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밥상은 왜 변했을까?
2021.01.23. 주간시사평론
헝가리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그의 저서 ‘거대한 변환’에서 토지와 인류와의 관계 변화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다. 그는 토지, 즉 자연과 인류가 만든 제도와는 긴밀하게 교착된 자연의 요소라며, 인류는 시장경제의 논리로 인간과 토지 그리고 화폐를 상품으로 규정하여 인류 시초의 목적과 다르게 이용되어 이 사회가 파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칼 폴라니는 자본주의 체제가 상품화할 수 없거나 그래서는 안 될 대상을 상품화하였기에 그 자체로 불안정 요인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 주간시사평론에서 ‘거대한 변화’에 나오는 말을 인용한 이유는 바로 우리의 식생활 변화와 관련 된 내용을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식은 쌀이다. 한국에서는 ‘밥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지금의 식생활을 보면 예전에 쌀밥을 먹는 걸 행복한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타이완의 예를 들어 분석해 보겠다.
1960년대의 타이완은 물질적으로 매우 궁핍해 있었다. 당시 미국과는 동맹으로 타이베이로 임시 천도한 중화민국 정부는 미국의 원조를 받으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때의 타이완 밥상은 어떠했을까? 해마다 적어도 2부작 벼농 수확을 거두는 타이완에서 쌀밥 걱정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만은 않았다.
당시 원조를 받고 있던 타이완은 미국식 식생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미국의 농산품 기업이 타이완에서 시장 개척에 나서면서 밥상도 점차 변모하기 시작했다.
미국 농산품 기업에서 타이완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급식에 지원했다. 지원한 식재료는 바로 빵이었다. 그러면서 각종 조리 교실을 개설하고 분식 섭취를 권장하는 강습회를 수시로 열면서 타이완 주민의 밥상을 점점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외국 기업 혼자서 우리의 식생활 습관을 바꾸지는 못한다. 도와주는 힘이 있어야 가능한데, 이를 좀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방조하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데 당시 많지 않은 국내 신문이나 잡지에 지금 영화나 방송에서 자주 접하는 콘텐츠에 상품을 간접적으로 광고하는 PPL (Product Placement)과 유사한 형태의 보도들이 난무했다. 그런 보도 내용은 모종의 상품을 선전하기 위해서 강조했다고 할 수 있지만 깊이 들여다 보면 지금 말하는 ‘가짜 뉴스’가 존재했었다. 그 당시의 선전이 얼마나 성공을 했으면 지금도 그 내용을 믿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예컨대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키도 커지고 튼튼해진다’,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예뻐지고 피부도 하얘진다’라는 내용에서부터 ‘쌀밥을 과다 섭취하면 대뇌의 발전에 저해된다’라는 엽기적인 가짜 뉴스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반세기 이래 타이완인의 밥상은 확연히 변했다. 이중에 쌀밥으로 포커스를 맞춰 얘기하자면 원래 인당 매년 평균 150킬로그램의 쌀을 섭취했던 것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 3분의 1도 안 되는 45킬로그램으로 크게 줄었다. 가까운 한국과 일본의 매년 쌀밥 섭취 평균치보다 낮은 수치이다.
미국의 농산품 기업이나 광고성 언론 보도 만을 탓할 수는 없다. 사실 경제발전이라는 화려한 포장 아래 농촌이 사라져간다는 시대적 슬픈 변화가 있었다.
20세기 중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정부는 경제발전을 추진하기 위해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농촌의 인력을 도시 쪽으로 흡인하여 공업 분야에 투입시키려 했다. 그때 정부는 벼농 수확의 30%를 징수하는 정책을 펼쳤고, 미국산 저렴한 밀과 옥수수 수입의 문을 크게 열었다. 그렇다보니 타이완에서는 원래 쌀이 남아돌아가는 상황에서 외국산 저렴한 밀과 옥수수가 시장을 차지하게 되어 국산 쌀은 더더욱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농사를 지어봤자 남는 게 없다보니 농촌 인력이 도시로 이동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했다.
농촌 인구가 줄어들고 농지에 생기가 사라지면서 타이완에는 공업수요에 따라 곳곳에 수출단지가 들어섰다. 절두절미하여 말한다면 그래서 ‘경제기적’을 이뤄냈다. 하지만 공장이 뿜어낸 오염으로 토양과 수원이 죽어갔다.
세계화의 물결이 일면서 각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였다. WTO에 가입하려면 더욱더 많은 외국 농산품의 수입을 개방해야 한다. 1990년대에 WTO 가입이 한창일 때 농업 경제로 먹고살았던 나라라면 모두 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을 것이다. 세계화를 거부하는 목소리는 국가 경제무역 정책에 압도 당해 결국 농촌에 대한 파괴력이 가장 컸다.
왜 신흥 공업국가에서는 다들 농업을 희생양으로 바쳤을까? 칼 폴라니의 이론을 다시 상기하게 한다. 토지, 즉 자연을 상품화하여 벼농사로는 높은 가격 또는 큰돈을 벌 수 없어서 희생될 수 있다는 사고, 그리고 자연환경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라는 생각에 제조공장들이 농업을 신속하게 대체하고, 수출가공으로 높은 이윤을 남기면서 미국산 농산품을 대규모 수입까지 했던 것이다.
우리의 입맛이 하루아침에 변하지는 않는다. 유행문화처럼 사회환경의 영향도 받는다. 쌀밥이 아닌 서구식 식생활로 변화해오는 과정을 다시 되짚어 볼 때, 역시나 우리는 쌀밥 민족이었고, 농민의 희생과 노고로 인해서 80년대, 90년대의 경제 기적을 이룩해 냈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환경이 가한 압박으로 농지를 포기해 토지 자체가 상품화되었고, 농사짓는 손이 공장에서 대량 공산품을 생산해 내면서 전반적인 국가 경제에 이바지했다.
농업이 희생하면서 공업을 수십년 간 먹여살렸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우리의 식생활, 우리의 밥상 변화를 반성해보았다. -jennifer pai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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