 베이커리, 빈티지 샵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소위 ‘힙지로(힙+을지로)’가 되었죠.  

타이베이의 츠펑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법한 좁은 골목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츠펑제는 과거 자동차 부품이나 철물을 주로 판매해 한때 ‘주조 거리(打鐵街)’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상당히 특색있고 독특한 인테리어의 빈티지 편집샵이나 사진관이나 고서점, 독립서점,  카페 등이 입점해 오래된 거리의 츠펑제는 젊은 감성이 더해진 예술 거리로 거듭났습니다. 이곳 츠펑제에서 만나는 타이완의 젊은이들은 패션 감각도 남다르죠. 츠펑제는 특정 점포를 들르지 않더라고 그냥 유유히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요즘 타이베이의 트랜드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한 번은 꼭 걸어봐야 갈 타이베이의 골목길 중 하나입니다. 

츠펑제 41가 기모치 서점

제가 오늘 소개하고 싶은 서점은 바로 이 츠펑제에 있는 독립서점 ‘기모치 서점’(奎府聚書店 Kimotsi) 입니다. 독립서점이란 대규모의 자본이나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 서점 주인의 취향대로 꾸며진 작은 규모의 서점을 일컫는데요. 독립서점의 장점은 서점 주인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고, 자신의 취향과 맞을 경우, 한 분야에 대한 다양한 서적을 한 눈에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곳 기모치 서점은 츠펑제 41가에 소재해 있는데요. 서점 입구에 들어서면 짙은 오크색 나무로 지어진 건물 외관이 반깁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서점 안 책들은 상당히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고, 서점 가운데에는 책을 읽으며 커피를 한 잔 할 수 있는 테이블이 여러개 놓여있죠. 15평 정도 남짓한 크기의 기모치 서점의 내부도 오크색 나무를 중심으로 꾸며져 있으며, 천장 한가운데에는 화려한 유리로 된 샹들리에게 걸려있죠. 마치 과거 찻집을 연상케하는 복고풍이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서점의 디자인뿐만이 아닙니다. 서점 안으로 들어가 진열된 책들을 두루 살펴보면 기모치 서점의 컨셉, 주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타이완(台灣)’입니다. 타이베이에 있는 독립서점의 주제가 ‘타이완’이라는 것이 별로 놀랍지 않으시다고요? 이곳 타이완에는 타이완의 역사를 탐구하는 ‘타이완사(台灣史)’라는 학문이 생긴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국민정부 시기에 역사는 모두 ‘중국사(中國史)’였죠. 타이완 섬을 중심으로 이곳의 토양, 지리, 사람, 일상을 탐색하는 ‘타이완사’는 중국 대륙의 역사와는 엄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타이완 섬은 중국과 달리 네덜란드, 포르투갈, 일본, 명/청조 등 각 시대별로 이민자들이 왔다갔다 한 역사가 있으며, 이곳에는 중국에는 없는 원주민들이 애초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타이완’ 만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에 관한 글을 써내려 가는 작업은 80년대 말 계엄이 해제되면서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죠. 그렇기에 기모치 서점의 주제가 ‘타이완’이라는 점은 중국과는 구별된 타이완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타이완사에서 중시하는 일본 식민 통치 시기에 관한 역사책들도 다양합니다. 심지어 서점의 한 쪽 벽면에는 일제시기 일본 총독부에서 발행한 타이베이 지도를 붙여놓았죠. 타이베이의 각종 골목길의 이름과 주요 시설의 이름이 아주 상세하고 빽빽하게 써있는 1930년대 타이베이 지도는 사실 2024년 지금의 타이베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타이완사에서는 일본의 식민 통치 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시기 타이완 사람들이 경험했던 각종 근대 문물이나 도시 계획 등을 역사를 통해 진솔하게 풀어내죠. 

서점의 한 켠에는 현대의 타이베이를 묘사한 책들도 모여있습니다. 최근 10년 간 도시 연구 및 문화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역사와 같은 인문학적 사고를 국가 단위가 아닌 도시 단위로 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곳 기모치 서점에도 ‘타이베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도시인들의 경험을 축약해 놓은 책들이 모여있습니다. 그 중 2014년에 출판된 작가 우이핑(吳毅平)씨의 ‘타이베이사람(臺北人)’이란 책에 소개된 문구를 인용해 보면:  

“맥도날드는 타이베이 사람들에게 화장실을 잠시 빌려주는 곳이고, 85도라는 음료점은 택시기사 아저씨의 흡연장소이다. 스타벅스는 자신의 비싼 노트북을 전시하는 곳이고, 단테는 스타벅스를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찾는 카페이다. (...) 2~3층의 한 건물에 사는 남부 사람들과 달리 타이베이 사람들은 몇 층에 사는지가 중요하다.”

타이베이 티엔무 지역 출신인 작가 우 씨는 타이베이 사람 중에는 조상 8대가 이곳에서 이어져온 타이베이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며, 타이베이 사람은 남쪽에서, 동쪽 산에서, 혹은 해외 등 사방팔방에서 건너 온 사람들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러면서 타이베이사람이란 정체성은 타이베이라는 지역에 살면서 생긴 생활 습관과 경험에 의해 생긴다고 소개하죠. 

이렇게 타이완, 타이베이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만나볼 수 있는 기모치 서점, 타이완의 산맥을 형상화해놓은 작은 바에서 따뜻한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를 시켜놓고, 타이완을 여러 각도로 묘사하는 다양한 인문학 서적을 살펴보시는 건 어떨까요?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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