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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타이완어 가요(臺語歌)의 시작

  • 2024.10.22
대만주간신보
1930년대에 음반으로 출시된 타이완어 가요 의 가사.

10월 10일 중화민국 국경일을 닷새 앞두고 지난 5일 타이베이 돔에서 열린 국경일 전야행사에 타이완어 가요의 대표가수이자 타이완의 국민가수라고 손꼽히는 장후이(江蕙)가 오랜만에 무대에 올라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장후이는 맛깔난 목소리와 애절한 톤으로 두 곡의 타이완어 가요(<甲你攬牢牢>, <家後>)와 한 곡의 중국어 가요(<甜蜜蜜>)를 불렀습니다. 특히 <甲你攬牢牢>를 부르고 난 후 장후이는 울컥했다며, 이 날의 무대에 대한 감동을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중국어 노래 <甜蜜蜜>도 참 좋았지만, 그녀가 부른 타이완어 가요는 정서적으로 왠지 더 애절하고 구슬픈 느낌이 듭니다. 노래가 주는 정서뿐만 아니라 음과 음 사이에서 약간 박자를 늦추면서 부드럽게 연결하는 창법이라던지, 구절의 마지막 음을 굵은 비브라토를 사용해 떨어주는 창법은 왠지 타이완어 가요가 한국의 트로트와도 유사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데요. 

언어적으로는 낯설지만, 음악이나 정서상으로는 왠지 모르게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타이완어 가요, 타이완어 유행가(臺語歌, 臺灣歌曲)’는 일본의 ‘엔카(演歌)’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타이완 학자들은 입을 맞추어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본 엔카는 메이지 시대 일본 민중들이 정부와 시국을 비판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불렀던 노래에서 역사적 연원을 찾기도 하지만, 대개 1960년대부터 대중소비문화의 일환으로 정착한 대중음악계의 한 장르입니다. 일본어로 ‘코부시’(こぶし)라고 하는 장식음과 ‘유리(ゆり)'라고 하는 비브라토의 잦은 사용으로 자주 박자를 늘어뜨리고 끈적끈적하게 부르는 노래를 엔카라고 하죠. 여기에 가사는 애절한 서민들의 삶, 이를테면 고향을 떠난 이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 사랑, 이별, 아픔 등, 사회 변두리에 있는 서민의 마음을 토로하는 듯한 색채를 띄고 있죠. 따라서 엔카야말로 일본인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하는 노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천페이펑 2020: 11)  

한국에서도 소위 한국인의 한과 정서를 대변하는 ‘트로트'와 일본의 엔카와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그리고 음악학적 연구와 열띤 논쟁이 한창 있기도 했는데요. 올해 4월 MBN에서 시작된 ‘한일가왕전'은 이 둘을 무대 위로 올려놓고 경쟁하는 예능 방식을 선보이면서 역사적 논쟁 대신 각 장르의 특이점과 매력을 인정하며 ‘옛날 노래’라고 여겨지는 트로트와 엔카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나가는 행보를 보이기도 합니다. 

츠츠미 / ‘한일가왕전' 일본 프로듀서

“상대국의 노래를 부르는 무대를 상상하지 못했는데 볼 수 있어서 정말 행복. 이런 무대가 한국와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한 발짝 더 앞서 나가게 하는 시대를 열 것으로 생각”

타이완인의 심금을 울리는 타이완어 가요 역시 일본 엔카와 상당히 유사한 면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3년 국가과학및기술위원회(NSTC) 학술연구수상 수상한 ‘타이완을 노래하다(歌唱臺灣, 2020)'의 저자 천페이펑(陳培豐) 학자는 타이완어 가요가 일본 색채가 강한 대중음악인 엔카를 닮았다고 대놓고 인정합니다. 그리고는 타이완어 가요가 왜 ‘일본화’, ‘엔카화'되었는지 그 이유를 사회문화사적으로 탐색하죠. 오늘 대만주간신보시간에는 그의 연구를 바탕으로 타이완 중장년층의 심금을 울리는 타이완어 가요의 시발점이 되는 시기인 1930년대, 즉 일제시기 중반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1920년대로 돌아갑니다.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지 이미 30여 년이 되가는 192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신민요 운동이, 타이완에서는 타이완어 유행가가 성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지역에서 서로 다른 색채의 음악 활동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일본에서 신민요 운동은 일본 대중음악 문화의 전신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입니다. 1900년대 초부터 음반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일본에서는 소리를 채집해 기록, 소지할 수 있는 음반을 활용하기 위한 방안으로 일본 전국팔도에서 불리어오던 각종 민요들을 발굴하고 채집, 음반으로 취입하는 일련의 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20년대 후반이 되자 기타하라 하카슈우 (北原白秋, 1885-1942), 노구치 우조오(野口雨情, 1882-1945), 사이조오 야소(西條八十, 1892-1970), 나카야마 신페이(中山晋平, 1887-1952) 등 유명 작가들이 참여하는 문화운동이 되었고, 이렇게 신민요가 탄생했습니다. 과거 전통 민요가 가진 특유의 멜로디를 통해 과거의 맛을 모방하고, 가사는 비교적 근대적인 신시 형태로 일본 각지의 자연, 명승지, 특산물 등을 시로 만들어 노래하는 것이 바로 신민요이죠. 대표적인 신민요 노래로 나카야마 신페이가 작곡한 <하부의 항구(波浮の港, 하부노미나토)>가 있습니다.  

일본 신민요 운동 시기 대표 곡, <하부의 항구>

일본에서 1920년대 후반 시작된 신민요운동은 식민지인 타이완에도 1930년대 초부터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습니다. 가사는 일본어였지만, 가사가 묘사하는 대상은 타이완과 관련된 것이었죠. 일본의 신민요 운동에 영향을 받은 당시 타이완인들도 자신이 직접 타이완 이곳저곳을 다니며 본 풍경을 묘사해 노래로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타이완에서 신민요 운동으로 창작된 노래들은 주로 일본인들 사이에서만 불릴 뿐, 타이완 대중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타이완 대중들은 오히려 ‘사랑'을 다룬 ‘여성 화자'의 노래에 귀를 귀울였다고 천페이펑 학자는 지적합니다. 대만주간신보의 오프닝 노래인 <도화읍혈기(桃花泣血記)>는 1931년 타이완에서 제작된 영화의 주제곡인데, 이 노래는 당시로서는 꽤나 파격적인 서양식 대중음악 요소에, 가사는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하는 여성들의 심경을 다루고 있죠. 일명 ‘문명세계'에 사는 ‘신여성'에 대해 당시 타이완 대중들은 큰 동경과 관심을 갖고 있었던 나머지, 1930년대 초 음반을 통해 유통된 유행가 중 흥행이 좋았던 노래들 중에는 ‘문명', ‘모던', ‘반항', ‘개방', ‘자유연애' 등을 표방하는 노래가 다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노래들의 언어는 타이완어(臺語)였고요. 

한쪽에 ‘신여성'의 양상과 심경을 노래한 타이완어 가요가 있다면, 또 한편으로는 남편을 잃고 힘겹게 아이를 부양하는 봉건적인 색채의 여성을 다루는 노래도 큰 유행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노래가 <설매사군(雪梅思君)>이죠. 이렇게 여성이 집 안에서 먼 길을 떠난 배우자나 애인을 그리워하며 슬픔과 원망의 감정을 묘사한 타이완어 가요는 당시 ‘신여성'과 함께 타이완에서 흥행하던 유행가 소재였습니다. 

이렇듯, 193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타이완의 대중음악 시장에서 화제성면에서나 음반판매량면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던 노래들은 대부분 ‘규원(閨怨)’, 즉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을 받은 여자의 원한과 관련이 깊었다고 천 학자는 분석합니다. 그리고 이런 가사의 노래들이 ‘일본어'가 아닌 ‘타이완어'로 창작되면서 타이완 사회의 여성과 중하층 민중들의 폭발적인 환영을 받을 수 있었죠. 

중요한 것은 타이완어에 규원적 색채가 짙은 가사, 그리고 여성 가수가 대부분이었던 1930년대 타이완의 대중음악은 동시대 일본의 유행가와는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입니다. 물론, 음반 산업에서 기계나 설비, 그리고 음악을 편집하는 제조 과정은 당시 선구적이었던 일본에 크게 의존해야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시 창작된 타이완어 가요는 언어, 가사, 멜로디, 심지어 창법에서도 일본과는 다른 타이완 고유의 특징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죠. 특히, 이 당시에는 지금의 일본 엔카나 지금의 타이완어 가요와 같이 특유의 떨림과 비브라토 발성 창법이 대세이거나 유행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청대부터 있던 타이완의 전통극 ‘거자이시(歌仔戲)’에서 불리던 창법과 유사했죠. 

천 학자는 이야기합니다. 지금의 타이완어 가요가 ‘일본화', ‘엔카화'된 배경에 일제시기는 실제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요. 1930년대는 타이완어 대중음악 산업의 시발점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당시 타이완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 노래들은 지금의 타이완어 가요와는 차이를 보이며, 동시대 일본 유행가와도 차이를 보인다고요. 그렇다면 천 학자가 이야기하는 ‘일본화', ‘엔카화'된 타이완어 가요가 본격적으로 창작되고 대중적으로 불리기 시작된 것은 언제일까요? 그 시기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던 1945년 이전이 아닌, 오히려 전후, 즉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내려온 후인 1960~1970년대라고 천페이펑은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국민당 정부 치하가 된 타이완 사람들은 왜 타이완어 가요에 일본 색채를 가미했던 것일까요? 이는 다음 대만주간신보 시간에 이어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陳培豐 《歌唱臺灣:連續殖民下臺語歌曲的變遷》 臺北:衛城出版,2020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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