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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인명피해를 낳은 1935년 신주-타이중 대지진

  • 2024.04.23
대만주간신보
역대 타이완에서 발생한 지진 중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발생시킨 1935년 신주-타이중 대지진의 참혹한 현장 - 사진: Wikimedia Commons

54번째 지구의 날을 맞이한 어제 4월 22일, 타이완에서는 지난 4월 3일 지진 이후 규모 5 이상의 지진이 다시 한 번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23일 새벽 2시 규모 6 이상의 지진이 두 차례, 오전 8시에는 규모 5 이상의 지진이 네 차례나 발생하는 등 이틀 사이 수 차례 지진과 여진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꽤 큰 규모의 여진이 계속되자 타이완 동부 화롄(花蓮)은 주민의 안전을 위해 오늘(23일) 출근 및 등교 중단도 선언했죠. 

통계에 따르면, 타이완에서는 22일 어제부터 오늘 23일 오전까지 이틀간 무려 80건이 넘는 지진이 발생했고, 그 중에는 규모 6.3의 지진도 있었다고 합니다. 23일 새벽 2시 경, 저도 타이베이 집에서 잠을 자다 지진이 느껴서 잠에서 깼는데요. 지난 4.3 지진에 비해 그 강도는 조금 약했지만, 꽤나 긴 시간 동안 온 집안이 흔들려 다시 한 번 지진의 무서움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습니다. 

 

화롄 4.3 지진 이후 어제(22일)과 오늘(23일) 이틀 연속 여진이 수 십 차례 발생하고 있다. - 사진: 國家災害防救科技中心

태평양 주변의, 지진이나 화산 활동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을 일컬어 환태평양조산대, 혹은 불의 고리(Ring of Fire)라고 하죠. 타이완은 일본 열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미국 서부, 칠레 서부와 함께 이 환태평양조산대에 포함됩니다. 전세계 지진의 90%가 바로 이곳 환태평양조산대에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을 만큼 지진이 잦은 곳이죠. 타이완에서 발생하는 지진도 대부분 필리핀해판과 유라시아판이 타이완 섬의 동쪽에서 수렴하면서 발생합니다. 

올해 4월 들어 잇따라 발생하는 지진의 진앙은 타이완 동부, 화롄 해역인데, 실제로 타이완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지진은 동해안에서 발생하죠. 다행히 타이완의 동부는 서부에 비해 인구 밀도가 현저히 낮아 잦은 지진에도 인명 피해가 적습니다만, 어쩌다 한 번 섬 내부나 혹은 서해에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상당했습니다. 

타이완에서 지진이 본격적으로 관측하기 시작한 1901년부터 최근까지 타이완에서는 총 91차례의 강진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강진은 올해 4월 초에 발생한 화롄 4.3 지진이죠. 역대 타이완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지진은 1935년 신주-타이중 지진으로, 무려 3,276명이 사망, 12,053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오늘 대만주간신보 시간에는 환태평양조산대에 속하는 타이완에서 발생한 강진 중 역대 가장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1935년 신주-타이중 지진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1935년 4월 21일. 규모 7.1의 강진이 전 타이완 섬을 송두리째 흔들었습니다. 진앙은 타이완 섬의 중부지역인 타이중 시에서 북동쪽으로 30km 떨어진 산 일대였기 때문에 그 충격은 타이완 중서부 지역인 신주와 타이중에 고스란히 전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3,276명 사망, 12,053명 부상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는 물론, 17,907채의 가옥이 쓰러지고 도로, 교량, 철도, 통신 등 공공시설도 모두 훼손되는 등 지진이 발생하고 난 뒤 신주와 타이중 일대는 말그대로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타이중 우펑에 살았던 부호인 린셴탕(林獻堂)은 자신의 일기에 1935년 지진에 관해 써내려가며, 마치 소의 울음소리와 같은 ‘땅울림’을 들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지진학자들은 지진파 에너지가 공기로 유입되면서 음파에 의해 소리가 형성될 수 있다고 하는데, 당시 1935 지진을 직접 경험한 타이완 사람들은 대포 소리나 강풍 소리 등에 비유해 표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특히나 지진이 발생했던 시간은 오전 6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 있었을 시간이었죠. 

당시 작가였던 양쿠이(楊逵) 씨는 자신의 친구를 만나러 타이난에서 타이중으로 가던 중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한 지진 피해 현장을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집이 무너져 내려 갈 곳 없는 수많은 사람들은 먹을 것도 쉽사리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부 지역 관리들과 유명한 부호 가족들이 구호 물품을 사재기 하거나 주변을 전혀 돌보지 않는 냉담함에 대한 실망도 함께 써내려갔습니다. 

양 씨는 피해 지역의 가옥들은 대부분 흙벽돌을 쌓아 만든 집들이어서 그 피해가 더 컸다고 말합니다. 흙벽돌로 만든 집은 값은 저렴했지만 쉽게 무너지는 단점이 있다고 설명하죠. 그러면서 같은 지역에 일본 당국이 지은 마을회관은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고 비교하며, 식민 정부가 타이완의 잦은 지진활동에도 불구하고 타이완의 가옥 설계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앞으로 흙 대신 나무를 사용해 집을 지으라고 충고하기도 했죠. 

1935년 신주-타이중 지진은 타이완 서부의 외도인 펑후(澎湖)를 비롯해 심지어 중국 샤먼(廈門)과 푸저우(福州) 등 중국 연해 지역까지 감지될 정도로 그 규모가 상당했습니다. 4.3 지진 이후 오늘까지 여진이 이어지는 것과 같이 당시에도 한 달 동안 크고 작은 여진이 계속돼 체감된 추가 지진만 60여 건에 달했다고 합니다. 

지진으로 한순간에 수 천 가구가 무너져 내리고 각종 공공 시설도 파괴되어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 신주와 타이중. 이 지역의 부상자를 간호하고 구호 물자를 배달하는 등, 지역을 복구하려면 수많은 인력과 자본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일본 천황이 10만엔을 타이완 지진 구제 비용으로 보냈고, 타이완 총독부도 ‘지진 재난 복구 위원회’를 설립해 복구 작업에 나섰는데요. 민간 차원에서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있는 타이완동향회와 유학생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모금 행사를 벌이기도 하고, 당시 유럽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지원을 보냈다고 합니다. 

당시 타이완의 민족운동가였던 양자오자(楊肇嘉)는 지진 구호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인물 중 한 명입니다. 타이중 사람인 양자오자는 지진 하루 전 날인 4월 20일 자신의 둘째형의 장남이 결혼을 앞두고 있어 돌아가신 형을 대신해 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향인 타이중 칭수이(清水)로 갔는데요. 그 다음날인 21일 아침 6시 대지진이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며칠 뒤 양 씨는 일본 도쿄로 날아가 24일 오전 회의를 열고 지진 재난 성금 모금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합니다. 일본 척무성과 도쿄시의 후원을 받아 5월 5일 도쿄 히비야 공회당에서 첫 성금 모금 음악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합니다. 이 음악회의 마지막 무대는 당시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던 무용가 최승희 씨가 맡기도 했죠.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5월 도쿄에서 무사히 성금 모금 음악회를 마친 양씨는 같은 해 7월에는 타이완 본토로 돌아와 지진모금을 위한 타이완 전국 순회 음악회도 개최합니다. 여기에는 일본에서 유학 중인 타이완의 대표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성악가들이 출연해 한 달 동안 무려 31회의 공연 일정을 소화해냈죠. 

지진으로 인한 피해와 상처를 음악회를 통해 완전히 치유할 수는 없었겠지요. 그러나 타이완에서 발생한 역대급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일본과 타이완을 넘나들며 후원을 받고 성금을 모으기 위한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이 더해져 피해를 복구하는 데 큰 힘이 되었으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지진과 자연재해 앞에서 우리 인간은 참으로 무기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타이완에서는 이를 보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죠. 54번째 지구의 날을 맞아 청취자님들께서도 함께 사는 우리 지구를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시간 갖는 건 어떨까요?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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