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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육면의 나라 타이완에서 한때 소고기가 금지였다는?

  • 2023.07.04
대만주간신보
일제시기 타이베이에 문을 연 소고기 가게 광고. 가게는 '고베(神戶)산 소고기'를 팔고있다고 강조한다.

타이완하면 우육면, 우육면 하면 타이완. 소고기를 푹 고아 만든 탕과 고기를 면과 함께 즐기는 우육면은, 타이완을 여행해본 한국인이라면 유명한 우육면 집 하나, 둘 정도는 기억하고 있을만큼, 타이완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데요. 이런 타이완에서 한 때 소고기는 금기해야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일제시기였던 1920년대 타이완의 동부 이란(宜蘭) 지역의 타이완 학생들이 일본인 선생님과 일본에 가 소고기가 들어간 일본식 훠궈(샤브샤브)를 처음 본 에피소드가 이를 말해줍니다.  

"1920년 이란의 몇몇 학생들은 일본인 선생님들과 함께 일본에 도착했다. 도착 첫날 밤 여관 여종업원이 뜨거운 샤브샤브를 들고 나오자 소년들은 각자 집게손가락을 크게 움직여 급히 젓가락을 움직이려 했다. 그 때 갑자기 열아홉 살의 양(楊)군이 소리쳤다. "이것은 소고기니 먹을 수 없어!" 향긋한 소고기 샤브샤브를 앞에 두고 열세 살 소년이 국 한 숟갈을 떠서 마시려 하자, 다른 사람들은 부리나케 비명을 지르며 "소 먹지 마!"라고 말했다. "소를 먹으면 공부를 잘 할 수 없잖아!" 국물만이라도 좀 마시는 건 괜찮지 않냐고 하자, 곧 다시 모두들 필사적으로 "소고기 국물도 마실 수 없는 거야! 국을 마셔도 반드시 댓가가 따를거야!" 라고 말했다."

이 열세 살 소년은 생전에 변호사와 타이베이시 의원을 지낸 1907년생 천이송(陳逸松)으로 소고기에 대한 그의 회고는 현재와 1920년대 일제시기 타이완 사람들의 소고기관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과거 타이완 사람들은 오랫동안 소고기를 먹지 않아 소고기를 먹는 식습관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먹는 것 자체가 여전히 금기였습니다. 신기하죠? 왜 타이완 사람들은 소고기를 먹지 않았을까요? 

금기는 대부분 두려움에서 비롯된다고 하죠? 과거 타이완에는 소고기에 대한 '공포'의 전설이 많았다고 합니다. “소고리를 많이 먹으면 바보가 된다”, “소고기를 먹지 않으면 원래 팔자가 가벼운 사람도 복을 더하고 장수할 수 있다”, “소 잡는 것을 방관하게 될 경우 두 눈을 꼭 감고 도와 줄 수 없음을 표시해야 저승의 벌을 피할 수 있다”, “칼을 들고 소를 죽이는 백정은 죽어서 지옥에 가면 염라대왕에게 버려져 뱀의 먹이가 된다" 등등이요. 타이완의 한 속담에 "소나 개를 먹으면 지옥이 불가피하다(吃了牛犬, 地獄難免)"는 말이 있는데, 소고기와 개고기를 먹으면 지옥에 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속담 뒤에는 사실 역사적인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가 타이완을 개발하기 전, 원주민들은 논이 없었고, 괭이를 갈 필요가 없었으며, 사탕수수를 재배하여 설탕을 만드는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네덜란드는 동쪽으로 온 후 자당(蔗糖), 수크로스라고도 불리는 사탕수수의 경제적 가치를 보고, 중국에서 대량으로 사람들을 모집하여 타이완으로 보내 타이완의 사탕수수 밭을 개간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타이완 역사 교수는 “네덜란드인이 자신들의 식민지인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200마리의 소를 운반하여 타이완 경작지에 사탕수수를 심을 때 사용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것이 타이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초기의 소의 기원입니다. 

1640년 12월 6일에 펑후(澎湖)에는 소의 수량이 이미 천이백여 마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대부분 소의 주인은 네덜란드인으로, 이들이 타이완 원주민에게 파는 식이었죠.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도 소를 사육해 중국에서 이주한 농민들에게 농사를 짓게 했습니다. 만약 농우가 사용기간 중에 죽으면 농민은 반드시 배상해야 했고, 그 소가 송아지를 낳으면 포상금이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식민 시기 이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300년 전 청나라가 타이완 섬을 통치하자 타이완의 농촌에서 소는 생계를 꾸리기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이자 진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때 청 정부는 소를 죽이거나 소고기를 먹는 것을 금지하는 금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일제시기에 이르러서도 타이완 민간에서는 여전히 소를 탐하지 않는 문화가 내려왔던 것이죠. 

소고기를 먹지 않는 타이완의 전통이 일제시기에는 많은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타이완인이 소고기를 먹기 시작한 문화는 바로 일제시기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죠. 사실 일본도 원래 소를 먹지 않는 민족이었습니다. 일본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기다 준이치로(紀田順一郞)가 지은 <근대사물기원사곡(近代事物起源事曲)>에 따르면 도쿠가와 막부가 집권한 에도 시대에 일본인은 소고기를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막말 무렵 일본 전역에서는 외국인 거주가 허용된 지역에서만 소고기 가게를 볼 수 있었죠. 호기심 많은 일본인들이 가게 앞을 빙 둘러서자 어떤 가게 주인은 일부러 개를 풀어 보기만 하고 사지 않는 손님들을 쫓아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1868년 이후 메이지 시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인들은 피부색말고는 몸과 마음이 모두 서양인인냥 행동하며 소고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872년 메이지 천황이 소고기를 먹기 시작하자, 일본 각 지역 지방 정부도 소고기를 권장하는 광고를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유행은 종종 기존의 문화와 강력하게 대치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죠. 당시 일본에서 일부 나이 드신 어머니는 아들이 소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심령불결한 죄를 지었으니 빨리 신당에 가서 참회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1877년, 도쿄의 소고기 전골집은 이미 500여 곳에 달했고, 1892년에는 소고기 통조림도 일본에서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1895년 청일전쟁 후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소고기 통조림이 일본군과 함께 처음으로 타이완에 상륙했습니다. 오가타 다케세(緒方武歲)가 쓴 <시정 50년 타이완 초창사>에서 한 일본 군대의 고용인은 일본이 타이완 통치를 시작하는 '시정(始政)’ 하루 전 날  타이베이성에 도착하여 보고한 후, 군부로부터 많은 생필품을 하달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소고기 통조림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일본은 이미 소고기를 먹는 데 매우 익숙했던 나라가 되었던 것입니다. 일제의 식민지가 된 이듬해 타이완에는 '일심사(一心舍)'라는 소고기 가게가 문을 열었다는 광고가 나왔고, 1898년 타이베이에도 닭고기와 소고기요리를 파는 식당 '축자관(筑紫館, 지쿠쯔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1899년, 타이베이 시먼의 "안편 소고기 가게(安片牛肉店)"는 "진짜 고베 소고기"를 판매한다고 광고했습니다. 같은 해 고베 소와 샤먼 소를 수입하는 타이베이 푸첸 거리의 '송미상점(松尾商店)'도 신문에 큰 폭의 광고를 실었습니다. 

난터우 출신의 극작가 장선체(張深切, 1904년생)은 회고집 <이정표(里程碑)>에서 그가 소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설득된 경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열네 살에 일본 모지(門司)에 도착했을 때, 타이완 루강(鹿港) 출신 시인이 내게 서양 요리를 대접했다. 자신이 독일 스테이크를 먹은 것을 알았을 때, 대경실색하여 갑자기 큰 죄를 지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가 자신에게 이치를 말해주었다. 주요논점은 공자도 소를 먹기 때문에 제사 때 돼지는 안써도 소는 쓴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사람들에게 소를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돈 것은 누군가가 말을 듣지 않고 소를 먹어치워 밭을 갈 소가 없어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나 많은 무서운 미신을 만들어졌던 것이다. 세계 각국에는 소를 먹지 않는 문화가 없는데 소를 길러 먹기도 하면서 경작을 할 수 있다.” 

장선체는 평생 그 말을 잊을 수 없다며 이때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미신을 풀었다고 합니다. 
 

참고문헌

陳柔縉. 臺灣西方文明初體驗 / 陳柔縉作. 二版. 臺北市: 麥田, 2011.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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