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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절] 군인의 날 다시보는 타이완 독립운동의 대부 스밍(史明) 2

  • 2024.09.10
대만주간신보
타이완 독립운동의 대부라 불리는 스밍(史明, 1918-2019)은 1952년 국민당 정부를 피해 일본으로 망명한 뒤, 일본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1993년 75세의 나이로 다시 타이완 땅을 밟을 수 있었다. - 사진: 국립정치대학 스밍문고

일제시기 ‘모국'인 타이완을 떠나 일본에서 유학을 하다 반일운동의 일환으로 ‘조국'인 중국에 가서 활동했지만,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국민당의 이면을 맞닦드리고는 ‘모국'과 ‘조국'을 모두 등진 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망명생활을 시작한 스밍.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스밍이 1952년부터 시작한 일본에서의 망명생활 중 벌어진 놀라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타이완으로 남하한 국민당의 만행을 목격하고 이에 저항하는 세력을 조직하면서 더 이상 ‘모국'인 타이완에서도 발붙이고 살 수 없었던 스밍이 선택한 곳은 다시 일본이었습니다. 아무리 젊은 시절 유학을 했던 곳이라지만, 이곳에서 다시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스밍은 도쿄 이케부쿠로 역 앞 광장에서 수레를 끌고 중국식 만두와 분식 메뉴를 파는 장사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먹거리 장사를 이어가는 스밍의 노점 장사가 의외로 성공을 거두면서 1955년부터 그는 노점이 아닌 점포를 매입해 가게를 차리기 위한 계획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첫 장사를 시작한지 8년 만인 1960년, 자신이 노점 장사를 하던 곳에서 멀지 않은 도쿄 이케부쿠로 역 서쪽에 5층 짜리 건물을 매입해 ‘신진미(新珍味, 신전웨이, 신친미)’라는 중화요리집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망명 생활 중 중국 만두, 양춘면, 볶음면, 볶음밥 등을 팔아 소위 대박을 터뜨린 그였지만, 여전히 그가 젊은 시절부터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사회주의 사상과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기초한 혁명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타이완 역사를 재탐색하기 시작했죠.         

망명지 일본서 <타이완인 사백년사>(1962) 집필

스밍은 장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타이완 역사에 관한 자료 수집과 기록에 온 정신을 몰두했습니다. 일본 국회도서관, 히비야도서문화관 등을 수시로 찾아다니며 타이완 역사를 탐구해나갔죠. 낮에는 만두와 면요리를 팔고, 밤에는 그간 수집해온 자료를 토대로 연구하고 재정리하면서 <타이완인 사백년사>라는 역사책을 집필하기에 이릅니다. 망명생활을 시작한 이래 꼬박 10년이 지난 1962년 7월, <타이완인 사백년사> 일본어판이 도쿄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필명인 ‘스밍(史明)'으로 기록한 것도 이 책의 출판과 함께였습니다. 도쿄 자택에서 쓴 일본어판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습니다.      

일본어판 서문

먼저 왜 이 책의 제목이 ‘타이완사' 또는 ‘타이완 사백년사'가 아닌 ‘타이완인 사백년사’라고 한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이는 필자가 400년 동안 타이완을 개척·건설한 외세의 지배를 받아온 타이완인들의 입장에서 '타이완 민족'의 역사 발전과 타이완인들의 의식 형성 과정, 그리고 타이완 민족 발전의 역사 과정을 통해 우리 일천만 타이완 동포들이 생존을 위해 겪어 왔던 길을 찾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우리 타이완 사람들은 자신이 속하고 생존하는 사회발전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 아니 거의 알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이룬 이주민과 개척의 역사도 단편적으로나마 알 뿐입니다. 이러한 대만 역사 발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타이완인 중 일부(특히 지식인)의 타이완인 의식은 필연적으로 깊은 취약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결과 400년 동안 외국 식민 통치의 참혹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타이완인으로서 필자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세대로부터 구전을 통해 우리 타이완의 지난날들을 듣고, 나도 경험을 조금 맛보고 나서야 선인들의 사적과 보물섬인 타이완의 옛 상황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남중국해 외딴섬의 풍파에 선조들이 겪었던 고달픈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향 타이완의 역사서나 문헌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왔습니다만, 필자가 접한 문헌은 예외 없이 외세의 지배자, 즉 네덜란드인, 일본인, 중국인 및 기타 외국인이 썼고, 외세의 관점에서 쓴 문헌은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들은 전설이나 사실과는 거리가 멀어 막연하게 들렸습니다. 

따라서, 타이완 발전의 역사를 타이완인 스스로가 식민 지배당했다는 입장에서 써내려갈 필요가 있음을 통감하고, 열정적으로 달려서 이 <타이완인 사백년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

 “타이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사회발전사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에 400년 동안 외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타이완인 사백년사> 일본어판 서문 중

도쿄에서 만두 팔아 타이완 독립 지지하는 청년층에 후원

스밍 자신의 첫 저서이자, 타이완을 중심으로 타이완의 역사를 재조명한 타이완의 첫 역사서라는 점에서 이 책은 큰 의의가 있습니다. 서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그는 ‘타이완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역사를 재조명해 궁극적으로는 타이완의 ‘독립' 노선을 지향하고자 했죠. 자신의 이념과 지향을 위해 그는 역사책을 집필하는 일뿐만 아니라 자신이 장사를 하면서 모아둔 자금으로 1960년대부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타이완 독립 주장 청년 세력들, 이를 테면 60년대 <타이완청년>을 창간한 왕위더(王育德),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  중 ‘타이완청년사'에서 활동하던 진메이링(金美龄, Alice King) 등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음식점은 당시 타이완을 집권하던 장제스 총통을 암살해 국민당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혁명 기지로 활용되었죠. 소위 타이완의 ‘지하세력'을 후원하고 그의 식당은 비밀리에 훈련을 하는 장소가 된 것입니다. 1959년 타이베이 베이먼 부근의 타이완 철도 관리국 공장이 불타고 군용 기차가 폭파된 사건은 이들의 주도하게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이 소식을 전해들은 스밍은 자신의 식당을 근거지로 한 훈련이 초보적인 성과를 얻어 장제스 정권에 각성을 요구할 수 있게 되어 기뻐했다고 합니다. 

일명 ‘타이완 독립 좌파'로 간주되는 스밍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공산주의를 배격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신념을 결코 버리지 않고, 이를 타이완 역사를 보존하고 혁명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가 쓴 <타이완인 사백년사> 역시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에 입각해 정리되었음을 목차만 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죠. 

자신의 자산과 시간, 인생을 모두 받쳐 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는 ‘타이완인들은 역사적, 사회적으로 중국의 일부가 아니며, 문화적으로도 타이완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켰다’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타이완은 독립해야 한다는 것일 겁니다. 그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논쟁과 대립의 여지가 많을 수 있습니다. 타이완의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타이완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현재 이곳에 사는 타이완인들 역시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그것이 정치적으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으니까요. 

한화로 연 2억에 가까운 연이은 매출로 망명 중인 나라에서 성공을 거둔 그를 우리는 ‘성공한 자산가’가 아닌 ‘타이완 독립운동의 대부'라고 기억합니다. 일본에 체류하는 40년동안 한화로 무려 370억원 이상의 막대한 자본을 벌어들인 스밍은 자신이 피땀흘려 벌어들인 자본을 자신의 부를 위해서가 아닌 타이완 독립을 위해 기꺼이 내놓을 수 있었던 그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10평도 채 안되는 작은 방에서 침대도 없이 책장과 책상만 가져다 놓고 장사를 마친 밤이면 타이완 역사를 써내려갔던 그의 간절함은 무엇이었을 지 생각해봅니다.  

史明文物館明年六月台日開館- 政治- 自由時報電子報

스밍이 도쿄 망명생활 중 운영하던 식당 신진미. 지금도 여전히 식당이 운영되고 있으며, 그가 거주했던 4층 방은 기념관으로 개조되었다. 

 

‘블랙리스트'에서 ‘타이완의 역사'로 

 

1993년, 드디어 블랙리스트의 누명을 벗고 다시 ‘모국'인 타이완으로 그가 돌아왔습니다. 1952년에 일본으로 망명길에 떠났으니, 무려 40년 만입니다. 그리고 2019년 그는 103세의 나이로 자신의 ‘모국'인 타이완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수백 억 이상의 수입을 낸 그의 가게 위 10평 남짓한 그의 방은 이제 스밍기념관이 되어 그의 업적을 기리는 공간이 되었고, 차이잉원 전 총통은 올해 3월 청명절을 앞두고 스밍의 묘역을 찾아 헌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타이완의 ‘블랙리스트'나 ‘반국가세력'이 아닌 보존하고 기억해야 할 타이완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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