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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吾之道)을 지키다,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 가 도쿠라이 회고전

  • 2023.07.19
어반 스케쳐스 타이베이
타이완 출생 일본 화가 가 도쿠라이(何德來, 허더라이)는 1940년대 신구조사(新構造社) 활동을 시작으로 야외 도처에서 스케치하는 활동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그는 노년에 이르러서도 야외 스케치를 멈추지 않았다. - 사진: Rti 서승임 (TFAM 2층 전시실 촬영)

“아홉 살 때인 메이지(明治) 45년 3월, 타이완의 산촌을 출발하여 검은 함선(시나노마루 信濃丸)을 타고 고베항에 상륙하여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유학하였다. 세월이 유유히 흘러 벌써 57살, 후지산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정직하다. 나는 가르침과 훈련을 받아 현재 운이 좋게도 그림을 그릴 기회가 있다. 비록 아직 성숙하지는 않았지만, 한 폭의 모든 것이 나의 마음의 일기이다.” 1970년 9월 도쿄의 한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게 된 화가 가 도쿠라이(何德來, Ka Tokurai)가 남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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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지하철역 레드라인인 위엔산 역 근처에는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台北市立美術館, Taipei Fine Art Museum)이 있습니다. 1983년 설립된 이 미술관은 타이완에서 유명한 작품 전시가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곳입니다. 1994년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은 1983년 개관 이래 최대 규모의 단일 작가 작품을 기증받았습니다. 타이완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에서 자란 화가, 가 도쿠라이, 중국어로는 허더라이(何德來, 1904-1986)의 작품이었습니다. 조카 허텅징(何騰鯨)은 1994년 허더라이의 유화 작품 100여 점을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에 기증했습니다. 미술관은 그 해 마침 1904년생인 허더라이의 탄생 90주년을 맞아 ‘허더라이 90세 기념전’을 열었고, 그렇게 그의 작품이 처음으로 타이완에 공개됨으로써 허더라이와 타이완 미술계 사이의 느슨했던 관계가 다시 조여졌다고 합니다. 

허더라이의 첫 타이완 전시가 열린지 30년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은 올해 7월 8일 ‘나의 길(吾之道)’이라는 주제로 허더라이의 회고전을 열었습니다. 타이완인인지, 일본인인지 전시회의 제목과 소개글만 봐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의 출신은 모호했지만 그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했습니다. 그의 생애를 간단히 소개하면, 1904년 타이완 신주에서 태어난 허더라이는 어린 나이에 신주의 대지주의 양자로 입양됩니다. 일찍이 일본에 건너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허더라이는 타이완으로 돌아와 중학교를 마치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인 타이완 신주로 다시 돌아오죠. 이렇게 타이완 신주와 일본 도쿄를 왔다갔다 하던 그의 삶은 2차세계대전 이후 타이완의 독립과 함께 중단됩니다. 타이완 미술계와의 연계가 차단된 것이죠. 그렇게 그는 1986년 사망할 때까지 다시는 고향인 타이완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1994년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의 첫 허더라이 전시는 각별했던 것입니다. 허더라이의 작품 활동이 타이완 현대미술 계보 안에서 재해석되고 연구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어반스케처스 타이베이>에서는 현재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 2층에서 전시중인 카 도쿠라이, 허더라이의 작품 중 1950년대 작품을 선정해 소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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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까지 허더라이의 작품은 인물화나 풍경화 중심의 유화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1942년 허더라이가 신구조사(新構造社)라는 일본의 한 회화 단체에 가입한 것은  그의 창작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평가되는데요. 왜냐하면 이 단체의 사람들과 토론회, 야외사생에 적극 참여하여 일본의 이곳저곳을 답방한 것이 이후 그의 유화 풍경화 창작에서 중요한 소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그의 작품관이 1950년대에 들어서자 커다란 변화가 생겼습니다. 1959년에 완성한 작품 <7곡의 노래(七首個)>(1959)는 노란색을 베이스 컬러로 한 작품으로, 작품의 중심에는 한자 ‘날 생(生)’ 자가 굵고 힘찬 필체로 적혀있고, 날 생 자를 중심으로 동그란 원을 그리며 7 소절의 시가 적혀있습니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진지한 인간으로서 오늘에도 세상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좋은 일을 해야한다. 사람은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 

자고로 사람은 낙엽처럼 지고 석양처럼 반드시 죽는다. 

나는 지구가 유일무이하다고 생각한다. 지구에서 갈라진 많은 나라들은 결국 하나의 것으로 돌아간다.

태양, 달, 별, 지구의 절대적 존재와 그 절대적 교감은 인간의 지성이 느끼는 우주이자 생명의 기원이다. 

태양과 달과 별 사이를 이동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양은 동양의 우수함이 있다. 서구는 서구의 장점이 있다. 서로 존중해야 한다.”  

작품 <7곡의 노래>(1959) 중에서 

마치 샛노란 태양 주변으로 여러 겹의 아우라를 상징하는 듯한 이 작품에서 우리는 풍경화, 인물화 중심에서 자신이 직접 쓴 시와 글자를 작품에 그려넣기 시작하는 새로운 풍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작품이 완성된 1959년은 1904년생인 작가가 지천명인 50의 나이를 지나 육십갑자가 다시 돌아오는 환갑을 맞이하기 전이죠. 작가는 주변에서 자신이 시각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실물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과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와 진리를 진지하게 숙고할 때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7곡의 노래(七首歌)>(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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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노래>와 같은 해에 완성된 작품 <부모>(1959)에서도 유사한 화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허더라이는 사람 인(人) 자를 가장 큰 필체로 중심에 그려넣고 그 위로 삼각형 구도를 살려 아비 부(父), 어미 모(母), 친할 친(親) 자를 그려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의 시를 일본어로 한 글 자 한 글 자 그려넣었죠. 

“인간의 행복은 과학이 아니다. 인간 세상은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한다고 ‘사람(人)’이라는 글자가 이렇게 알려준다. ‘친(親)’이란 글자는 땅 위에 서있는 나무(立木)를 보고 만들어진 것으로, 꽃과 열매는 뿌리에 의거해 잉태하고 자란다. 산은 높고 강물은 흐르며 꽃은 아름답다. 오늘도 나는 이렇게나 아름다운 천지에 살고 있다. ‘아버지(父)’란 글자는 아이를 높이 밀어 올리는 아버지의 두 손과 마음이고, ‘어머니(母)'란 글자는 배에서 아이를 기르고 출산해 키우는 자태이다. 가르침은 마음에 있다.” 

작품 <부모>(1959) 중에서

<7곡의 노래>와 <부모>에서 엿볼 수 있듯이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전반까지는 허더라이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웅대한 주제인 태양, 달, 별을 완성한 시기이다. 같은 시기의 작품에서 짙은 남색 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을 묘사한 그의 작품은 상당히 단순해서 오히려 원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요. 자신이 유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인 회화를 통해 지구와 우주를 표현한 그의 작품 하나하나는 관객들을 사색의 길로 안내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우주라는 광활하고 허망한 공간 안에 자리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주, 천문이라는 웅대한 회화 주제를 통해 허더라이는 오히려 개인의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깨달음은 부모와 효로 귀결됩니다. 

<부모(父母)>(1959)

허더라이의 1945년 이전 작품과 일제시기 타이완과 일본을 오가며 겪었던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다음 주 <대만주간신보> 시간에 다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엔딩곡으로는 1970년 발매된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 <렛잇비(Let It Be)>에 수록된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Across the Universe)'를 띄워드립니다.  “웃음소리와 인생의 그늘이 나를 부추기고 초대하면서 나의 열린 시야로 울려퍼진다. 무한하고 끝없는 사랑이 백만개의 태양처럼 내 주위를 비추며 계속 나를 부른다. 저 우주 너머로” 존 레논이 쓴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가사 한 구절은 허더라이가 남긴 한 줄의 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태양이 비추고, 별과 달이 미소 짓는 곳, 그곳이 내 마음의 고향이다." (日輪の輝くところ 月星の微笑むところ 心のふるさと)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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