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당신은 이성적인 좌뇌형 인간, 아니면 창의적인 우뇌형 인간인가요?” 이처럼 대뇌로 사람의 유형을 파악하는 이야기를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주장은 과학적인 근거가 매우 미약합니다. 문학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데요. 문학하면 보통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거죠. 그러면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력이 요구되는 엔지니어가 쓰는 문학작품은 어떤 모습일까요? 오늘은 전 미국 구글 엔지니어, 현 타이완 작가 테라오 테츠야(寺尾哲也)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본명 차오성하오(曹盛濠)인 테라오 테츠야는 일본 사람이 아닌 타이완 사람입니다. 일본식 이름으로 등단한 이유는 일본 만화의 캐릭터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자전거 만화《오버 드라이브(Over Drive)》의 테라오 코이치(寺尾晃一) 와 농구 만화 《쿠로코의 농구(黒子のバスケ)》의 쿠로코 테츠야(黒子 テツヤ)에게 이름을 빌려썼습니다. 약육강식의 스포츠 세계에서 두 캐릭터는 타고난 재능을 갖춘 천재가 아니고 태양 뒤에 숨어 있는 그림자입니다.
타이완 최고 명문대 공대 졸업, 글로벌 빅테크(Big Tech) 기업에서 10년 동안 근무. 테라오 테츠야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실은 매일매일 고통스러웠습니다. 천재로 가득찬 세상에서 평범한 사람은 설 자리가 없으니까요. 그는 시험을 예로 천재와 일반인의 차이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당신은 99점, 그는 100점을 받았는데 1점 차이밖에 안 나는 것 같지만 당신이 99점을 받은 것은 실력이 99점이기 때문이고, 그가 100점을 받은 것은 시험이 100점밖에 없기 때문”
2019년 테라오 테츠야는 <주간고속도로(州際公路)>라는 단편소설로 린룽싼(林榮三)문학상을 수상해 출판사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글쓰기와 일을 병행했던 과정에서 그는 갑자기 쓰러졌는데, 구급차에 실려 갔던 길에 “만약 지금 죽으면 미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한 것은 인생의 가장 큰 아쉬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갈망과 직업에 대한 싫증으로 결국 직장을 과감하게 관뒀습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확실히 사람을 피라미드의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해줄 수 있는 직업이지만 막상 올라가면 평생 마음의 큰 구멍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왕관을 쓰려는자, 그 무게를 견뎌라” 이는 몇 년 전 화제가 되었던 한국 드라마 <상속자들>의 슬로건이죠. 천재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할까요? 테라오 테츠야의 데뷔작 《총알은 여생이다(子彈是餘生)》가 바로 천재들의 이야기입니다. 냉정하고 날카로운 글 뒤에 사람을 간두지세로 몰고 가는 경쟁의식과 엇갈리는 애증이 가득찹니다. 소설의 배경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일치하는데요. 타이완 전 1% 엘리트들이 미국에서 부유한 생활을 누리고 있으나 버는 만큼 행복하지 못합니다. 천재라는 이미지가 오히려 저주처럼 그들을 지옥으로 내몰았습니다.
이야기는 주인공의 반친구 졔헝(介恆)의 자살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요. 졔헝은 모두의 인정을 받는 천재 중의 천재입니다. 저자는 “천부적인 재능을 믿고 어릴 때부터 애지중지 키워온 사람일수록 졔헝과의 차이를 깨닫는 순간에 절망에 푹 빠지고 그에게 미련을 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이는 상대의 지적 능력 때문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전형적인 사피오섹슈얼(sapiosexual)이죠. 보통 사람 눈엔 이미 최고의 위치에 서 있는 천재들 사이에 여전히 명확하게 구분된 계급이 존재합니다.
졔헝의 기일이 될 때마다 주인공과 친구는 졔헝이 자살을 저질렀던 라스베이거스 카지노호텔에 갑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에서 친구는 과거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공대에서 코딩경진대회가 매우 중요한 이벤트인데, 어느 해 교내 선발 시험 때 졔헝은 3시간 동안 늦었습니다. 시험 시간이 한 시간 반밖에 남지 않았어도 졔헝이 1등할 거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시험 결과 졔헝은 예상대로 1등을 차지했으나 친구는 석차 1등 차이로 탈락되었습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자 주인공은 “졔헝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쉽게 무의미하게 만드는 존재”라며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때 다 들 졔헝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라고 답했습니다.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계속 위로 올라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죠. 결국 천재는 총알이 되어 다른 천재를 괴롭히고 비뚤어진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또한 책에서 등장한 캐릭터들이 항상 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동기 중 누가 더 많이 버는지, 갑자기 죽으면 회사 보험이 얼마나 주는지, 차가 고장이 날 때 고장출동 서비스가 어느 회원등급에 속하는지…주인공은 “돈을 많이 벌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단지 복수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의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청춘을 희생하고 심신을 망가뜨리는 그들에게 돈이란 사회에 대한 보복 수단이자 보상심리를 만족시키는 도구입니다.
저자는 사건 발생 시간에 따라 소설을 구성하지 않았고 사건에 대해서도 큰 여백을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감정이 여전히 독자에게 잘 전달되고 있습니다. 비록 일반 사람과 다소 거리가 있는 천재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현대사회의 병폐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지난 방송에서 소개해 드렸던 생선 장수 출신인 타이완 작가 린카이룬(林楷倫)은 “현대사회에서 대중이 ‘좋은 삶’에 대한 상상이 지나치게 빈약한데, 이른바 좋은 삶은 멀리서 보면 반짝거리는 유리구슬 같지만 가까이 보면 온통 얼룩져 있다”며, “이러한 좋은 삶을 살려면 감정이 마비되어야 하고 멀쩡한 척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회 시스템에서 사람들은 행복한 척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타이완 3대 신문의 하나인 자유시보(自由時報)와의 인터뷰에서 저자는 “글쓰기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매우 비슷한데 독자를 컴퓨터로, 글을 코드로 여기고 어떤 것을 입력하면 어떤 감정을 생기는지를 생각하면서 소설을 구성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논리적인 방법으로 감성적인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매우 엔지니어다운 대답이죠. 따라서 문학은 이성과 감성의 이분법만으로 접근할 수 없고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주는 이어서 테라오 테츠야가 참여한 문학 프로젝트 ‘AI(인공지능)에게 쓰는 러브레터’를 소개할 예정인데요. 타이완 작가 4명이 각각 AI에게 러브레터를 쓰면 어떠한 답장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寺尾哲也,《子彈是餘生》。
2. 陳柏煜,〈(不)完全娛樂 - 寺尾哲也談《子彈是餘生》〉,自由時報。
3. 愛麗絲,〈「再選一次,我還是會讀資工系。」——專訪《子彈是餘生》作者寺尾哲也〉,Readmoo讀墨。
4. 林楷倫,〈美好人生,刮痕累累:讀寺尾哲也《子彈是餘生》〉,聯合文學unitas生活誌。
5. 〈恨是恆久忍耐又有恩慈,恨是不嫉妒──專訪小說家寺尾哲也《子彈是餘生》〉,Bios monthly。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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