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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에 거주하는 90대 할머니들의 작은 모임

  • 2025.03.19
어반 스케쳐스 타이베이
현 타이베이중산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인 타이베이제3고등여학교를 졸업한 할머니들은 90세가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한 번씩 타이베이의 작은 공간에서 매 달 모임을 갖는다. - 사진: Rti 서승임

타이베이 중산베이루(中山北路) 2단의 한 작은 골목길. 20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90세가 넘으신 할머니들이 모입니다. 할머니들의 수다에는 중국어와 일본어가 모두 있습니다. 순간 이곳이 타이베이인지, 도쿄인지 헷갈립니다. 매 달, 한 달에 한 번씩 이곳에 모여 다과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들의 정체는 바로 현 타이베이의 명문여고 중 하나인 중산여자고등학교(中山女高)의 전신, 타이베이제3고등여학교 졸업생.

이 모임을 이끌고 있는 황빈빈(黃彬彬) 할머니는 1933년생으로 올해 92세이지만,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고 라인으로 친구를 추가해 대화를 나눌 줄 아십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젊은 세대와도 스스럼없이 소통하실 수 있는 황 할머니는 제3고등여학교를 졸업해 체육을 전공해 이후 대학에서 체육을 가르치는 교수로 계시다 퇴직하셧는데요. 농구를 잘하며 체육을 전문으로 연구했던 황 할머니는 국제 경기나 운동 관련 국제학회가 열리면 한국 서울에 와 몇 차례 교류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90세 이상의 할머니들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매 달 모일 수 있는 동력은 그들이 졸업한 학교, 제3고등여학교 출신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제3고등여학고는 일제시기 타이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대만주간신보> 시간에도 한 번 소개해드린 바 있는데요.(타이완 여성교육의 살아있는 현장, 타이베이주립제3고등여학교) 이 학교는 일제 식민 통치 시기 타이베이에 설립된 여자중학교로, 공부 잘하는 타이완 여학생들이 다니는 당대 최고의 명문학교였습니다. 타이베에 사는 학생뿐만 아니라 그 외곽, 심지어는 타이중이나 타이난에서도 이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시험을 봤을 정도니까요. 모임에 참여하신 또 다른 할머니는 당시를 회상하며, 자신은 타이베이 외곽에 살았기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며 학교 보낼 준비를 하셨다고 합니다. 기차를 타고 타이베이기차역까지 가는 데 40분, 그리고 타이베이기차역에서 학교까지 가는데 50분. 매일 등하교만 3시간 걸렸지만, 할머니는 학교 생활이 참 즐거웠다고 회상합니다. 

앞서 소개한 황빈빈 할머니가 제3고등여학교를 입학한 시기는 1945년 4월. 아직은 일제 치하에 있던 타이완이었지만, 같은 해 광복이 되고 머지 않아 중국 국민당 정부가 내려오면서 학교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라졌다고 합니다. 매 주 조회시간 일본 국가 기미가요를 부르다 어느 날 갑자기 ‘삼민주의(三民主義)’로 시작하는 중화민국국가를 불러야했는데요. 일본어 교육만 받았던 학생들은 중화민국국가의 가사를 중국어로 전혀 읽을 수 없어, 학교에서는 히라가나나 가타카나를 사용해 중국어 발음을 표기해 학생들에게 따라 읽게 가르쳤다고 회상합니다. 일본어 글자를 따라 읽으며 가사가 무슨 의미인지조차 알지 못한채 불러야만 했죠. 


황빈빈 할머니(좌)는 흰색 꽃다발을 선물 받으시고는 이내 함께 사진을 찍자며 예쁜 포즈를 취하셨다. - 사진: Rti 서승임 

현재 매 달 모임에 참석하시는 할머니들의 평균연령은 90세 초반이며, 이들이 학교를 다녔던 시기는 1940년대에서 1950년대로,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외성인인 중국국민당 정부의 통치로 전환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기에 중국어를 하실 수는 있지만, 중국어로 대화를 하다 학창시절을 떠올리다보면 이내 일본어가 자연스레 나옵니다. 일본어를 중국어보다 훨씬 수월하게 구사하십니다. 심지어는 어린 시절 즐겨부른 다양한 일본어 노래들을 가사 한 자 틀림없이 모두 기억하며 1절에서 시작해 3절까지 완창하는 실력을 뽐내기도 합니다. 

할머니들이 기억하는 일본어 노래의 레퍼토리는 꽤나 다양합니다. 유치원 시절 배웠던 동요에서부터 전시 상황에서 불렀던 군가까지. 한 할머니는 학교 학예회를 떠올리며 당시 학교 무대에서 노래에 맞춰 춤을 선보였는데, 그때 춤을 추던 노래 중 하나로 ‘중국인’을 묘사한 일본의 한 유행가를 들었습니다. 일제시기 일본인은 ’중국인’을 ‘지나인’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묘사한 노래를 유행가로 종종 만들어 부르곤 했는데요. 할머니는 자신이 치파오를 입고 작은 부채를 들고는 이 노래에 맞춰 무대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고 회상합니다. 

같은 학교에서 두 가지 ‘국어’를 배워야했던 할머니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4년 간의 학교 생활에서 그녀들은 일제 말 전시 상황에서 학교의 지시에 맞춰 행동해야 했고, 일제시기 국어였던 일본어와 중화민국의 국어인 중국어를 모두 배워야했으며, 의미도 모르는 새로운 국가를 입맞춰 불러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90세가 넘어서까지 매 달 타이베이의 한 작은 센터에 모일 수 있는 동력은 바로 자신의 꽃다운 청춘을 친구들과 함께 보낸 학교입니다. 

할머니들의 모임에는 이제 젊은이들이 하나둘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이들 중에는 현 중산여자고등학교 선생님도 있고, 일제시기 타이완을 연구하는 대학교수와 조교 있으며, 심지어 일본인 기자도 있습니다. 일본인 기자는 일본어로, 중산여자고등학교 선생님은 중국어로, 과거의 타이베이를 살았던 할머니와 현재의 타이베이를 살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 모여 중국어와 일본어를 모두 사용하며 소통합니다. 

한 할머리는 펜으로 자신의 이름을 반듯이 쓰며, 자신은 무용을 참 좋아했고, 지금도 가끔 피아노를 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황빈빈 할머니는 92세의 연세에 아직도 타이베이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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