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시 송산구에 위치한 타이완 텔레비전 방송국(臺灣電視公司, TTV) 뒷골목에 가면 낡고 허름해보이는 작은 음식점이 하나 있습니다. 오래된 천막이 걸쳐진 노포 건물 외벽에는 잃어버린 국토를 되돌려달라는 의미의 ‘환아하산(還我河山)’이란 네 글자가 크게 써있지요. ‘환아하산’은 중일전쟁 시기 불리던 중화민국의 군가 제목이기도 합니다. ‘장강과 황하는 끝없이 넓고, 다섯 개의 호수와 일곱 개의 연못은 광활하다’라고 시작하는 이 군가는 일본의 침략에 맞서 우리의 강산을 되찾아야한다는 비장함을 담고 있습니다. 이 가게에 적힌 ‘환아하산’이라는 네 글자는 1949년 타이완으로 남하한 국민당 정부가 중화민국의 영토인 중국 대륙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는 간절함을 담고 있습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과거 국민당 정부 고관들의 사진들과 상장 등도 걸려있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50~60대 타이베이로 돌아간 듯한 인상을 주는 가게입니다.
권촌요리?!
‘촌자구(村子口)’라는 이름의 이 가게는 일명 ‘권촌요리(眷村菜, 쥐안춘차이)’로 유명한 곳입니다. ‘권촌요리’는 타이완의 독특한 요리문화 중 하나입니다. 권촌요리의 ‘권촌’은 국공내전 이후 중국 본토에서 타이완으로 이주한 국민당 정부 산하 군인들과 그 가족들이 살던 마을을 의미합니다. 군인과 가족의 출신지역은 중국 각지였기 때문에 이들이 타이완에 정착하면서 자신의 고향이나 살았던 중국 각 지역에서 가져온 고유의 음식 문화를 혼합해 독특한 스타일의 ‘권촌요리’가 탄생한 것이죠. 예를 들면, 베이징이나 산둥 지역과 같은 중국 북부 지역과 광둥, 푸젠과 같은 남부 지역은 물론 스촨이나 후난과 같은 중국 서부 지역의 요리가 다양하게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360도로 돌아가는 원탁 테이블이 있는 식당과 달리 낡고 허름한 의자와 식탁에 올려진 소박하고 가정적인 느낌이 나는 음식이 권촌요리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고향을 떠나 타이완섬에 정착해 사는 외성인들은 그리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제한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야 했기에 간단한 재료로 고향의 맛을 재현한 소박한 요리가 주를 이룹니다. 대표적인 메뉴로는 우육면이나 자장면과 같은 한 그릇 면요리, 북방식 군만두인 궈티에(鍋貼)와 물만두인 수이자오(水餃), 광둥식 걸쭉한 덮밥인 후이판(燴飯) 등이 있습니다.
권촌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인 ‘촌자구’에서도 물만두나 한 그릇 면요리, 각종 식재료를 간장에 절인 루웨이(滷味) 등 소박한 메뉴를 취급합니다. 가게 벽에 크게 붙어 있는 각종 반공 구호와 군장교들의 사진 등, 국민당 정부 시기 ‘권촌’의 독특한 정서와 향수가 깊게 묻어있는 이 식당은 허름한 가게에 내로라할 것 없이 소박한 음식을 차려놓음에도 늘 남녀노소 손님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권촌’은 오늘날 대부분 사라졌지만, 권촌에서 즐겨해먹던 음식은 타이완을 대표하는 독특한 요리문화로 자리 잡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외성인들의 임시거처였던 '권촌'(眷村, military dependents' village)
‘돌볼 권(眷)’ 자에 ‘마을 촌(村)’ 자가 합쳐진 ‘권촌’은 국민당 정부와 함께 타이완 섬으로 따라온 외성인의 거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부대나 도시 외곽지역에 간이건물을 지어 수용시킨 마을을 의미합니다. ‘간이건물’인 이유는 다시 중국 본토로 돌아가기 전 타이완 섬에 잠시 머물다 가겠다는 국민당 정부의 계획 때문입니다. 타이완의 일제시기 일본인들의 주거지를 개조해서 만들기도 하고, 임시거처로 허름하게 짓기도해 외성인만의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1949년 국민당 정부와 함께 타이완에 올 수 있었던 사람들은 상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타이완에 오려면 비행기나 배를 타고 와야하는데, 일반 서민들은 그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죠. 따라서 당시 타이완에 온 외성인은 국민당 정부의 관계자, 공무원, 교사, 특히 군대 종사자와 그 가족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950년대 중국 본토에서 타이완으로 건너 온 전체 외성인의 2/3가 도시에 거주했는데, 특히 타이베이시는 대표적인 외성인들의 집결지였습니다. 1965년 타이베이시에 거주했던 외성인은 43만명으로, 타이베이 인구의 39%나 차지했죠. 타이베이 중에서도 다안구(大安區)는 전체 인구의 2/3이 외성인이었다고 합니다. (손준식, 2020, 195)
1949년부터 1960년대까지 타이베이에 여러 권촌들이 형성되면서 외성인 특유의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권촌으로 사사남촌(四四南村, 스스난춘)이 있는데, 사사남촌은 1948년 말 타이완에 온 사사병공장 소속 군인과 그 가족들이 일본군 창고가 있던 땅에 “대나무 서까래와 흙 기와로 지붕을 덮고 대나무 줄기와 진흙으로 벽을 만든” 국민당군이 타이완에서 세운 최초의 권촌이라고 합니다.(손준식, 2020, 198)
베이터우 중심신촌(北投中心新村, Heart Village)
이주사회인 타이완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권촌은 1990년대 말 재건축이 추진되면서 대부분 철거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에서 지정한 일부 문화보존구역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현재 문화보존구역으로 지정된 권촌은 타이완 전국을 통틀어 13곳. 이 중 타이베이에는 유일하게 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베이터우에 위치한 중심신촌입니다. 특정한 건물이 보존문화로 지정된 다른 권촌과 달리 이곳 베이터우의 중심신촌은 마을 자체가 보존 구역으로 지정되어 1950-60년대 외성인의 집결촌인 권촌의 풍경과 문화를 지금도 접할 수 있습니다. 국민정 정부와 중화민국의 상징인 청천백일만지홍기가 줄지어 걸려있는 중심신촌 입구를 들어가면 상당히 협소한 골목에 낮은 층고의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몇몇 건물들을 개방해 권촌에 살았던 가정집의 풍경도 관람할 수 있습니다. 낡은 목재식 책장에 꽂혀있는 여러 책들과 부엌의 식탁에 재현해놓은 가정식이 권촌에 살았던 외성인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광장이나 공동화장실, 진료소와 같은 공공의 장소도 있습니다. 가정집과 병원, 화장실 등 말그대로 없는게 없는 중심신촌은 외부의 도시공간과 분명하게 구분되어 다른 공간으로 나가지 않아도 자신들만의 촌락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권촌만의 폐쇄적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공관 환민신촌과 가화신촌
베이터우의 중심신촌 외에도 타이베이에는 과거 권촌의 문화가 살아숨쉬는 공간이 있습니다. 재단법인 타이베이문화기금회 권춘부(財團法人台北市文化基金會眷村部)에서는 타이베이의 권촌 문화를 보존하고 이를 현대의 예술문화활동과 결합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타이베이 지하철 그린라인 공관역에서 멀지 않은 환민신촌(煥民新村, Huanmin Village), 그리고 구팅역와 공관역 사이에 위치한 가화신촌(嘉禾新村, Home Village) 등이 대표적입니다. 환민신촌은 두꺼비산(蟾蜍山) 산자락에, 가화신촌은 강변 근처에 위치해 있어 베이터우 중심신촌과는 또 다른 권촌의 문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고령층 외성인들이 밀집해있는 권촌은 시대의 뒤안길에 놓인지 오래입니다. 비록 권촌의 건물을 사라져가지만, 역사의 20세기 중반 타이완 역사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었던 권촌의 문화는 음식, 문학, 건축, 예술 등으로 남아 여전히 숨을 쉬며 후대들과 교류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타이베이 시민들 곁에 남아있는 권촌요리 식당의 음식을 맛보고, 타이베이시가 보존하고 있는 권촌의 거리를 거닐며, 타이베이의 1950-60년대를 떠올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참고자료
손준식, 접경 속의 접경-戰後 臺灣의 眷村 형성과 관리-, 다문화콘텐츠연구 2020, vol., no.35, pp. 185-224
郭冠麟, 國軍眷村發展史, 國防部史政編譯室史政處, 2005.
가화신촌 https://homevillage.taipei/
중심신촌 https://www.beitouheartvillage.taipei/index.aspx
타이베이문화기금회 https://www.tcf.taipei/
환민신촌 https://huanminvillage.taipei/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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