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타이완의 소리 RTI공식 앱 내려받기
열기
:::

공원, 타이완 근대 도시 풍경의 일부로 들어오다.

  • 2025.02.18
대만주간신보
일제시기 타이완 최초의 서양식 공원인 신공원(新公園, 현 228평화공원) 안에 있는 야외 공연장, 음악당(音樂堂)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있다. - 사진: Michael Lewis Postcards Collection

2월 중순, 한국은 아직 추위로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 있는 요즘, 타이완은 겨울동안 숨어있던 태양이 환하게 얼굴을 밝히며, 낮기온이 20도 이상까지 올라갈 정도로 따뜻한 봄 날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주 토요일(16일)에는 낮기온이 26도까지 올라 많은 타이베이 시민들이 도심 속 공원으로 나와 따뜻한 날씨를 만끽했습니다. 타이베이에는 건물로 빽빽한 도심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원이나 광장이 곳곳에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중정기념당과 국부기념관, 그리고 다안삼림공원과 228 공원 등이 있죠. 적지 않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공원은 현대 사회의 시민들에게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재충전하게 하거나 친구, 가족들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추억의 장소로 큰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타이완 도심 속 공원은 어떻게 조성되기 시작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을까요? 오늘 <대만주간신보> 시간에서는 타이완 공원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

타이완은 정성공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중국에서 타이완 섬으로 넘어 오는 이민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 중국이란 넓은 땅에서 서로 다른 고향 출신의 이민자들이 타이완으로 건너 와 마을을 이루며 살기 시작하자, 마을 단위로 각기 다른 신을 모셨고, 사원(廟)은 한족 이민자들의 공동 생활의 중심이자 정신적 결속의 상징이 되었다. 청나라 시기, 사원을 중심으로 점차 도시가 발전하고 확장되었고, 사원 앞마당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대표적인 공공의 장소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공원(公園)’이란 개념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원(庭園)’은 있었다.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의 집 안에 만들어 놓은 휴식 공간으로, 정원 주변에는 높은 벽을 세워 평민들과는 분리시켜놓았다. 그래서 정원은 대중들이 모이는 공공의 공간이 아닌 지극히 사적으로 격리된 공간이었다. 

서구에서도 ‘공원’의 시작은 현재와 달리 왕족이나 귀족, 돈 많은 상인들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사냥터나 규모가 큰 정원을 의미했다고 한다. 즉, 소유지의 주인이 초대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었고, 무단으로 침입한다면 처벌을 받아야했다. 19세기 중반, 봉건 제도가 서서히 붕괴되면서 다수의 시민들은 과거 소수의 소유지였던 공원의 개방을 요구했고, 이렇게 공원은 공공의 개념이 포함되면서 근대 도시 구성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 런던 중심부에 있는 가장 큰 공원인 하이드 파크( Hyde Park)이다.    

타이완의 최초 공원은 일본 식민 통치 초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출발은 단연 일본의 서구화와 관련이 있다. 메이지 천황이 즉위한 직후, 일본인들은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서양식 의복을 입고, 서양인처럼 머리를 자르고, 소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1873년, 일본의 태정관(太政官, 오늘날 타이완의 행정원과 유사한 중앙정치기구)은 서양의 방식을 채택하여 “민중이 좋아하는 사원, 명승지 등 우수한 토지를 공원으로 지정하고, 이를 국가 소유로 하여 임대료를 면제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은 최초의 공원을 도쿄에 만들었다. 1873년 개방된 일본 최초의 공원, 우에노 공원은 과거 간에이지 사원에서 개량했으며, 도쿄의 아사쿠사 사원은 아사쿠사 공원으로, 조조 사원은 지바 공원으로 변형되어 도쿄에 서구식 공원 문화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러했던 일본이 1895년 6월 타이완을 통치하기 시작하자, 3년 후인 1898년에 타이베이의 위엔산(圓山)에 타이완 최초의 공원인 ‘엔잔코엔(圓山公園, 위엔산 공원)’을 세웠다. 이 공원은 타이베이 도시에 근대적인 색깔을 추가한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 엔잔코엔에는 전쟁이나 군사 활동 중 사망한 군인들을 위한 묘지인 군묘지와 함께, 일본 선종의 한 종파인 임제종의 진남산 호국선사와 일본군의 전사자들을 기리는 충혼당 등,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건물도 설치되었고, 후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와 동물원도 추가되었다.

앞서 소개한 일본의 아사쿠사, 우에노 공원 등이 가장 초기에 만들어진 일본의 공원이라면, 1903년에 개장한 도쿄의 히비야 공원은 서양식으로 설계된 첫 번째 공원이다. 마찬가지로 타이완에서  가장 최초로 개장한 공원은 위엔산 공원이지만, 유럽 스타일의 도시 공원을 처음으로 모방해 만든 공원은 타이베이의 ‘신코엔(新公園, 신공원)’이다. 1899년에 개장한 타이베이 신공원은 2만 평의 녹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위엔산공원보다 2년 뒤에 개장하였기에 ‘새로운’ 공원이라 불렸다. 그렇게 신공원으로 100여 년 간 불리다 1996년에 이르러서야 현재와 같이 ‘2.28 평화기념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일본 식민 시기의 신공원에는 각종 열대식물과 꽃들이 심어져 있었고, 녹음 속에 공원 벤치를 배치하여 타이완 사람들에게 새로운 공원 경험을 선사했다. 현재 공원 안에 있는 국립타이완박물관(國立臺灣博物館) 뒤편의 작은 호수에는 원래 물고기 분수대가 있었고, 이는 타이완 최초의 서양식 분수대라고 전해진다. 이 분수대는 신공원 내부의 서양식 정원의 일부로, 서양식 정원 옆에는 일본식 정원이 배치되었다. 신공원에는 또 하나의 서양식 도시 공원의 특징인 ‘야외 공연장’이 있었다. 현재 2.28 공원에도 남아있는  타원형 모양의 음악무대(音樂台)는 바로 일본 식민 시기 때부터 이미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원형의 야외 공연 구역이었고, 좌석은 원형으로 배치되어 가운데에 있는 무대를 둘러싼 형태를 띄고 있었다. 무대의 지붕은 팔각형으로, 당시 상당히 상징적인 구조물이었다. 마지막으로 현재 2.28 공원에 5개의 중국식 정자가 모여 있는 구역은 원래 운동장이었다고 한다. 

공원에는 도심 속 공원 외에도 자연 보호와 여가 기능을 동시에 가진 ‘국립 공원’도 있다. 국립 공원의 개념은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1872년 3월 1일, 미국 대통령은 ‘옐로우스톤 국립 공원’을 설립하여 수력 발전, 산림 개발, 방목, 동물 사냥, 지질 파괴 등을 금지했다. 이로써 ‘공원’은 전통적인 여가 및 휴식의 의미 외에도 보존의 개념을 포함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전쟁 전 서양 문화를 배우고 모방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기에 1931년 미국의 국립 공원을 모델로 한 ‘국립공원법’을 제정하였다. 법 제정 후 3년 뒤에 일본 첫 번째 국립 공원을 지정했다.

일본에서 1931년 국립공원법이 제정되자, 같은 해 타이완 총독부도 타이완 각지에 국립 공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1936년 2월에 열린 ‘제1회 국립 공원 위원회 회의’에서는 여러 일본 관료들이 참석했고, 결국 총독부는 1937년에 타이완의 첫 국립 공원을 지정했다.  

현재 많은 타이완 사람들은 국립 공원이 타이완에서 상대적으로 최근에 시작된 공공 시설이라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타이완의 첫 번째 국립 공원은 1980년대 초에 시작된 컨팅 국립 공원(墾丁國家公園)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90년 전, 일본 총독부가 국립 공원의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1937년 12월에 다툰산(大屯山), 태로각(현재의 설산(雪山), 태로각(太魯閣)과 신고아리산(新高阿里山)(현재의 위산(玉山)과 아리산(阿里山)이 ‘국립 공원(國立公園)’으로 지정되었다. 이렇게 3개의 국립 공원은 타이완 면적의 무려 13%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이후 국민 정부 역시 이 세 곳을 중심으로 국립 공원 개발을 진행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관련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