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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y Prints! 판화를 매개로 한 타이완, 한국, 일본 작가들의 만남

  • 2024.09.25
어반 스케쳐스 타이베이
타이베이시 예술문화보급처(藝文推廣處)에서 진행중인 판화 전시 '就是版畫'에서는 8명의 타이완, 한국, 일본 판화 작가들이 총 48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 사진: 타이베이시 예술문화보급처

돌, 금속, 나무판 등의 딱딱한 소재의 판에 형상을 새긴 후 잉크나 물감을 칠해 종이나 천 등에 찍어내는 형식의 시각적 예술을 일컬어 우리는 ‘판화(版畫)'라고 하죠. 어떠한 소재에 형상을 새기느냐에 따라 목판화, 동판화, 석판화 등 여러 종류로 구분되는데, 이 중 나무판을 이용한 목판화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방법으로 그 연원은 중국에서는 7세기, 서양에서는 15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목판 기술을 이용해 글자를 찍어내거나 단색의 그림을 찍어내는 작업은 수 백년 전부터 존재했었죠. 구리판에 쇠를 이용해 홈을 파서 만드는 동판화는 목판화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돌에 홈을 파는 석판화는 18세기 이후에 출현합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기반으로 한 판화는 20세기 들어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하는데요. 

대표적인 예로, 1962년 앤디 워홀이 실크 스크린(silk screen)에 새겨 네 가지 다른 색깔의 여성을 찍어낸 작품, ‘마를린 먼로’가 있습니다. 20세기에 들어 인쇄기술이 발달하면서 홈을 파는 기술은 물론, 판화에 칠하는 잉크나 물감의 색채도 상당히 다채로워지면서 판화는 대중예술로까지 보편화되었는데요.

현재 타이베이시 송산취에 소재한 예술문화보급처(藝文推廣處)에서는 이러한 판화를 매개로 창작 활동을 하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8월 22일~9월 29일 약 한 달 간 진행하는 ‘판화(Simply Prints): 타이완, 일본, 한국 창작전' 전시에서는 타이완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작가들까지 초대해 3국의 판화 작가들이 만들어낸 작품 전시와 작가와의 회담과 같은 참여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오늘 어반스케처스타이베이 시간에서는 이번주면 마무리 되는 ‘바로 판화' 전시에 대해 청취자님들께 소개하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B5 용지 크기의 작은 작품부터 전지만한 큰 규모의 작품까지 다양한 사이즈의 작품이 벽에 걸려있습니다. 사이즈뿐만이 아닙니다.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색감, 질감, 디자인 등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진 작품이 관객들에게 흥미를 자극합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유리 꽃병에 담긴 꽃을 묘사한 작품은 일본 작가 히시다 토시코(菱田俊子)의 작품으로, 그녀는 유리 소재가 빛의 방향에 따라 색과 그림자 등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양상을 판화를 통해 묘사합니다. 빛의 그림자가 유리를 꿰뚫는 그 찰나를 실크스크린 판화로 표현하는 히시다 씨는 작품 작업을 하는 그 순간의 고요한 일상에서 공기와 빛의 흐름을 포착하는 섬세한 아름다움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녀의 작품 <수선화(水仙)>(2024)는 각진 유리 화병 안에 꽂힌 수선화 두 송이를 묘사했는데요. 흰색 꽃잎과 노오란 수술을 가진 예쁜 수선화 꽃도 꽃이지만, 그 아래로 각진 유리 화병이 정면에서 빛을 받으면서 드러내는 여러 각도의 그림자가 보다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매우 단순하고 명료한 색감과 동시에 유리 화병이 빛과 만나 빚어내는 순간의 찬란하고 영롱한 느낌을 묘사한 히시다 작가의 의도와 안목이 직접적으로 와닿는 작품입니다. 

히시다 토시코 <수선화(水仙)>(2024)  

여기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이미지와 질감의 작품이 보입니다. 4~5가지 이상의 색깔을 사용해 판화를 완성한 히시다 토시코의 작품과 달리, 이 작품은 흙과 백, 단 두 색만 가진 모노크롬(monochrome)이 매력적입니다. 여기에 바다에 둥실둥실 떠있는 여러 개의 작은 섬과 그 위 상공을 날아다니는 한 마리의 갈매기가 작품을 전반적으로 미니멀하면서도 한국적인 느낌을 자아내는데요. 마치 다도해 남해안을 묘사한 것 같은 느낌을 가져다줍니다. 2022년에 완성된 <제주도(濟州島)>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한국 김동인(金東仁) 작가의 판화입니다. 작가의 이름과 작품의 제목을 보기도 전에 ‘이것은 한국 작품일 것이다'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는 것은 왠지 모를 익숙함과 민족성이 작품에 묻어 있다는 것인데요. 그 요소가 어디서 나왔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마도 조선시대 판화에서부터 자주 봐온 산이나 산맥의 질감을 표현하는 기법이 김동인 작가가 표현한 섬에 묻어나와서 그러지않나 합니다. 바다와 하늘은 특정한 묘사 없이 공백입니다. 이 둘을 하나는 바다로, 다른 하나는 하늘로 직감할 수 있는 것은 둘 사이를 가르는 몇 개의 섬들뿐. 이런 여백의 미 또한 한국 작가 특유의 표현 방법일지 모르겠습니다. 울산 출신의 김동인 작가는 이번 타이베이 전시에서 섬 시리즈를 소개했는데요. 섬이 가진 고요함과 여유를 마치 한 편의 시처럼 가져다줍니다. 바다 앞에서 느꼈던 자신 만의 고유한 경험을 우리에게 다시금 상기시켜주면서요.    

김동인 <제주도(濟州島)>(2022)

히시다 토시코와 김동인 작가가 식별가능한 오브제를 판화를 통해 묘사했다면, 타이완의 김현진(金炫辰) 작가는 보다 추상적인 세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비슷하게 생긴 작은 모형이 규칙적인듯 비규칙적으로 작품 위에 반복적으로 찍혀있고, 그 중간 어딘가에는 반복적인 모형과는 다른 질감과 크기의 모형이 드문드문 있습니다. 작가의 설명을 보지 않고서는 무엇을 묘사했는지 직감적으로 포착하기 어렵죠. 한국 출생으로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타이완으로 건너와 활동하고 있는 김현진 작가는 ‘생명·존재’를 주제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여행하고 관찰하며 생각해왔다고 합니다. 각각의 생명은 독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고, 각각의 존재는 소중하며 서로 의지하고 있음을 목판 소재와 색겹침을 반복해 표현했다는데요. 작가의 설명을 이해한 뒤 작품을 다시 보니, 작품 (2022)에서 표현된 각각의 모형이 새와 나뭇잎, 나무, 인간, 동물 등 자연 속 생명을 소재로 했다는 것이 다시금 눈에 들어옵니다. 

앗! 귀여운 인간 모양의 캐릭터가 거꾸로 매달려있기도, 똑바로 서서 자신을 뽐내고 있기도 합니다. 청색, 녹색, 분홍색, 이렇게 세 가지 색으로 구성된 작은 마을 안에서 말이죠. 타이완 작가 랴오멍링(廖孟鈴)의 작품, (2024)입니다. 새도 있고, 물고기도 있고, 산과 나무, 그리고 작은 마을도 있는 배경 위로 인간 캐릭터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왠지 작가의 이상향, 꿈, 환상을 묘사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 캐릭터는 작가 본인이고요. 랴오멍링  작가는 아크릴판을 이용해 자신의 감정과 사색의 서사를 판화로 펼쳐냈는데요. 그 결과는 낯설기보다는 친숙하고, 진지함 대신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하는 특유의 매력이 있습니다.   

랴오멍링 <Floating Mind>(2024) 

종이에 직접 그리는 시각예술 작품과는 달리 판화 고유만의 질감은 왠지 모르게 우리에게 더 친숙한 느낌을 전해주는데요. 8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삶과 일상에서 관찰한 오브제를 포착해 그것을 세밀하게 표현하거나, 그 오브제에서 받은 영감을 나만의 내러티브로 소재에 새기고, 종이에 찍어내는 방식이 상당히 흥미로웠던 전시입니다. 

청취자님들께서 오늘 Rti 한국어 방송을 무사히 청취하신 뒤 라디오에서 귀를 떼고 처음 시선을 둔 곳은 어디실까요? 청취자님들의 눈길이 닫는 그 무엇이 여러분의 일상이자 삶 그 자체가 아닐런지요. 그 오브제가 여러분들에게 가져다주는 색다른 느낌이 있지는 않을지 한 번즘 생각해보는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판화에 흥미가 생기신다면, 원주에 소재한 뮤지엄 산(Museum SAN)과 같은 박물관이나 살고 계신 가까운 지역 문화센터 등에도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판화공방이 있으니 관심 가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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