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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쉬는 곳이 없으면 언제나 유랑하는 것이다.' - 산마오

  • 2021.05.07
포르모사 문학관
1970, 1980년대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여성 유랑문학(流浪文學) 작가 '산마오(三毛)' - 위키백과 제공

1943년에 태어나고 1970, 1980년대 여성 유랑문학(流浪文學) 작가로 활동했던 산마오(三毛)는  사하라사막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그의 작품은 최근 몇 년간 외국어로 번역돼 해외에서 발행되기도 합니다. 산마오의 본명은 천마오핑(陳懋平)이었는데  懋자를 쓰기가 너무 어려워서 스스로 천핑(陳平)으로 개명했습니다. 산마오는 스스로를 중국 옛날 쓰던 아주 작은 돈인 산마오쳰(三毛錢) 의 가치만을 지닌다고 생각해서 필명을 산마오로 정했습니다.

산마오는 어릴 때 문학을 좋아하지만 수학을 잘 못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열심히 준비하고 6번 연속으로 수학 시험에서 100점을 맞지만  부정행위를 했다고 수학 선생님에게 오해를 받아서 시험을 다시 봐야 했습니다. 선생님은 일부러 난이도가 매우 높은 문제를 냈는데 산마오의 0점 성적을 보고 산마오의 눈에 둥그라미를 그리며 치욕을 줬습니다. 이로 인해 막대한 타격을 받은 산마오는 휴학을 하고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휴학 후 산마오는 화가 꾸푸성(顧福生) 에게 수채화와 소묘화를 배웠는데 꾸푸성은 산마오의 문학 재능을 발견하고 그의 첫 문학 작품을 문학 잡지인 ‘현대 문학(現代文學)’의 편집장 바이셴용(白先勇)에게 추천했습니다. 이 작품이 ‘현대 문학’ 잡지에 실림으로써 산마오는 정식적으로 문학 창작에 길을 걷게 됐습니다. 꾸푸성은 산마오에게 미술 선생님일 뿐만 아니라 인생에 희망을 준 소중한 사람이라 자신의 영어 이름을 꾸푸성의 영어 이름 ‘에코(Echo)’로 정했습니다.

산마오는 독특한 성격을 갖춘 사람인데요. 그는 초등학교 글쓰기 수업에서 어른이가 되면 넝마주이가 되고 싶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산마오는 버려진 물건을 주워서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낡은 옷과 털실 등을 인형과 앞치마, 비키니 등으로 재탈생시켰으며, 사하라사막에 살던 집도 사막에 버려진 가구와 나무로 꾸미었습니다. 일반 대중들이 생각하는 노인만 하는 폐품을 줍는 일은 산마오에게 가장 재밌는 취미입니다..

여행을 좋아한 산마오는 생전에 정한 곳 없이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했습니다. 스페인과 독일에 한참동안 머물었고 1974년부터 남편과 함께  사하라사막에서 6년을 보냈습니다. 이동안 산마오는 사하라사막에서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창작을 시작하며, 남편과의 다채로운 혼인 생활, 사하라인의 다양한 문화, 사막 지대의 불안정한 정세 등을 묘술하는 산문 작품 ‘사하라 이야기(撒哈拉的故事)’로 일거에 유명해졌습니다. 당시 산마오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중국어권에서 ‘산마오 열풍’이 거세게 불고 ‘유랑 문학’도 하나의 문화적 형상이 됐습니다.

산마오의 작품 내용은 비현실적이거나 그저 대충 묘사된 것이 아니라 타향에서의 생활이 그대로 성실하고 자세하게 반영된 것이며, 이야기 배경은 또한 흔히 볼 수 있는 국가가 아닌 신비한 분위기를 선사하는 사하라사막입니다. 산마오의 섬세하고 재밌는 묘술은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 속 사하라사막의 매력에 빠지게 합니다.

1979년 남편이 익사한 후 산마오에게 유랑하는 것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서 14년의 유랑 생활을 마치고 타이완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산마오는 자신의 생명을 포기할 뻔했지만 친구와 가족의 지속적 관심으로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꿈 속에서 꽃은 얼마나 떨어졌을까(夢裡花落知多少)’는 산문 23편을 묶은 산문집으로 산마오가 남편을 잃은 고통 속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그립니다. 이 시기에 산마오는 문학 창작의 절정기를 맞았습니다.

이후 그는 극본과 가사 창작도 시작하여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었는데요. 특히 타이완 여자 가수 치위(齊豫)가 1979년에 발표한 ‘감람수(橄欖樹)’라는 노래는 가장 유명합니다. 가사는 대충으로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지마. 나의 고향은 멀리에 있다. 왜 유랑하냐면 하늘에서 나는 새를 위해, 산속에서 흐르는 시내를 위해, 넓직한 초원을 위해, 꿈 속의 감람수를 위한 것이다’인데요. 감람수는 바로 사람이 추구하는 이상을 상징하는데요. 이 노래에 담겨 있는 낭만적인 감정은 당시 계엄령의 시행으로 인한 보수적 타이완 사회의 국민들에게 큰 격려를 줄까 봐 국민당 정부는  8년이나 이 노래 부르기를 금지했습니다.

산마오는 1991년에 돌아가셨는데 현재까지 이미 30년이 지나도 사람에게 잊혀지지 않는 대단한 작가이며, 그의 작품도 여진히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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