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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챙겨 먹어요 우리' 감 미식당 (泔 米食堂)

  • 2023.01.25
어반 스케쳐스 타이베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일하고, 잘 생활하기.' 감 미식당(泔 米食堂)에 붙어있는 이 문구가 사소한 것 같지만 큰 울림을 준다. - 사진: Rti 한국어방송 서승임

프랑스어로 ‘장터, 시장’을 뜻하는 마르쉐가 서울 대학로 한복판에 열렸을 때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젊은 농부들이 손수 기른 채소와 과일들을 판다는 것이 꽤 솔깃하게 들렸기 때문이죠. 내가 사는 지역의 흙에서 직접 재배한 제철 채소들을 시장에서 사 천천히 요리를 해먹는 일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에 시달려 시간을 쪼개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 사람들에게는 비현실적 생활이라고 한 동안 생각했습니다. 마늘 까는 시간이 아까워 미리 다듬어 놓은 깐마늘을 대형마트에서 사는 삶이 오히려 익숙하죠. 마트에 가서 마늘이라도 사면 다행이게요. 편의점에서 한 끼를 뚝딱 떼우는 일도 적지 않죠. 그래서인지 흙이 묻어 있는 채소를 사러 간다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낭만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젊은 농부들의 장터인 마르쉐에서 제철 채소가 주는 건강함, 여유로운 시간에서 느끼는 행복함이 어우러져 평소 쉽사리 느끼지 못했던 풍성한 삶을 만끽할 수 있었죠. 재료가 좋으면 간을 세게 하지 않아도 음식이 맛있다고 하잖아요. 그 날 손수 사온 채소들의 흙을 털어내 깨끗한 물에 씻어 요리를 할 때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손수 사온 이 예쁜 채소들의 맛을 흐트러트리고 싶지 않아 다른 조미료 대신 자연스럽게 재료 각각의 고유한 맛을 살리는 데 치중할 수 있었습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 사람들에게 '잘 먹는 일'(好好吃飯)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신경쓰지 않으면 놓치기 쉽상이죠. 이 때 잘 먹는다는 건 결코 '많이' 먹는다는 게 아닙니다. '좋은' 식재료로 '건강'하게 조리한 음식을 '즐겁게' 먹는 것을 의미하죠. 

미식의 도시 타이베이에 오면 셀 수 없이 많은 식당과 레스토랑이 우리를 반깁니다. 외식으로 삼시세끼를 먹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아침, 점심, 저녁, 각 식사에 적합한 식당들이 곳곳에 즐비합니다. 한국에는 없는 아침을 파는 자오찬디엔(早餐店)에 밤 늦게까지 야외에서 열리는 야시장까지요. 그 와중에 제 눈길을 끄는 식당이 한 곳 있었습니다. 바로 감 미식당(泔 米食堂)입니다.  

허핑동루 2단(和平東路二段)의 작은 골목에 자리하고 있는 감 미식당은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에 가게를 찾기 어려울 만큼 굉장히 비좁은 골목 틈새에 있습니다. 겨우 가게를 찾아 미닫이문을 스르륵 열면 새롭지만 정겨운 느낌의 가게가 우리를 맞이합니다. 아이보리 색의 벽돌과 옅은 회색빛의 벽면이 공간을 차분하게 만들어주고요. 식당 한 가운데에는 여덟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큰 원목 테이블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벽쪽에는 벽을 바라보고 먹을 수 있는 작은 바 테이블이 하나 있죠. 최대 총 10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제법 작은 공간입니다. 그래서 이 식당은 미리 예약하지 않고 현장 방문하면 식사를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감 미식당의 '감'(泔)은 '뜨물 감' 자로 쌀뜨물이나 쌀뜨물에 무언가를 담근다는 뜻을 가진 한자입니다. 타이완에서는 한국의 미음처럼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쌀을 푹 끓인 것을 의미한다고 해요. 민남어로 '암'(ám)이라고 발음한다고 사장님께서 특별히 강조하시더라고요. 미식당의 '미' 는 쌀 미(米) 자이고요. 좋은 쌀을 이용해 어린 아이에게 미음을 끓여주는 것 같은 정성된 마음으로 음식을 만든다는 감 미식당의 철학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가게 안 벽면 한 켠에도 '타이완 흙에서 난 선물'(來自台灣土地的一份禮物)이라고 적힌 문장 아래로 다양한 색깔의 쌀밥이 수북히 담긴 그릇을 그린 그림이 걸려있습니다. 식전 음료로 알코올이 들어있지 않은 쌀 발효물을 주었는데요. 그 식감과 맛이 마치 한국의 막걸리를 먹는 듯했습니다. 비교적 점성이 있는 액체안에 있는 푹 퍼진 쌀 알갱이가 씹히면서 단맛이 가득 전해졌습니다. 한 잔 더 마시고 싶었지만, 한 잔 밖에 제공이 안된다더라고요.    

이곳 감 미식당의 재미있는 점은 바로 매일매일 메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에는 한 메뉴만 취급하죠. 매 주 일요일 페이스북에 한 주의 메뉴를 미리 공지하는데요. 메뉴를 손수 노트에 적어 나뭇잎이나 꽃과 같은 식물과 함께 찍어 올려주는 사장님의 센스가 돋보입니다. 메뉴 사진만 봐도 음식에 자연미와 정성이 가득 녹아 있는 것 같죠. 제가 식당을 방문한 날 오늘의 메인 메뉴는 말린 조개로 맛을 낸 소스와 함께 푹 익힌 수세미오이(佐絲瓜乾貝醬汁)와 흰살 생선인 숭어구이(香煎烏魚排)였습니다. 목판으로 된 쟁반 위에는 윤기나는 흰쌀 밥과 메인 메뉴인 숭어구이를 포함한 3찬, 그리고 국 한 그릇이 놓여있습니다. 흔히 집에서 차려먹을 수 있는 가정식이라지만, 그 흔한 가정식이 이제는 도시인 가정의 식탁에 놓여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인지, 감 미식당에 가지런히 놓여진 3찬 1탕의 차림을 만나니 그리우면서도 얼마나 반갑던지요. 함께 반찬으로 나온 청경채(青江菜)와 통후추로 간을 한 두부 조림도 입맛에 딱 맞았습니다. 음식의 간이 조금 심심하다 싶을 땐 작은 종지에 담긴 오이지를 한 입 베어 물면 참 맛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타이완의 대표 디저트 도우화(豆花)까지 먹고나니 그제서야 가게를 천천히 둘러 볼 여유가 생기더군요. 

가게의 한 쪽 벽면에는 24절기가 적힌 달력이 걸려있습니다. 입춘을 시작으로 소서, 대서인 여름을 지나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는 처서, 그리고 1년 중 가장 눈이 많이 내린다는 대설까지, 도시에 사는 일상에서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4계절의 변화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른 쪽 벽면에는 매 절기를 테마로 한 타이완 제조 수제 맥주 24병이 놓여있고, 한 켠에는 타이완 토양에서 자란 쌀과 각종 식재료 및 장이 놓여있습니다. 타이동현(臺東縣) 지역 쌀 그리고 이란의 쉬에푸미(宜蘭 雪福米) 를 소개합니다. 타이동의 쌀이 워낙 맛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란의 쌀도 꽤 맛있다고 사장님께서 소개해주시더라고요. 

24절기 달력 아래에는 다음의 문장이 적힌 종이가 붙어있습니다. 거기엔 '잘 먹고, 잘 자고, 잘 일하고, 잘 지내기'(好好吃飯 好好睡覺 好好工作 好好生活)라고 써있는데요. 제가 서울에서 집에서는 거리가 대학로까지 찾아가 마르쉐라는 농부시장에 간 것, 그리고 타이완의 제철 재료를 갖고 따뜻한 밥 한 끼를 지어준 타이베이의 감 미식당을 제 발로 찾아간 데에는 분명 공통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어느 나라의 음식인지 보다는 제가 현재 머물고 있는 이 곳의 토양에서 자란 농작물들을 건강하게 음식해 먹을 수 있는 것, 시간을 내어 '잘 먹는' 일이 점점 중요하다는 걸 제 몸이 먼저 알고 있는 것이겠죠. 청취자분들께서도 현재 계신 지역의 흙과 바람 비를 맞고 자란 농작물을 찾아 자극적인 조미료 대신 심심한 간으로 제철 채소의 맛 자체를 음미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하루에 적어도 한 끼는 집에서 직접 해먹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갖길 바라면서, 엔딩곡으로는 레오왕(LEO王)의 '밥'(白飯)을 들려드립니다. "타이완인으로 태어난 우린 매일 밥을 먹지"(身為一個台灣人 我每天都要吃白飯) 라고 시작하는 가사의 이 노래는 펑키한 리듬에 중국어와 민남어, 영어 가사가 섞인 매력적인 노래입니다. 바쁜 와중에도 윤기나는 쌀밥과 맛난 제철 채소와 함께 맛있는 한 끼 든든하게 챙겨드시길 바랍니다.

-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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