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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향심을 불러일으킨 1927년 ‘타이완 팔경(臺灣八景)’ 투표

  • 2024.08.13
대만주간신보
1927년 7월 27일자 신문에 공개된 타이완 팔경 최종 투표 수 - 사진: 대만일일신보

한 지역에서 빼어난 자연 경관을 가진 곳을 우리는 흔히 ‘팔경(八景)’이라고 표현하죠. 이를테면 충북 단양군 솟아있는 기암들을 일컬어 ‘단양팔경’이라고 하듯이요. 조선시대 때도 조선 전 지역에 경관이 좋은 곳을 선정해 ‘조선팔경’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하고,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경성방송국에서는 라디오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경관이 뛰어난 여덟 곳을 추천 받아 ‘조선팔경’을 선정하기도 했다는데요. 이 때 선정된 곳이 금강산, 대동강, 백두산, 부전고원, 압록강, 석굴암, 해운대, 한라산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선정된 조선팔경을 기반으로 1936년에는 당시 신민요 분야의 유명가수였던 선우일선이 부른 ‘조선팔경가’가 음반으로 발매되기도 했습니다.      

선우일선 ‘조선팔경가’ (1936)

타이완에도 일명 ‘타이완 팔경(臺灣八景)’이라고 해서,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관광지가 있는데, 르위에탄(日月潭, 일월담)이 그 팔경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타이완 명소인 르위에탄에서는 산과 호수라는 빼어난 자연경관과 더불어 이를 둘러싼 둘레길을 중심으로 불꽃놀이를 동반한 음악회가 열리거나 마라톤 대회도 열리는 등 각종 행사도 진행되고 있죠. 그러면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르위에탄은 타이완의 팔경 중 하나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팔경’이라는 표현은 3백여 년 전인 청나라 시대 때부터 이미 사용되었습니다만, 당시 청나라 조정이 타이난 지역에 국한되어 있어, 이때 선정된 ‘타이완 팔경’은 남영(南瀛, 과거 타이난을 일컫는 용어)에만 집중되어 있었죠.     

일본의 식민통치가 시작되자, ‘팔경’은 타이완 전국 단위로 확대됩니다. 일본에서 넘어 온 사람들도, 기존 타이완 유신(儒紳)들도 하나같이 특정 지역, 이를테면 ‘타이베이 팔경’이라고 해서 풍경 사진을 내놓거나, 특정 자연경관, 이를테면 ‘대나무 팔경’이라고 해서 타이완 전국에서 대나무로 유명한 지역을 선정해 소개하는 문화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27년, 타이완 전국의 대중들을 대상으로 ‘타이완 팔경’을 투표하는 활동이 처음 등장합니다.  

1927년 5월, 일본의  <오사카마이니치신문(大版每日新聞)>에서 실시한 ‘일본 팔경’ 투표 활동에 자극을 받은 <대만일일신보(臺灣日日新報)> 운영진들은 ‘샤코쿠(社告, 사고)’란을 통해 타이완 전국에 ‘타이완 팔경’ 투표 모집 광고를 냈습니다. 6월 11일, 지금의 타이베이 시먼역 주변에 소재했던 신문사 건물 앞에는 가슴 높이의 커다란 투표함과 함께 투표함보다 훨씬 큰 야자수 그림 간판 위로 ‘타이완의 팔경을 투표로 뽑아주세요!’라는 문구가 설치되었습니다. 그렇게 <대만일일신보>에서는 한 달 간 타이완 팔경 투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타이완 팔경 투표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번 투표할 수 있었습니다. 단, 사용하는 종이는 당시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일반 엽서보다 크면 안됐고, 종이 한 장, 즉 한 표에는 한 개의 명소만 써야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투표에는 경품이 빠질 수 없죠. 선정된 팔경에 투표한 표 가운데 매 경치마다 다섯 명씩 추첨해 1등상은 금시계, 2등상은 옷감, 3등상은 10엔어치의 채권, 4등상은 5엔어치의 채권, 5등상은 알람시계를 주었습니다. 금시계를 제외하고는 그리 대단한 경품을 주는 행사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투표 행사에는 무려 3억 6천만 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표가 행사되었습니다. 당시 타이완에 사는 인구 수를 고려할 때(타이완인 4백만 명, 일본인 20만 명, 중국인 3만 명) 한 사람이 평균 80여 장의 표를 던진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죠. 

이렇게까지 투표가 과열된 데에는 신문사가 매일같이 그 날의 투표 결과를 공개해 신문을 통해 순위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투표 첫 날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인 장소는 바로 르위에탄(일월담)이었습니다. 첫 날에는 20위권 밖에 있던 이란의 타이핑산(太平山, 태평산)은 6월 말부터 순위권에 오르더니, 6월 29일이 되자 르위에탄을 앞지르고 1위로 뛰어올랐습니다. 온천으로 유명한 베이터우도 10위권을 유지했지만, 투표가 마감하자 결국 20위권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이렇게 약 한 달 간 타이완 팔경 투표를 향한 사람들의 열렬한 참여와 지지로 순위는 마치 롤러코스터와 같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재미까지 선보였습니다.  

7월 10일 드디어 투표가 마감되었고, 지난 한 달 간 수 억 개의 투표 용지를 정리하던 신문사 직원들은 7월 말이 되어서야 타이완 팔경의 최종 투표지를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 의외로 첫 날 가장 많은 투표율을 기록한 르위에탄은 팔경에 오르지 못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투표를 통한 타이완 팔경의 여론조사가 1단계였다면, 최종 결과 직전 전문가의 심사가 남아있었는데요. 신문사는 화가, 건축가, 상선회사 지부장, 철도부 부장, 임업부장에 육군 중장과 해군 대령  등 총 22명의 심사위원을 선정해 최종 심사를 맡겼습니다. 안타깝게도 심사위원 중 타이완인은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타이완의 대표적인 부호 가문인 반차오 린가 출신의 린슝광(林熊光) 씨. 도쿄제국대학 경제부 상업과를 졸업한 그는 보험 사업을 경영하며 골동품을 수집해 당시 타이완 문화계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반전은 바로 심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앞서 3억 표가 넘는 투표를 통해 선정된 결과는 30%밖에 반영되지 않고, 나머지 70%는 심사위원의 선정에 달려있었기 때문이지요. 민의에서는 팔경에 선정되지 못한 르위에탄이 심사위원들에게는 호감을 얻어 결국 타이완 팔경에 선정되기에 이릅니다.

선정된 타이완 팔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셴산(八仙山), 어롼비(鵝鑾鼻), 타이루거 협곡(太魯閣峽), 단수이(淡水), 소우산(壽山), 아리산(阿里山), 지룽쉬추(基隆旭岡), 그리고 르위에탄

공식적으로 타이완 팔경이 공개하면서 동시에 수상자도 추첨했습니다. 재미있는 현상은 수상자 명단을 보면 단수이를 고른 사람은 모두 단수이 출신이며, 타이루거 협곡을 고른 사람은 화롄 출신이라는 점인데요.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타이완을 대표하는 풍경이 되었으면 하는 당시 사람들의 애향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결과가 발표된 후 9월 8일 저녁, 신문사는 타이베이 기차 역 앞 철도호텔에서 타이완 팔경 선정을 기념하고 심사위원에 대한 사의를 표하기 위한 성대한 만찬을 열었습니다. 식당 중앙에 놓인 커다란 탁자 위에는 타이완 섬을 형상화한 큰 모형이 있었고, 여기에 선정된 팔경 소재지에 전등을 놓아 팔경의 위치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했죠. 이를 둘러싼 채 자리를 잡은 손님들은 타이완 팔경을 주제로 한 요리를 맛보며 이번 행사를 다시금 기억했습니다.  

이렇게 타이완 전국을 대상으로 한 ‘타이완 팔경’이 최초로 기록되었습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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