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된 자전거 한 대가 집안의 길함을 기원하는 춘련이 양쪽으로 붙여진 대문 앞에 덩그러니 서있습니다. 나무로 된 대문도, 그 앞에 놓인 자전거도 갈색 톤으로, 오래된 한 시골집 대문 앞을 연상시킵니다. 그렇게 춘련이 붙은 대문 앞에 놓인 오래된 한 대의 자전거 그림 여러 폭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타이베이 시민들에게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어릴 적 자주 타던 자전거에 대한 추억일 수도 있구요. 누군가에게는 지금은 돌아가신 조부모님에 대한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바쁜 도심이 아닌 시골 논두렁을 지나다녔던 몇 안 되는 그때의 경험을 되살리기도 합니다.
타이베이 아레나 역 3번 출구 뒤에 소재한 타이베이 문예퇴광처에는 타이완의 수채화 대가 셰밍창(謝明錩, 1955-) 씨의 작품 70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서양화에서 수채물감, 즉 물을 사용해 색을 입히는 물감을 주재료로 사용해 종이에 다채로운 색채감을 표현하는 수채화는 일반인들도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입문했을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장르의 그림이죠. 미술에는 그닥 소질이 없던 저는 어릴 적 미술 시간이나 그림 그리기 대회가 다가오면 스트레스가 먼저 쌓이기 일수였는데요. 그 이유는 아무리 내가 상상하는 멋진 그림을 표현하고 싶어도 수채 물감이 짷여진 팔레트만 보면 어떤색을 어떻게 배합해야 하는지 늘 난감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붓에 물을 조금이라도 많이 묻히는 날엔 도화지가 흠뻑 젖어 색칠은 커녕 도화지를 그늘진 곳에 말리며 회복하는 것부터가 일이었죠. 수채화는 여러 물감의 색채를 덧칠할 수 있는 유화와 달리, 미세한 물의 농도 조절이 요구되는 상당히 세밀한 작업이 필요하다는 걸 발견하고는 내가 구현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어서인지 자연스레 포기하게 되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수채화는 정말이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었다고 해서 결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장르의 미술입니다. 오히려 색을 덧대어 바를 수 있는 유화가 저같은 초보자에게는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죠.
1955년생의 타이완 유명 수채화가인 셰밍창 씨의 작품은 간결하면서 다채롭습니다. 주제적으로는 상당히 간결합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자전거 외에도 한 과수원에 덩그렇게 달린 포도, 복숭아, 혹은 산 속이나 들판에 활짝 피어있은 꽃 등 주제가 간결하고 명확합니다. 풍경도 있습니다. 사찰 앞에 놓인 작은 사자상, 시골 집 담벼락 아래에 무심하게 놓여있는 난로, 작은 골목길을 올라가는 계단이나 오래된 가게 앞에 툭 걸쳐 앉아 있는 사람들도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오브제입니다.
곧 일흔의 나이를 앞두고 있는 화가 셰밍창 씨는 그의 나이 20대였던 1970년대부터 창작활동을 시작했는데요. 27살의 나이로 당시 타이완 국립문예재단으로부터 특별상을 받으면서 그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는 지금까지 무려 20여 차례의 전시와 20여 권의 책을 저술했을 만큼, 타이완 수채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나이 50대, 셰밍창 씨는 타이완 향토미술을 대표하는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타이완에서는 특정 예술을 표현할 때 ‘향토’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타이완의 지역 풍토와 정서를 충실히 반영한 예술을 일컬어 향토예술이라고 표현합니다. 1970-90년대 타이완의 대표적인 향토미술 화가였던 셰밍창 씨의 작품에서 우리는 작은 소품부터 과일, 사람, 풍경 등 타이완 전국 방방곡곡에 위치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 하나 하나에서 꼼꼼하고 섬세한 붓질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타이완 시골의 한 나무 대문도 그의 손을 거치면 섬세한 빛과 낡은 나무의 결을 세밀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기분좋은 미소를 띄게 하는 행복감도 그의 작품이 갖고 있는 또 다른 특징 중 하나입니다. 탱글탱글한 포도송이 한 알, 한 알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타이완의 포도가 주는 싱그러움과 깨끗함을 고스란히 느끼게 됩니다.
셰밍창 씨가 그리는 타이완의 일상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그 안에 사랑과 행복, 애정이 자리합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타이완 본도를 진심으로 아끼고 애정하는 마음이 없다면 결코 구현되지 않을 그런 따뜻함이 그의 작품에 묻어있습니다.
그의 작품 70점이 전시된 타이베이문예퇴광처 한 켠에는 그가 사용했던 수채물감 통들이 높게 그리고 넓게 쌓여있습니다. 코발트 블루, 인디언 핑크, 블랙 등 영어로 색명이 적힌 손가락 크기의 작은 물감 통들은 한 개의 예외도 없이 꾹꾹 짜여져 지금은 꼬깃꼬깃한 모양을 한 채 놓여져 있습니다. 수 백, 아니 수 천 개의 짷인 물감은 팔레트를 거쳐 셰밍창 씨의 손을 거쳐 도화지에 새롭게 탄생했겠지요?
청취자 여러분의 인상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이미지 하면 어떤 것이 있나요? 오늘 아침에 먹은 배추김치 한 접시? 지난 주말에 집 주변을 산책하면서 본 장미꽃? 아니면 아주 어릴 적 친구들과 뛰어놀던 풍경이나 나의 첫 해외 여행지? 어떤 이미지라도 좋습니다. 그것들이 나의 기억과 손을 거쳐 그림으로, 글로, 아니면 이야기로 표현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런 결과문들이 하나하나 켜켜이 쌓인다면 분명 지금 라디오를 듣고 계신 모든 분들도 작가입니다.
인생에서 여러분이 직접 만들어간 작품이 있다면 사연을 통해 저희에게 자랑해주세요. 여러분의 머리와 손을 거쳐간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좋습니다.
엔딩곡으로는 타이완어 가사로 된 왕스셴(王識賢)의 ‘자전거(腳踏車)’를 띄워드립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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