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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농림학교 1931년 일본 고시엔 준우승의 비결은?

  • 2024.09.24
대만주간신보
1931년 제17회 고시엔 대회에 출전한 자이농림야구단 선수들. - 사진: 위키피디아

지난 달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결승전에서 한국계 국제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우승하는 새로운 역사가 탄생했죠. 제106회 고시엔에서 재일동포들이 세운 교토국제고가 설립된지 77년, 야구부가 설치된지 25년 만에 도쿄를 대표하는 야구 명문교인 간토다이이치고를 2-1로 꺾은 것입니다. 실시간으로 경기를 생중계한 NHK 방송에서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울려퍼지고 선수들은 물론 응원석의 학생들이 목청을 높여 한국어 교가를 부르는 장면은 한국 뉴스에서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올해로 106회를 맞이한 고시엔은 1915년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일본 최고의 고교야구대회인데요. 제1회 대회 당시 주최단위인 아사히 신문을 대표해 무라야마 료헤이(村山龍平, 1850-1933) 아사히 신문 창간자이자 사장이 시구자로 나서기도 했죠. 1921년에는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 대표와 만주 대표가 처음으로 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조선 대표팀은 부산공립상업학교. 왠일인지 이때 출전한 식민지 중 타이완 대표는 없었는데요. 1921년 당시 타이완 대표 야구팀이 고시엔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1921년 미국 프로 야구단의 타이완 방문

조선과 만주 대표팀이 일본 고시엔 대회에 출전하던 1921년 같은 해, 타이완 야구계에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집니다. 같은 해 1월 미국 직업야구단 선수들이 타이완을 방문한 것입니다. 총 23명으로 조직된 미국 직업야구단 선수들은 1920년 12월 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 20일 동안 해상을 표류한 끝에 태평양을 횡단, 가장 먼저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했습니다. 야구를 전세계에 보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국은 1920년대부터 선수단을 해외로 보내 순회 시범 경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첫번째 목적지가 일본이었던 것입니다. 

1920년 연말, 일본에 도착해 10여 일에 걸쳐 도쿄와 오사카에서 시범 경기를 치룬 미국 선수단들은 이듬해인 1921년 1월 신년이 되자 일본 섬에 이어 타이완으로 향했습니다. 홍콩마루를 타고 고베를 출발해 8일 아침 지룽항에 도착한 미국 선수단은 총 14명. 도착 당일부터 미국 선수들은 타이완에서 총 7경기를 치뤘습니다. 타이베이 츠키지초(지금의 시먼, 베이먼 일대)에 소재한 철도부 구장에서 3경기, 타이난으로 내려가 3경기, 마지막으로 타이중에서 1경기. 미국 선수단의 시범경기 입장권은 소학생의 경우 20전(교과서 한 권 값이 12전), 어른의 경우 5엔(영화 한편에 약 1엔)을 호가하는 꽤나 비싼 가격이었지만, 컴퓨터는 물론 텔레비전도 없었던 당시 일생에 한 번 볼까말까하는 명경기에 기꺼이 돈을 주고 구경을 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타이베이에서의 첫 경기에 무려 5천 명의 관중이 몰려들었죠. 당시 타이베이 시 인구가 20여만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엄청난 인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경기는 미국팀이 타이완팀을 26대 0으로 가뿐히 이겼고, 타이완팀에서는 한 일본 선수가 안타 하나를 쳐서 1루에 오른 것이 유일한 공격(?)이라 할 정도로 두 팀의 실력 차는 상당히 컸습니다. 당시 투어에 나선 선수 대부분은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도 거의 없는 마이너리그 트리플 A 선수들을 주축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비록 미국에서 온 선수들이 2군에 불과할지라도 100여년 전 타이완 야구팬들에게 이번 투어는 승패를 떠나 상당히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미국팀과 경기를 한 타이완팀 중 타이완 출신 선수는 절반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일본 출신이었죠. 그만큼 1921년 타이완의 야구는 이제 막 태동하던 시기였습니다. 

타이완에서 야구 관련 첫 기록은 1908년. 당시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한던 총독부 국어학교에서 300여 명의 타이완 출신 학생들이 학교에서 야구를 하며 놀았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1919년에 이르러서야 타이베이 의과대학이 만든 야구팀 명단에 처음으로 타이완 출신 선수 두 명이 포함되었습니다. 1921년 미국 프로팀의 타이완 방문 당시 왜 타이완팀에 타이완 출신 선수가 많이 없었는지 짐작할 수 있죠. 

이랬던 타이완이 10년 뒤인 1931년, 자이농림학교 야구부가 타이완 대표로 일본 최고의 고교야구대회인 고시엔에 첫 출전해 단번에 결승에 오르는 신기록을 달성하기에 이릅니다. 도대체 이 10년 사이 타이완 야구계에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요? 

타이완 대표팀 1923년에서야 첫 고시엔 진출

타이완 중남부 자이(嘉義)에 소재한 자이농림학교는 1919년에 총독부에서 설립한 학교로, 학교를 대표하는 야구팀인 자이농림야구단(嘉義農林野球團)은 1928년 4월에서야 만들어졌습니다. 야구단 설립 초기 일본인 감독들은 모두 야구부 출신이 아니었기에 처음부터 성적이 좋지는 못했는데요. 그런데 고시엔 우승 경험이 있는 야구 명문고인 마츠야상업학교 야구부에서 감독을 지낸 곤도 효오타로(近藤兵太郎, 1888-1966)가 오면서 이야기는 달라지게 됩니다.  

1931년 타이베이에서 열린 타이완 고교야구대회에 처음 참가한 자이농림야구단은 단번에 우승을 차지했는데요. 타이완에 고교야구대회가 열린 과거 10년 간 타이베이 중심의 북부 지역 학교가 독점했던 우승의 전통을 깨뜨리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자이농림야구단의 역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타이완 고교야구대회 우승으로 타이완 대표 자격을 획득한 자이농림야구단은 제17회 일본 전국고교야구대회인 고시엔에 출전하기에 이르죠.  

1915년 8월 18일 일본 도요나카 구장에서 열린 전국중등학교우승야구대회를 시초로 해서 야구를 사랑하는 일본 학생들의 꿈이자 목표가 된 고시엔은 1945년 이전까지 일본 제국의 식민지였던 조선, 타이완, 만주 등에 소재한 학교들도 각 지역을 대표하는 팀을 선발해 대회에 참여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1919년부터 조선에서도 고시엔 조선지구 예선이 열리기 시작해 1921년 7월 선발된 부산상업학교가 제7회 고시엔에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경성중학교, 인천상업학교, 평양중학교 등이 조선 대표로 잇달아 고시엔에 진출한 바 있죠. 이 중 최다 출전학교는 경성중학, 부산상업, 휘문고, 경성상업으로, 모두 8강까지 오른 바 있습니다. 특히 휘문고는 선수와 감독이 전원 조선인이였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었죠. 

한편, 타이완이 고시엔 출전하기 시작한 해는 1923년입니다. 1923년 제1회 타이완지구 예선이 열렸고, 여기에서 타이베이제1중학교가 우승해 고시엔 대회에 타이완 대표로 출전하게 되었죠. 그러나 타이베이제1중학교는 애초에 타이완에 거주하는 일본인 학생을 위해 설립한 학교였기 때문에 일본인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자이농림학교 1931년 첫 고시엔 출전과 동시에 준우승!

그렇기때문에 1931년 제17회 고시엔에 자이농림학교가 처음 출전해 준우승을 기록한 사실은 더욱 특별할 수 밖에 없습니다. 1931년 8월 21일 열린 고시엔 결승에서 아이치현 대표의 주쿄상업고와 맞붙은 자이농림학교는 4-0으로 패하기는했지만, 자이농림학교는 타이완 대표로 고시엔 대회에 처음 참가해 3승 1패라는 놀라운 기록을 거두었죠. 

2024년 올해 열린 제11회 타이완 야구 명예의 전당 특별봉사 부문에 90여년 전 자이농림학교 야구단을 고시엔 준우승으로까지 이끈 일본인 감독 곤도 효타로가 16표 만장일치로 입당했습니다. 외국인으로서는 최초인데요. 1928년부터 자이농림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은 곤도 감독은 1931년 자이농림야구단은 일본 고시엔 결승에 올려 준우승을 차지한 이래, 일본인과 대만인, 원주민을 막론하고 유망주라면 누구나 야구단원이 될 수 있는 선수들로 스포츠에 재능이 있는 선수를 발굴해 일본 고시엔을 5차례나 추가로 진출하게 한 인물입니다. 

당시 감독을 맡았던 곤도 효오타로는 이런 말을 했다죠. “일본인, 타이완인, 원주민이 섞여 있는 학교, 그리고 팀, 이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타이완의 모습이다. 이 팀이 진다면 그건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시피, 자이농림야구단은 일본인 선수와 타이완 선수, 그리고 타이완 출신 중에서도 한인과 원주민이 모두 있었습니다. 민족이나 종족 출신의 차별없이 하나의 팀워크를 만들어낸 결과 이러한 놀라운 기록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죠.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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