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의 식민지라는 같은 역사 과정을 거쳤음에도 일제시기를 바라보는 타이완인과 한국인의 관점은 사뭇 다릅니다. 이 시기를 표현하는 용어만해도 한국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일본제국이 강제로 점령한 시기)'라고 하는 반면, 타이완은 ‘일치시기(日治時期, 일본제국이 통치한 시기)’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죠. 지금까지 <대만주간신보>에서 소개해드린 일제시기 타이완 역사 내용 관련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이 반드시 타이완인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적’이나 ‘외부자’로 묘사되기 보다는 타이완의 사회경제적 발전에서의 공은 공대로 인정하고, 차별이나 폭력, 약탈과 같은 과오는 비판합니다.
한국에서 주로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독립운동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를 배우고 알아왔던 제게 타이완의 관점은 무척 신기하고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타이완인은 왜 한국인과 과거 일본의 침략 역사를 다르게 보는지 궁금했습니다. 일본을 두고 과거 두 식민지가 내놓는 상이한 관점과 해석. 간단하지만 결코 간단치만은 많은 이 질문이 오늘날 저를 타이완에 계속 머무르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역사도 학문의 일부입니다. 동일한 사안을 바라보더라도 누가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서술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제시기 역사 서술은 일본 정부가 식민지에서 벌인 행위 그 자체뿐만 아니라 일제시기 전후의 타이완, 한국의 역사적 맥락과 반드시 관계합니다. 이를 테면 한국의 경우, 조선말기에서 대한제국 시기 그리고 광복 후 해방기와 한국전쟁 전후겠지요. 일제시기를 바라보는 타이완인의 관점이 여전히 과거사 문제로 첨예한 갈등을 빚는 한국과 일본 관계에 제3의 경로를 모색할 수 있는 작은 불씨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 <대만주간신보>에서는 식민지 타이완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역사학자들의 일제시기를 바라보는 관점과 그 이유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최대 규모의 글로벌 학술 출판사로 꼽히는 영국의 라우틀리지(Routledge, 1836~)는 2016년 라우틀리지 핸드북 시리즈 중 하나로 ‘컨템포러리 타이완(Contemporary Taiwan)’을 출판한 바 있습니다. 타이완의 역사와 정치, 경제, 국가정체성, 양안관계 및 글로벌 사회에서의 위치 등 과거부터 현재까지 타이완을 둘러싼 이슈들을 총 집대성한 책입니다. 무려 35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세 번째 챕터는 일제시기 식민지 대만을 다루는데, 이 챕터를 쓴 학자는 국립대만대학 역사학과 교수인 저우완요(周婉窈, 1956- )로, 일제시기 대만사 연구로 저명한 사학자입니다.
1945년 8월 일본이 타이완에서 물러나고 같은 해 10월 타이완 섬이 중화민국에 공식적으로 인수되었으나, 1947년 2.28사건을 계기로 국민당 정부는 그해 5월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일본 통치 시기의 역사는 거의 금기화되었습니다. ‘백색공포', ‘백색테러'라고도 불리는 계엄시기(1949-1987) 동안 국민당 정부는 ‘탈일본화'와 ‘재중국화'라는 투 트랙 노선으로 대만 섬은 점차 50년간 일상에서 함께 해오던 일본 문화들을 강제로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어는 물론 책이나 영화 등도 금지되거나 제한되었고, 관련 역사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명청나라 시대를 연구하는 것은 허용되었지만, 일제시기는 무장 반일투쟁이나 비폭력 반식민 운동과 같은 내용을 제외하면 피해야 했던 것이죠. 그러다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되자 1990년대 전후로 ‘대만사' 연구 붐이 일면서 일제시기 대만 연구도 활기를 띄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타이완의 후식민 시기 맥락을 고려해 저우 교수가 내세우는 일제시기 타이완 역사의 기본 골조는 ‘잃어버린’, 혹은 ‘가리워진’ 대만 역사의 일부를 발굴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한국은 과거 타이완 국민당 정부의 역사적 기조와 유사하게 여전히 일본의 침략과 한국인의 저항의 각도에서 일제 강점기를 바라봅니다만, 계엄 이후 ‘대만사'를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일제시기는 통치자가 일본이었을 뿐 여전히 대만 섬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데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게다가 식민주의과 별개로 일본이 대만 섬에 넘어와 세운 각종 기초 인프라 시설들은 대만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고 인정합니다. ( the dual of colonization and modernization) 특히 교육과 예술 방면에서의 영향은 현재까지도 타이완 문화에 지대하게 남아있다고 소개합니다. (Colonial education, arts, and art history) 예를 들어, 일제시기에 설립된 각종 소학교, 중학교, 고등여학교 건물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서 학교 역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서양)미술이나 음악 방면에서도 일제시기에 1세대 타이완 예술가들이 탄생하기 시작하면서 현재에도 서양예술 언어를 습득해 활동하는 작가와 음악가들이 넘쳐나죠. 지난 <대만주간신보>에서 소개해드린 타이베이제3고등여학교나 최승희 편에서 소개해드린 타이완 문인들의 사례를 들어 보시면 보다 이해가 되실 겁니다. 저우 교수는 일제시기 활동했던 각종 예술 분야의 타이완 예술가들을 “잠자는 숲속의 공주(the Sleeping Beauty)”에 비유합니다.(Chou, 2016:31) 국민당 계엄령 시기에는 알려질 수 없었다가 계엄 해제 이후에야 그 분들의 손자뻘 되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기 때문이죠.
저우 교수는 타이완이 일본제국의 일부분이었고, 타이완의 식민 역사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역사였음을 강조합니다. 이 시기를 겪은 타이완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외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일본어를 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타이완 사람들의 역사도 타이완 역사의 일부임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영화 <비정성시>에서 잘 묘사되듯, 작은 타이완 섬에서 일제시기와 국민당 계엄령 시기를 동시대에 겪은 타이완인들의 정체성은 불안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도 빠른 시간 내에 할 줄 아는 일본어는 소용 없어지고 배운 적 없는 중국어를 강제로 다시 배워야했으니까요. 저우 교수를 비롯한 일제시기 타이완 역사 연구를 감행하는 학자들의 저변에 일제시기는 단순히 일본의 폭정과 탄압 그리고 그에 대한 반항으로 귀결되는 역사가 아닌, 협상, 동화, 동요, 저항 등 식민자와 피식민 사이에 벌어지는 다양한 관계 안에서 그 시기를 어떻게든 살아낸 타이완인들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1987년 계엄 해제 이후 ‘대만총독부아카이브(臺灣總督府檔案)’가 주요 사료로 개방되면서 1990년대부터 일제시기 대만사 연구가 활기를 띄기 시작했습니다. 중앙연구원 대만사연구소(中央研究院 臺灣史研究所)의 장롱즈(張隆志) 교수는 이 시기 과거 정치/경제사, 관료/지식인 중심의 연구에서 새로운 분야 연구 및 식민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 예컨대 여성, 원주민 등 대한 연구로 확대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주제 역시 국가나 정부 중심의 정치, 경제, 외교사에서 문화 정체성 정치, 타이완 민족주의 등으로 확대되면서, 식민지에 대한 개념이 점차 달라지기 시작하죠. 식민지란 단순히 지배자의 일방적인 근대화 과정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곳이 아닌 복잡하고 다원적인 지식과 정치 영역들이 존재하며, 각 영역 별로 식민통치와 그에 따른 근대성에 대한 상상과 실천 역시 달라지는 것이죠.
당시 타이완 섬에 살고 있던 서로 다른 주체들은 분명 서로 다른 ‘근대’를 경험했습니다. 이들을 하나의 ‘타이완인'으로 묶어 하나의 역사로 만드는 일이야말로 오히려 사실과 크게 엇갈릴 수 있는 우려가 있습니다. 일제시기 타이완인들의 다양한 경험들을 ‘편견없이' 들여다보는 작업, 그리고 식민자와 피식민자 간의 복잡한 관계와 타이완 각 지역 사회에서의 서로 다른 반응을 연구하는 작업이 더욱 요구되는 이유입니다. 장 교수 역시 이러한 관점을 기초로 대만총독부와 같은 일본 정부나 고위 관리층이 남긴 사료 외에 지역 사회 타이완인들이 남긴 개인 일기나 에세이 등을 주요 사료로 여기면서 일제시기 타이완의 다양한 색깔들을 다채롭게 펼쳐놓는 작업을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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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1925년생인 외할머니가 그녀의 어린 시절 오사카에서 보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고는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외할머니가 기억하는 일제시기의 모습은 제가 학교에서 배웠던 일제시기와 전혀 맞아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배운 일제강점기는 일본의 침략과 무자비한 탄압, 그리고 그에 저항하는 조선인의 모습만이 전부였었는데, 외할머니가 묘사하는 자신의 어린 시절은 독립운동은 커녕 오히려 같은 학교 일본인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고 당시 그녀가 학교에서 구사해야만 했던 일본어가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도 아니었던 것이죠. 친일과 반일 외에는 떠올릴 수 있는 역사적 상상력이 부족했던 제게 외할머니의 개인 경험을 이해하는 일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관건은 친일이냐 혹은 반일이냐가 아니었던 데 있었습니다.
현재 타이베이의 총통부는 과거 일제시기 총독부 건물입니다. 타이베이 시먼(西門) 주변 2.28공원은 과거 일제시기 타이완의 첫 근대식 신공원이었고, 소남문(小南門) 주변 타이베이 식물원도 과거 총독부가 개장했습니다. 그렇게 여전히 타이완 곳곳에는 일제시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한국인에게는 낯설 수 밖에 없는 과거 식민 역사의 흔적들이 오늘 방송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대만주간신보>의 진행자 서승임이었습니다.
-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참고문헌
Wan-Yao Chou, "Taiwan Under Japanese Rule (1895–1945)", Routledge Handbook of Contemporary Taiwan, 2016, 22-35.
張隆志, <殖民現代聽分析與臺灣近代史研究:本土史學史與方法論芻議>, 若林正丈, 吳密察編輯 《跨界的臺灣史研究:與東亞史的交錯》 臺北市 : 播種者文化, 2004, 133-160.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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