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식 반주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러차오(熱炒)에서는 물론 일반 가정집에서까지. 초록색 병의 ‘타이완 맥주(台灣啤酒, TAIWAN BEER)’는 타이완 사람들의 식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종입니다. 타이완 사람들에게는 퇴근 후 하루의 피로를 싹 풀어주는 휴식을 가져다주고, 관광객들에게는 타이완의 식문화에 보다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매개체가 되는 타이완 맥주. 소규모로 정교하게 맥주를 만들어내는 브루어리들의 등장으로 새로운 브랜드의 수제 맥주가 유행하고 있는 요즘에도 타이완 맥주는 여전히 식탁의 지배자로 자리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이완 맥주의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바로 타이완에서 재배되는 대표적인 쌀인 봉래미(蓬萊米, 펑라이미)가 들어간다는 점! 보리나 밀로만 만드는 줄 알았던 맥주에 쌀이, 그것도 타이완산 쌀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흥미로운데요.
그러나 타이완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는데요. 맥주의 주재료인 보리와 밀이 타이완의 주요 농작물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타이완 사람들은 언제부터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을까요? 오늘 <대만주간신보> 시간에서는 타이완의 맥주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한국의 맥주 역사에 대해 간단히 훑고 가봅니다. 한국에 처음으로 맥주가 들어온 시기는 구한말,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개항 직후에는 일본으로부터 삿포로 맥주가 들어왔고, 뒤를 이어 1900년 전후로 에비스, 기린 등 일본 맥주가 연이어 수입되었다고 하네요. 그러다 1933년이 되어 한국 최초의 맥주 공장 설립되면서 맥주를 한국에서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는데요. 일본 군수품으로 맥주 공급하기 위해 대일본맥주주식회사가 한국에 최초의 맥주 공장인 '조선맥주주식회사'를 설립한 것이 그 시작입니다. 이렇게 한국의 첫 맥주 수입에서부터 첫 맥주 공장까지, 한국 맥주 역사의 출발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 과연 타이완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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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들어온 독일 맥주, 일본 맥주에 밀려나…
타이완 맥주 역사 역시 개항과 함께 시작한다. 1860년대 타이완이 외국에 개항하면서 여러 외국 상인들과 관리, 선교사들이 이 섬에 들어왔고, 그들과 함께 맥주가 처음으로 타이완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수입 맥주는 주로 유럽과 미국, 특히 독일 맥주가 주류였고, 그 당시 타이완 사람들 중에서 이를 맛본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했다. 즉, 아직 청나라 시대였던 1860년대 당시 타이완에서 맥주는 ‘이방인의 음료’였다.
‘이방인의 음료’인 맥주가 타이완 사람들의 일상에 자리하게 된 것은 일본 식민지 시기부터이다. 이미 한창 서구화가 진행 중이었던 일본은 일찌감치 자체 맥주 공장을 세워 직접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일본 상인들이 일본 맥주를 타이완에 대량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타이완에 일본 맥주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1898년, 일본 정부는 외국 맥주를 대상으로 25%라는 높은 세금을 부과했고, 이로 인해 타이완 주류 시장에서 독일 맥주는 경쟁력을 잃고 수입량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반면, 일본 맥주는 타이완 시장을 점령하면서 판매량이 해마다 증가하게 되었다.
초기에 타이완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일본인들이었다. 후덥지근하고 습한 더운 날씨에 타이완에서 거주하며 여가 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던 재대일본인들은 일본에서 들여온 맥주를 자주 마시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다고 한다.
타이완 사람들에게는 무척 생소했던 맥주가 일제시기 일본식 술집과 술집 문화가 확산되면서 점차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타이완 사람들도 맥주 맛에 점차 익숙해지시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상인들은 맥주를 ‘술’이 아니라 ‘약’으로 홍보하며 더 많은 타이완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1900년에서 1919년까지 타이완의 맥주 수입량은 3.5배나 증가했다.
첫 타이완產 맥주, 다카사고 맥주(高砂麥酒)
일본인들이 타이완에 맥주를 수출한 덕(?)에 맥주를 즐기는 타이완 사람들이 증가하자, 타이완 내에서 자체적으로 맥주를 생산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1919년, 타이완 제조 회사의 일본인 사장(安部幸之助, 아베 코노스케)은 일본의 주류업계 동료들과 협력하여 ‘다카사고 맥주 주식회사(高砂麥酒株式會社, TAKASAGO BEER)’를 타이베이에 설립했다. 이 회사는 현재 타이베이시 타이완 맥주 공장이 있는 자리에 타이완 첫 맥주 공장을 세웠다. ‘맥주(麥酒)’라는 단어도 이 시기에 사용되었다. (현재 중국어로 맥주는 ‘啤酒’ 이다.)
하지만 다카사고 맥주가 출시된 후 맛에 대한 평이 좋지 않았다. 일본만큼의 기술과 레시피가 타이완 공장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카사고 맥주 주식회사는 초기에 적자를 면치 못했다. 타이완 총독부가 1922년 주류를 독점 관리하게 되자 맥주를 제외한 다른 술들은 모두 관리 대상이 되었고, 다카사고 맥주는 민간에서 일부 운영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타이완 총독부가 이 신생 맥주 사업의 재정적 부담을 지지 않게 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초기에는 성공적이지 않았지만,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와서 운영을 개선한 결과, 다카사고 맥주는 점차 타이완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갔다. 1920년대에 들어서자 다카사고 맥주는 타이완 맥주 시장에서 약 30%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아사히, 기린과 같은 일본의 대형 맥주 회사들의 뒤를 바짝 쫓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의 타이완 맥주 시장 내 경쟁은 꽤 치열했다고 하는데, 당시 맥주 회사들의 다양한 마케팅 전략이나 뚜껑 추첨, 글자 모으기와 같은 이벤트 등을 통해 브랜드를 홍보하고자 했다.
1933년, 타이완 총독부는 맥주를 주류 관리 대상으로 삼고, 다카사고 맥주 판매를 정부가 맡기로 한다. 이 시기의 타이완 맥주 시장은 1920년대처럼 치열하지는 않았지만, 일본 맥주들이 서로 합병을 하면서 경쟁자가 줄어들었던 만큼, 다카사고 맥주는 점점 타이완 사람들의 입맛에 익숙한, 대표적인 타이완 맥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봉래미(蓬萊米)가 맥주에 들어가다! ‘건국 맥주’에서 ‘타이완 맥주’로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중화민국 정부의 통치 하에 들어가자, 타이완의 모든 주류 관리 사업도 일본에서 중화민국으로 넘어갔다. 그 중에는 다카사고 맥주도 포함되었다. 다카사고 맥주는 중화민국의 통치 하에 이름도 ‘건국 맥주(建國啤酒)’로 바뀌었다.
정치적으로는 큰 변화가 있었지만, 맥주에 대한 타이완 사람들의 수요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1946년, 건국 맥주 공장의 생산량은 13만 600병이었지만, 20년 후에는 360만 병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생산량의 성장 뒤에는 1950-60년대 건국 맥주 공장의 설비 확장과 양조 기술 개선, 그리고 미군 주둔과 미국의 경제 원조에 따른 미국식 술집 붐이라는 문화적 배경이 있다.
특히, 1961년 건국 맥주 회사는 독일의 기술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타이완 산 쌀인 봉래미(蓬萊米, 펑라이미)를 맥주에 넣어 보았는데, 그 결과 봉래미가 가져오는 고유의 은은한 단맛과 향이 완성되었다. 왜 하필 봉래미를 넣었는지에 대해선 두 가지 썰이 있다. 하나는 50-60년대 타이완의 쌀 생산량이 과잉이 되자 당시 국민당 정부가 공배국을 통해 여분의 곡물을 구입해 술을 만들게 했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맛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맥주에 쌀을 추가했다는 것. 어떤 것이 사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타이완 맥주(台灣啤酒)’는 현지 농산물을 결합한 특징 덕분에 타이완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맥주 시장에서 점유율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친근한 음료가 된 맥주. 맥주가 타이완에서 생산되기 시작한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거치며 맥주는 타이완 사람들에게 친숙한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봉래미가 들어간 타이완 맥주는 현재 전체 타이완 맥주 시장에서 여전히 58%의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해외 수입 맥주와 수제 맥주 브랜드 시장이 커지고 있는 요즘에도 ‘타이완 맥주’는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셈이다. 참! 지난 2019년에는 타이완 맥주 100주년을 맞아 쌀을 추가하지 않은 100% 보리 맥주, ‘다카사고 맥주(高砂啤酒)’를 재출시하기도 했다.
►참고자료
蔡承豪,〈促銷、抽獎、新口味:側寫日本時代的臺灣啤酒市場〉,2007。
趙銘圓,〈臺灣啤酒發源地—公賣局建國啤酒廠〉,《中國飲食文化基金會會訊》,1999。
艾德嘉,〈乾杯!臺灣酒就是要加蓬萊米?臺灣的啤酒如何從滯銷王變成飯桌霸主〉, 《故事》,2023.12.20。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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