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지하철 노선 중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레드라인. 이 레드라인에는 타이베이시 신이취에 있는 샹산역(象山, R02)에서 시작해 북쪽 끝 신베이시 단수이역(淡水, R28)까지 총 27개의 역이 있는데요. 타이베이 지하철의 모든 역은 자신만의 고유한 번호가 있는데요. 레드라인의 경우 역이 북쪽에 위치할 수록 역 고유번호의 숫자가 커집니다. 가장 북쪽에 있는 단수이역이 R28번이죠. 오늘 <어반 스케처스 타이베이>에서 소개해드릴 장소는 바로 이 레드라인의 25번째 역인 관두역(關渡, R25)입니다. 타이베이 시내에서는 조금 멀리 떨어진 관두역은 타이베이시 베이터우 구(北投區)에 위치해있는데요. 베이터우는 한국인들에게도 온천이 유명하기로 제법 알려져 있지요? 이 관두역 주변에는 타이베이의 유명한 대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국립타이베이예술대학(國立臺北藝術大學)인데요.
국립타이베이예술대학(일명, 베이이다北藝大)은 타이완 전국을 통틀어 가장 유명하고 실력을 자랑하는 예술대학입니다. 한국의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같이 다른 대학교와 입학제도를 다르게 해 단독으로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어 경쟁률도 매우 치열한대요. 캠퍼스에는 연극, 무용, 음악, 영화, 미술 등 각종 예술을 배우고 발휘할 수 있는 장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학교 캠퍼스는 타이베이 지하철 레드라인의 25번째 역인 관두역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위치해있는데요. 다툰산(大屯山) 기슭에 위치해 있어 오르막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지리적 특성상 햇빛이 뜨거운 여름에는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대신 지하철역에서 캠퍼스로 향하는 버스가 몇 대 있어 버스를 이용하면 보다 편리하게 도착할 수 있죠.
어제(26일) 이곳 국립타이베이예술대학 내 음악학과에서는 중요한 음악 행사가 열렸습니다. 바로 인도네시아 발리의 전통음악인 가믈란 연주입니다. 발리 가믈란 음악. 왠지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어반 스케처스 타이베이> 지난 4월 26일 방송에서 ‘타이베이 도심에 울려퍼지는 인도네시아 발리 가믈란 음악’이란 제목으로 청취자분들께 소개해드린 적이 한 번 있었죠.
오후 2시. 아직은 햇볓이 뜨거워 한낮에는 여전히 30도 안팎인 9월 말 타이베이 날씨가 무서웠던 저는 관두역에서 버스를 타고 산기슭에 위치해 있는 캠퍼스로 향했습니다. 덜컹거리는 미니 버스를 타고 나무가 우거진 오르막길을 올라갑니다. 그렇게 한 10분즘 달렸을까요. 공연이 열리는 장소 바로 옆에 있는 캠퍼스 카페(藝大咖啡)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캠퍼스 주변을 둘러보다 놀라운 광경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타이베이 시내 전경이 한 눈에 펼쳐지는 것입니다. 제 시선이 닿는대로 타이베이 시내가 파노라마처럼 제 눈속에 가득 담깁니다. 도심에 비해 비교적 높은 고도에 위치한 이곳 국립타이베이예술대학 캠퍼스에서만 볼 수 있는 환상의 뷰죠. 아름다운 전경을 뒤로하고 발리 가믈란 공연이 열린다는 장소로 향했습니다.
공연 장소는 수중무대였습니다.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10평 남짓한 작은 무대 앞으로는 연못이 있고, 그 연못에는 크고작은 연잎들이 수를 놓고 있습니다. 별도의 관중석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연못 주변으로 너댓개 놓여있는 작은 벤치만 있을 따름입니다. 이번 공연을 준비한 국립타이베이예술대학 리징후이(李婧慧) 교수는 관중석을 일부러 두지 않았다며, “이곳 수중무대는 그냥 이렇게 자연스럽게 공연을 볼 사람은 벤치에 앉아서 보고, 벤치 뒤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은 지나갈 수 있도록 한다”고 말합니다.
인도네시아 발리 가믈란 음악은 드럼의 리드로 여러 대의 건반악기와 타악기가 하나의 유닛이 되어 연주하기 때문에 그 소리가 꽤 우렁찹니다. 그래서 실내보다는 야외가 훨씬 어울리죠. 실제로 발리에서 가믈란 음악을 연주하는 장소들을 보면 모두 야외입니다. 각종 행사가 열리는 사원 앞, 마을 축제가 열리는 축제의 장, 학교에서 가믈란을 연습하는 학생들도 사방이 뚤린 채 네 개의 기둥만 있는 건물에서 밖을 향해 연주합니다. 인위적이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공간인 국립타이베이예술대학 수중무대는 발리 가믈란 음악을 연주하기에 너무나도 적합한 곳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는 오후 5시가 되자, 매섭게 내리찌던 태양도 슬슬 기울어갑니다. 이번 공연에는 발리에서 직접 건너온 두 분의 선생님이 타이완 학생들과 함께 출현했는데요. 구스티 푸투 수다르타(Gusti Putu Sudarta) 박사와 니 푸투 하르티니(Ni Putu Hartini) 선생님의 드럼 반주와 함께 학생들은 가믈란의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가믈란 건반악기가 내는 맑고 높은 소리로 선율이 진행하다가 가끔 드럼이 ‘파박’하며 기존 리듬과는 보다 빠르고 강한 리듬으로 다른 악기들에게 신호를 줍니다. 그러면 천천히 선율을 연주하던 건반악기들은 드럼소리를 듣고 이내 태세를 전환해 드럼 리듬과 함께 빠르고 보다 센 소리고 선율을 연주하는데요. 천천히 진행하다 드럼의 신호와 함께 빠르고 강하게 돌변하는 선율의 변화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여기에 안무까지 곁들여지면 그 벅참과 즐거움은 배가 됩니다. 발리 가믈란 음악은 드러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드럼은 앞서 설명했다시피 다른 악기들에게 빠르기와 연주하는 강세를 미리 알려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여기에 발리 음악 특유의 리듬감을 멋드러지게 표현합니다. 이 드럼의 경쾌한 리듬에 맞춰 안무가의 동작과 눈빛도 아주 빠르고 역동적이게 전개되는데요. 천천히 잔잔하게 흘러가다 갑자기 태세를 전환하며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안무가의 동작은 가믈란 음악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총 6 곡의 레퍼토리를 선보인 이번 공연에는 발리 가믈란 전통음악과 더불어 타이완 작곡가 류시엔이(廖憲一)가 가믈란과 피아노를 함께 사용해 작곡한 새로운 창작음악도 있었습니다. 그가 작곡한 음악을 가믈란 악기로 듣다 보니 어딘가 익숙한 선율이 들려오는 것 같은데요. 알고보니 작곡가 류시엔이는 가톨릭으로 그는 타이완에서 유명한 한 가톨릭 성가를 모티브로 가믈란과 함께 연주할 수 있는 곡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도도 상당히 색다르게 느껴집니다.
지난 5월에 이어 9월에도 타이베이에는 인도네시아 발리 가믈란 음악이 울려퍼졌습니다. 이번 공연을 개최한 국립타이베이예술대학은 1985년부터 타이완에서 발리 가믈란을 가르쳤던 학교입니다. 당시 미국에 있던 한궈황(韓國鐄) 교수를 객원교수로 초빙해 타이완 최초로 발리 가믈란 악기를 구입했고, 1993년에는 센트럴 자바의 가믈란 악기 세트도 구입해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가믈란 음악을 가르치고 전수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인도네시아 전통음악을 사랑하고 40년 가까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국립타이베이예술대학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이 돋보이는 공연이었습니다.
석양이 비추는 수중공원에 둘러 앉아 영롱하면서도 역동적인 발리 가믈란 음악을 듣고 나니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버스 대신 두 발로 길을 걸으며 캠퍼스를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공간에서 음악이 주는 울림을 조금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출연자
구스티 푸투 수다르타(Gusti Putu Sudarta) 박사
인도네시아 발리섬 베두루(Bedulu) 마을의 예술가 집안 출신
인도네시아 수가카르타 예술 대학 박사 출신
가믈란 음악과 창작, 안무에도 모두 능통
니 푸투 하르티니(Ni Putu Hartini)
인도네시아 발리섬 기얀야르현 출신 예술가
인도네시아 덴파사르 예술 대학 학사 및 석사 출신
발리 가믈란 음악 전공
류시엔이(廖憲一)
타이완 작곡가,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
국립타이베이예술대학, 국립대만사범대학 작곡과 석사 졸업
‘포르모사 오르간 연주자’와 ‘신주 리코더 합주단’에서 작곡과 편곡자로 활동
가톨릭 타이베이성가당에서 미사 오르간 연주와 음악감독을 맡고 있음
국립타이베이예술대학 가믈란 악단
국립타이베이예술대학은 1985년 당시 미국에 있던 한궈황(韓國鐄) 교수를 객원교수로 초빙해 타이완 최초로 가믈란을 구입하면서 가믈란 음악 지도하기 시작함. 1993년 한 교수의 지도와 기획으로 두 번째 센트럴 자바 가믈란을 구입. 현재에는 리징후이(李婧慧)와 량정이(梁正一) 교수가 가믈란 수업을 맡고 있음.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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