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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식 '따뜻한' 도시락(便當) 문화의 유래

  • 2025.02.11
대만주간신보
타이완식 도시락을 설명한 도안. - 사진: 圖文不符

‘편할 편(便, 비엔)’ 자에 ‘마땅 당(當, 당)’ 자가 만난 ‘비엔당(便當)’은 타이완에서 살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점심 시간이 다가오면 동료들 사이에서 “‘비엔당’ 시켰어?” “무슨 ‘비엔당’ 주문했어?” 라고 종종 묻죠. 타이완의 ‘비엔당’은 바로 도시락입니다. 외식문화가 발달한 타이완에서 점심시간 주문해서 먹는 ‘비엔당’은 그 종류도 상당히 다양한데요. 밥과 육류 및 어류를 메인으로 하고 서너가지 반찬이 곁들여져 있는 타이완식 도시락은 직장에서는 물론, 집에서도 심지어 장거리를 이동하는 버스나 기차 안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식 문화입니다.  

현재 타이완 사람들이 도시락을 가리키며 사용하는 단어, ‘비엔당(便當)’은 일본어에서 유래한 표현입니다. ‘便當’이라는 단어가 타이완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일본이 타이완을 지배하던 시기와 관련이 있죠. 오늘 ‘대만주간신보’ 시간에서는 현재 타이완 식문화의 일부가 된 ‘비엔당’ 도시락 문화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일본 식민 시기에는 도시락을 ‘辨當’ 또는 ‘弁當’으로 표기했으며, 이는 모두 일본식 한자어다. 당시 타이완 사람들은 샘플을 뜻하는 ‘견본(見本)’, 은행 계좌를 뜻하는 ‘구좌(口座)’, 병원에서 맞는 '주사(注射)’ 등 일본식 한자어를 그대로 차용하여 민난어로 발음했다. 현재 타이완의 표준어인 만다린 중국어는 당시 아직 사용하지 않았다. 도시락을 뜻하는 ‘비엔당(便當)’ 역시 그러한 예 중 하나였다. 메이지 44년인 1911년 타이난의 설탕 정제소 직원들이 타이완인과 일본인이 함께 안핑(安平) 해변으로 소풍을 가서 해변 운동회를 열었는데, 당시 신문 보도에 따르면 “사장과 직원들이 모두 도시락(便當)을 준비하여 점심으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도시락’이 처음 등장한 것은 서기 6세기~8세기 경 교토로 알려져있다. 당시 일본의 농부나 사냥꾼들은 모두 점심을 싸서 외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는 아직 ‘도시락’의 개념이 없었고, 외출용 음식을 ‘도시락(便當)’ 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휴대하기 편리하다라는 뜻의 ‘便當’라는 단어가 남송에서 일본으로 전해졌고 일본 사람들은 이러한 류의 음식을 도시락이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16-17세기가 되자 도시락은 서민 문화에서 일본의 상류 문화로 고급화된다. 고급 목제 옻칠 상자에 담긴 도시락은 야외에서 꽃을 감상하거나 연극을 보고 야외 다과회를 열때 챙겨가는 문화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일본에서 철도가 개통하게 된 19세기 말, 철도 도시락 문화가 생겼다. 

도시락 중 특별히 기차 역에서 판매하는 도시락을 일본에서는 ‘에키벤(駅弁)’이라 한다. 여기서 ‘에키(駅)’는 역을 뜻하고, ‘벤(弁)’은 도시락을 의미하는 ‘벤토(弁當)’에서 따온 것이다. 일본 최초의 에키벤은 메이지 18년인 1885년 도치기현(栃木県)의 우츠노미야역(宇都宮駅)에서 판매되었다고 알려져있다. 당시 도쿄 우에노(上野)에서 우쓰노미야까지 철도가 개통되었고, 철도 회사가 역 앞 한 여관에 의뢰하여 도시락을 제작, 판매하게 했다. 도시락의 형태는 매우 간단했다. 대나무 조각에 주먹밥 두 개와 단무지를 싸서 팔았다. 가격은 5전으로, 같은 시기에 장어덮밥이 10전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결코 저렴한 편은 아니었다. 현재도 우츠노미야역에서는 ‘에키벤 발상지’를 강조하는 포장지가 사용되고 있다.

철도 도시락이 타이완에서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일제 초기 타이완에 설립된 각 철도역에서 판매된 도시락의 메뉴에 대한 신문 기록이 일부 남아 있다. 1914년(다이쇼 3년), 당시 신문에서는 타오위안(桃園), 먀오리(苗栗), 신주(新竹), 타이중(台中) 네 개 역의 도시락을 비교 평가하며 그 내용을 상세히 기록했다. 타오위안역 도시락을 기준으로 보면, 일본산 쌀로 지은 밥에 반찬으로는 삼치 튀김 한 조각, 소금구이한 참치 한 조각, 죽순 튀김 두 조각, 삶은 콩 약간, 계란말이 한 개, 절인 무 두 조각이 포함되어 있었다. 타이중역 도시락은 약간 달랐다. 삶은 요리 한 조각, 삶은 완두콩류, 어묵 세 조각, 곤약 두 조각, 연근과 절인 무 각 두 조각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당시 타이완의 철도 도시락은 완전히 일본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 철도 도시락은 열차를 타고 내리는 승강장에서 판매되었다. 1910년대 가오슝역(당시에는 다카오[打狗]역이라고 불렀다)에서는 역 주변 ‘조우테이(滋養亭)’라는 일본식 요릿집에서 만든 철도 도시락을 공급했다. 또 다른 철도 도시락은 기차역 근처의 여관과 식당에서도 판매되었는데, 예를 들어 신주(新竹)역 앞의 ‘츠카사케야(塚酒屋) 여관’은 자신들이 철도 도시락의 ‘원조(鼻祖)’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도시락이 신주 지역에서 최초인지, 타이완 전체에서 최초인지는 확인은 불가능하다. 한편, 당시 타이베이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서양식 호텔이었던 ‘철도호텔(鐵道旅館)’은 일본식이 아닌 ‘서양식’ 도시락을 만들어 기차역까지 배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기차역에서 파는 ‘서양식’ 도시락은 어떤 형태였을까? 식민시기, 타이완의 1세대 미술가들이 존경했던 일본 화가 이시카와 긴이치로(石川欽一郎, 1871-1945)의 작품을 통해 동시대 유럽의 철도 도시락을 엿볼 수 있다. 이시카와는 1920년대 유럽을 여행하며 도시락을 파는 장면을 그린 바 있다. 그의 그림 속 도시락 장수는 둥근 쟁반을 등에 짊어지고 가슴 앞에는 다양한 음식을 담고 있다. 이시카와는 세계 여러 나라의 철도 도시락을 비교하며, 이탈리아의 도시락이 가장 저렴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이탈리아 철도 도시락에는 둥근 빵 두 개, 반숙 달걀 두 개, 큰 소시지 세 개, 치즈 한 장, 과일, 그리고 작은 병에 든 포도주가 포함되어 있었다.

1930년대 후반,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타이완 사회도 크게 변화하면서, 타이완의 철도 도시락에도 변화가 있었다. 1938년 7월 7일, 루거우차오(盧溝橋) 사건 1주년을 맞아 타이완 철도역에서는 일명 ‘애국 도시락(愛國辨當)’이 일괄적으로 출시되었다. 평소 승강장에서 판매되던 일반 도시락이나 볶음면 등의 판매가 금지되었으며, 도시락에는 오로지 주먹밥, 매실절임, 단무지만 담을 수 있도록 규정되었다.

일본의 도시락은 대부분 차갑게 제공되었다. 식민시기 50년간 일본식 도시락 식문화에 익숙해진 타이완 사람들도 차가운 도시락을 먹는 것에 점차 익숙해졌다. 이러한 차가운 도시락 식문화는 중국 본토에서 넘어 온 외성인의 식문화와 크게 달랐던 것 같다. 1945년 8월 중국에서 타이완으로 건너 온 전 공업위원회 화학공학조(化工組) 조장, 옌옌춘(嚴演存) 씨는 자전서인 <예전의 타이완(早年之台灣)>이란 책에서 “외성인의 생활 습관은 본성인과 다소 달랐는데, 예를 들면 본성인은 점심에 도시락을 먹었지만, 외성인은 반드시 따뜻한 밥을 먹어야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장쑤성(江蘇省)이 본적이고, 베이징에서 태어난 작가 장톈신(張天心, 1924-2003)은 <도시락의 사랑(便當之戀)>이라는 글에서 “타이완에 오기 전에는 도시락을 먹어본 적도 없고, ‘便當(비엔당)’이라는 단어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적었다. 1949년 타이완으로 건너 온 그가 처음으로 도시락이란 것을 먹은 것은 1950년대, 타이완의 기차 안에서였다. 도시락을 맛본 그는 “타이완산 쌀인 ‘봉래미(蓬萊米, 펑라이미) 밥이 그렇게 부드럽고 향기로운 줄 몰랐고, 튀긴 고기나 생선이 그렇게 바삭바삭하고 신선할 줄 몰랐다”며 감탄했다.

이처럼 일제 식민 시기 일본식 도시락 문화와 1949년 이후 타이완에 정착한 외성인의 서로 다른 식문화가 점차 융합되면서, 타이완에서는 “따뜻한” 철도 도시락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게 오늘날 우리가 타이완에서 먹는 ‘타이완식 도시락’이 만들어진 것이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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