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전교생이 학교 운동장에 집합해 일렬로 서서는 ‘애국가(愛國歌)’를 부르며 아침 조회를 시작했던 기억 다들 있으실 겁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전교생들이 입을 맞춰 한 목소리로 애국가 1절을 부르고 나면 조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죠. 언제즘 짧아지나, 언젠가는 짧아지겠지 하고 기대만 하게 만드는 교장 선생님의 길고 긴 훈화 말씀이 드디어 끝나면 조회를 마무리하며 다함께 ‘교가(校歌)’를 불렀습니다. 제가 다녔던 학교만 그랬는지 모르겠는데요. 교가에는 늘 학교가 소재하는 근처 산 이름이 들어갔습니다. 그 산의 정기를 받은 이 학교에서 우리는 꿈을 키우고 바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다짐하죠. 그렇게 애국가로 시작해 교가로 마무리되는 월요일 아침 조회로 한 주를 시작했습니다.
학교 시절 전교생들이 목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르는 이 문화. 개인적인 추억 정도로 넘길 수 있는 학창 시절의 노래 문화가 사실은 역사적으로 되짚어 볼 만한 중요한 사건이라면,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추억이 우리 동네의 학교를 넘어 한국 전국의 학교에서, 심지어 한국을 넘어 타이완과 일본의 학교에서도 유사하게 행해지고 있는 문화라면 역사적으로 한 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대만주간신보> 23번째 시간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창가’(唱歌) 문화의 타이완 사례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학교 아침 조회 시간에 애국가와 교가 등 학생들이 집합해 노래를 제창하는 광경은 사실 일제시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식 근대학교가 식민지 대만과 조선에 유입되고 일본식 근대학교에서 시행하는 여러가지 제도와 문화들도 함께 따라와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문화 중 하나가 바로 간단한 멜로디의 서양식 노래를 학생들로 하여금 함께 노래하게 하는 ‘창가’(쇼카, 唱歌)입니다.
‘식민지 타이완의 창가 교육’을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 류린위(劉麟玉) 교수는 ‘창가’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고 정의합니다. 하나는 메이지 시기 일본의 첫 근대 교육 제도인 ‘학제’를 반포 했을 때 정해진 소학교(초등학교) 교과목 중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음악취조괘(音樂取調掛)라는 단체에서 화양절충을 기본으로 만든 노래입니다. 여기서 음악취조괘란 메이지 시기였던 1879년 서양음악 도입과 정착을 목표로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설립한 연구기관을 말합니다. 현재 도쿄 우에노 공원 근처에 있는 도쿄예술학교의 전신입니다. 즉, 창가는 일본 정부가 설립한 근대식 초등학교에서 가르쳤던 교과목이자, 일본인이 재창조한 서양음악을 의미합니다.
1895년부터 일본의 식민지가 된 타이완에도 학교라는 근대식 기관을 통해 이 ‘창가’가 서서히 유입되기 시작합니다. ‘창가’는 1896년부터 타이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하나의 교과목이 되었습니다. 이 때 식민지 타이완의 초대 학무부장이었던 이사와 슈지(대만주간신보 21회 참조)는 자신이 일본에서 편찬한 창가집에서 노래 몇 곡을 차용해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타이완 학생들에게 일본에서 만든 서양식 노래를 가르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타이완에서 소위 음악을 전공한 음악학교 출신 일본인 선생은 한 명밖에 없었고 대부분은 비전문가 출신이었기에 음악을 실제로 가르치는 데 한계가 있었을뿐만 아니라 타이완과는 전혀 관련없는 가사의 노래를 타이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일도 일본인 선생들 사이에서는 문제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1900년대 초에는 타이완 전통 음악에 주목해 그 음악적 소재를 가져와 새롭게 창가를 창작해야겠다는 의견도 있었고, 그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가사에는 타이완의 자연과 풍물을 반영한 타이완식 창가를 제작하거나 ‘논어’, ‘춘추’, ‘경서’ 등 고대 중국 문장을 가사에 반영하자는 주장도 있었죠.
그렇게 1915년, 식민지 타이완에는 첫 음악 교과서인 ‘공학교 창가집’(公學校唱歌集)이 출판되었습니다. 공학교의 창가교재로 사용할 목적으로 편집된 이 책에는 총 46곡의 노래가 들어있습니다. 모든 노래의 한 페이지에는 노래 제목과 오선보 악보가 적혀있고, 그 옆 페이지에는 일본어 가사가 적혀있는 형식으로 구성된 창가집에 수록된 노래는 대부분 어린아이들이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쉽고 간결한 선율로 구성되어 있죠. 일제시기 교과서인 만큼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君が代)를 비롯해 천황을 기념하는 ‘천장절’(天長節) 등이 삽입되어 있으며, 가사도 전부 일본어입니다. 이 책 한권으로 당시 식민지를 살았던 타이완 사람들이 배워야만 했던, 또 불러야만 했던 노래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죠.

공학교창가집(1915)의 목차.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가 1학년 대상 첫 번째 노래로 실려있다.

공학교 창가집(1915)에 수록된 소수의 타이완 관련 가사 노래 중 '타이완의 풍경'(臺灣の風景)
일본의 제도와 언어, 문화가 절대적이었던 근대식 학교라는 공간에서 타이완 초등학생들은 ‘창가’라는 과목을 통해 오선보를 읽고 서양식으로 노래하는 방법을 터득해 갔습니다. 가정에서는 타이완어를 구사하며 기존에 마을 단위로 혹은 가정 단위로 구전되어 온 노래를 흥얼거렸다면, 학교에서 만큼은 일본어를 구사하고, 일본어로 된 가사의 서양식 노래를 불러야했죠. 이렇게 공학교, 즉 초등학교에서 창가를 연마한 학생들 중 음악에 보다 흥미나 있어 노래 외에 악기를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들은 ‘내지’, 즉 일본 유학의 길을 택해 도쿄에 소재하는 음악 전문학교에서 공부한 후 타이완으로 와 서양음악을 가르치는 첫 세대가 됩니다. 이렇게 당시 식민지 타이완의 초등학교에서 가르치고 함께 부른 ‘창가’ 교육은 한편으로는 일본 식민 교육의 동화 정책의 일부로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타이완 사람들이 서양음악과 접촉하는 계기가 되어 근대화의 길로 속도를 낼 수 있는 일종의 엔진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류 교수는 식민지 타이완의 창가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만약 서양 문명과의 접촉을 ‘근대화’라고 부른다면, 일본의 창가 교육을 통해 서양 문명의 하나인 서양 음악에 접촉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타이완 사람들은 음악 문화의 면에서 근대화에 다가갔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대화에 의한 전통문화의 파괴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족과 원주민의 음악은 각각의 생활 속에 존재하고 있지만, 식민지 시대의 음악교육이라는 전당에 들어간 적은 결코 없었다.” (劉, 2005: 196)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 교수는 일본 정부가 주도한 타이완의 창가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국민당 정부에 의한 학교 교육이 정착하기 직전까지 타이완의 음악 교육을 주도한 사람들은 일제시기의 노래 뿐만 아니라 당시 교수법, 반주 등도 일본으로부터 배워와 사용했으며 이 과정에서 전통음악 보다는 서양음악이 보다 품격있는 문화로 자리해 현재에도 서양음악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타이완의 현황이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타이완 학생들은 학교의 규율에 맞게 아침 조회를 하고 전교생이 다같이 중화민국 국가와 교가를 제창합니다.
참고문헌
劉麟玉, 植民地下の台湾における学校唱歌教育の成立と展開, 東京:雄山閣, 2005.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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