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촌에는 무려 50년간 매운라면을 판 가게가 있습니다. 한 때 파는 라면의 이름이 ‘최루탄 해장라면'이었다고 하네요. 최루탄. 이 세 글자만 들어도 지난 1980년대 작은 땅덩어리의 한 나라에서 민주사회를 열망하던 대학생들과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폭력도 마다하지 않던 군사 정부 간의 치열한 다툼의 장면이 떠오릅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아직 세상에 없었던 저는 역사시간을 통해 배우거나 다큐멘터리, 외신 뉴스 등을 통해 당시의 실상을 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 대한 저의 기억은 최루탄, 뿌연 연기,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대학생 등 비교적 자극적인 장면에 집중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만, 이 모든 장면들은 사실이었기에 당시를 떠올리면 가슴 한 켠이 찡 아려옵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산지이자 대학생들의 거점이었던 신촌의 이 라면가게는 당시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졌을 때 함께 병원을 지켰던 학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도 하는 등 그 현장의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 연세대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금도 신촌에 들를 일이 있으면 이 가게를 찾는다고 하네요. 한 때 ‘최루탄 해장라면'이었던 라면의 이름이 지금은 최루탄은 빠진 채 그냥 ‘얼큰한 해장라면' 혹은 ‘매운 해장라면’으로 바뀌었고, 사장님도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50년간 한 자리를 지켜오면서 한 도시, 한 나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곳 타이베이에도 국민당의 장기 집권이 막을 내리며 민주화 물결이 일던 1990년대 각종 정당 외 인사들이 모여 타이완의 시정과 미래를 논했던 한 식당이 있습니다. 바로 1990년 11월에 문을 연 ‘아재적점(阿才的店)'입니다. 중화민국의 장제스 정권이 반공주의를 기치로 1949년부터 유지하던 계엄령이 1987년 막을 내리자 국민당의 정치적 압박에서 눌려있던 사람들은 타이완의 ‘향토’를 내세우며 자유와 민주의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마침 ‘복고풍'이 물씬 느껴지는 가게 안은 일제시기 식민지 타이완의 상장, 광고 그림부터 50-60년대 영화 포스터가 가게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이 가게 특유의 타이완식 복고풍은 당시 학생운동 세대와 민진당 인사 및 언론 기자들을 끌어들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타이완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현장을 바로 이곳 아재적점에서 토론하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천수이볜(陳水扁)이 타이베이 시장을 역임할 당시 단골 손님이었고, 쑤전창(蘇貞昌, 1947-) 전 행정원장, 셰창팅(謝長廷, 1946-) 현 타이베이주일경제문화대표처 대표, 유시쿤(游錫堃, 1948-) 현 입법원 원장 등도 과거에 이곳에서 자주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1979년 메이리다오 사건을 총지휘하다 투옥되었던 스밍더(施明德, 1941-) 전 민진당 주석은 이곳 아재적점에서 출소 5주년 기자회견을 했고, 당시 타이베이 시장이던 천수이볜이 가게에서 술을 따라 준 사진도 가게 안에 있더군요. 이렇게 많은 정치인들이 오갔던 이곳 아재적점은 타이베이의 ‘민주 성지(民主聖地)'라 불리는 식당입니다.
1990년 3월,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이전한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학생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대학생 9명이 중정기념당에서 농성을 개시해 학생 운동의 서막을 열자 타이완 각지에서 6천 여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지금의 자유광장에 집결해 정치개혁을 주장했습니다. 이 때 참여한 사람들을 소위 타이완의 ‘학생운동 세대(學運世代)’라고 일컫는데, 이곳 아재적점은 타이완 학생운동 세대들이 찾아가 그들의 피끓은 청춘을 남기고 간 곳입니다. 타이완의 민주 운동을 직접 목도한 아재적점의 전 사장이자 요리사인 류젠화(劉建華)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가족 모두가 심혈을 기울여 ‘아재적점’과 ‘민주성지’라고 일컬어지는 이 곳을 잘 이어가는 것이 내 사명”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몇 십년 간 한 자리에서 묵묵히 음식을 만들던 류씨는 2017년 암 투병 후 주방에서 물러나 가족들에게 자신의 요리 기술을 지도하기 시작했고, 2020년 2월의 어느날 류씨의 딸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부친의 사망 소식을 전했습니다. 54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한 류씨에 대해 딸은 “아버지는 비록 54살밖에 살지 못하셨지만 내가 볼 때 아버지는 충분히 즐기셨고, 충분히 멋지게 사셨다"고 올리기도 했는데요.
당시 사망 소식을 접한 민진당 정계인사들은 안타까움과 위로의 말을 남기며 하나같이 민주 운동에 매진하던 그 때를 회상했습니다. 학생운동 세대 구성원 중 한 명인 선파후이(沈發惠, 1966-) 전 민진당 입법위원은 “아재적점은 당시 사회운동계, 문화계 할 것 없이 모두 모였던 곳으로 단순히 가게가 아니라 80년대부터 현재까지 타이완 이야기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아쉬워한다"며, 아재적점은 우리의 청춘”이라 남겼고, 야오원즈(姚文智, 1965-) 전 입법위원은 “타이완 사회의 권력이 해방된 1990년대 아재적점은 모두가 정보를 교환하고 감정을 토로하던 장소로, 귀까지 빨개질 정도로 술에 취하고 그 다음날이면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치열하게 보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그러면서 야오씨는 정보국 국장 재임 시절 국경없는 기자대회를 개최할 때 세계 모든 기자들을 아재적점에 데려가 이곳에서 타이완의 민주 발전 과정을 설명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재적점의 전 사장인 류젠화씨는 원래 사천요리를 하는 요리사로 타이완 음식을 하는 것은 많이 어색해 처음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다소 직설적이고 화끈한 성격에 현재 가게의 대를 잇고 있는 딸, 양이신(楊怡欣)씨와도 잦은 마찰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가게의 대를 잇고 있는 그녀는 과거에는 아버지의 성격 탓에 가게 안 분위기가 매우 격렬했지만 그녀가 사장이 된 후 가게는 제법 점잖아졌다고 자랑하기도 했는데요. 비록 가게의 분위기는 달라졌지만, 아버지가 쌓아놓은 가게의 정신적인 부분은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며 그녀는 이것을 곧 타이완의 정신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오래된 가게가 담고 있는 정신을 이어받아 아버지와는 다른 그녀만의 방식으로 현재 가게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원래 아재적점은 타이베이시 진산난루(金山南路)와 런아이루(仁愛路)가 교차하는 부근에 있었습니다. 사장이 암 투병 후 사망하자 가게는 런아이루 2단 26번지에 새 터를 잡고 다시 문을 열었지만 1년이 채 안된 2021년에 현재 자리인 바더루(八德路)로 이사했죠. 푸싱난루(復興南路)에서 바더루로 들어가는 초입에 위치한 가게의 맞은편에는 외국인들에게 유명한 린동팡 우육면집과 국민당 중앙당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엔딩곡은 아재적점의 전 사장 류진화씨가 주방에서 요리할 때 즐겨 불렀다던 ‘소오강호(笑傲江湖)’ 주제곡을 띄워드립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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