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지난해 Rti 개국 95주년을 맞아 Rti 본사 옆 아메리칸 클럽 타이베이(ACC, American Club Taipei)에서 성대한 경축대회가 열려 저와 서승임 아나운서님이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는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1968년 설립된 ACC는 원래 타이베이 양민산(陽明山)의 미군 숙소 단지에 있었고, 1970년대 미군의 타이완 철수와 함께 현재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아메리칸 클럽이라고 하지만 미국 국적이 있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회원가입 후 국적과 상관없이 클럽 내 수영장, 헬스장, 도서권 등 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메리칸 클럽 타이베이(ACC, American Club Taipei) - 사진: ACC
타이완 주둔 미군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 아래 세계 패권국들 사이에 끼어 있던 타이완과 한국은 비슷한 역사를 공유할 뿐만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역사 연구에는 “한국전쟁이 타이완을 구했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이 1949년 타이완으로 이전되면서 미국은 중화민국 정부를 포기한다는 ‘미중관계백서(The China White Paper)’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1년도 안 되어 한국전쟁의 폭발로 제7함대를 타이완해협에 파견해 공산당의 타이완 침입과 국민당의 대륙반공을 막았습니다. 타이완은 아시아-태평양 방어선의 중요한 일환으로 1951년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상호 안전보장법(Mutual Security Act)’, 그리고 1954년 체결된 ‘미국-중화민국 상호방위조약(Sino-American Mutual Defense Treaty)’에 따라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미국은 타이완을 지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죠.
미군의 타이완 주둔과 함께 영어 간판과 메뉴판을 단 술집, 레스토랑, 클럽이 우후죽순처럼 타이완 곳곳에서 나타났습니다. 베트남 전쟁 발발 후, 미국은 1967년 R&R 휴식휴양 프로그램(Rest and Recuperation Program)을 내세워 미군들이 타이완, 싱가포르, 홍콩, 태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 4박 5일 동안 휴가를 보내도록 했습니다. 이에 따라 휴가차 타이완에 온 미군은 전쟁 초기 2만 명에서 4년 만에 17만 명으로 대폭 늘어났고, 지룽(基隆), 가오슝(高雄) 등 항구도시에는 술집골목까지 생겼을 정도로 경제적 이익이 컸습니다.

R&R 휴식휴양 프로그램의 지정 바 - 사진: 국가발전위원회
하지만 1967년 미국 타임지에 실린 ‘베트남의 크리스마스’ 특집보도에 장제스 전 총통은 격노했습니다. 미군의 크리스마스 휴가를 소개한 이 보도는 타이베이를 ‘고궁박물원밖에 없지만 부드러운 여자와 먹거리가 많은 도시’로 묘사했습니다. 타이베이의 온천 명소 베이터(北投)에서 미군 한 명과 타이완 여성 두 명이 함께 목욕하는 노골적인 사진도 게재되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에 분노한 장 전 총통은 사회풍조를 문란하게 한다는 이유로 철저한 조사를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있는 곳에는 성적 수요가 있기 마련이죠. 시사평론가 관런지엔(管仁健)은 타이완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지원이 1965년 끝난 후 장제스 정부가 R&R 프로그램을 이용해 타이완을 성매매의 천국으로 만들고 미국달러를 계속 벌어들인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타임지는 대놓고 성매매 사진을 내걸어 이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타임지에 게재된 휴가 중인 미군의 사진 - 사진: https://mypaper.pchome.com.tw/kuan0416/post/1311693559
미군을 위한 매춘소 💓
오늘 소개해 드리는 작품 왕전허(王禎和)의 《장미 장미 사랑해(玫瑰玫瑰我愛你)》는 1960년대 미군을 상대로 한 매춘소의 설립 과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소설에서 300명의 미군이 타이완 동부 화롄(花蓮)에서 2주간 휴가를 보내기로 했는데, 비교적 늦게 발전된 화롄은 현대식 술집도, 잘 훈련된 성노동자도 없기에 교사, 의사, 변호사, 정치인 등 현지 지식인들을 총동원해 ‘바걸 육성 속성반’을 마련했습니다. 말로는 ‘국민외교’지만 실제로는 막대한 상업적 이익을 위한 것이었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화롄의 4대 공창관(公娼館), 즉 국가의 허가 아래 합법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업소들이 모두 전력투구하여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저자는 성노동자의 내면이나 반대자의 목소리를 묘사하는 대신에 모두가 성매매하러 온 미군을 환영하는 풍자적인 필치로 익살스러운 코미디를 연출했습니다.
소설 제목 ‘장미 장미 사랑해’부터는 신의 한 수입니다. 세 가지 의미를 지닌 이 제목은 소설의 시대적 배경뿐만 아니라 타이완과 미국 간 대등하지 않은 관계를 짚어냈습니다. 첫째, ‘장미 장미 사랑해’는 1940년 발표된 중국어 노래로 장미처럼 거룩한 사랑을 칭송합니다. 소설에서 미군이 화롄항에 도착했을 때 속성 훈련을 받은 바걸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미군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애인도 아니고 성매매 손님인데 어떻게 거룩한 사랑이 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미군과 연애하는 타이완 여성도 있지만 결혼은 매우 드물고, 오히려 아버지의 신분을 모르는 혼혈아들을 많이 낳았습니다. 둘째, 아름답지만 가시 돋친 장미처럼 당시 미군은 ‘사이공 장미’라 불리는 성병 매독을 타이완으로 가져왔습니다. 막대한 달러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말이죠. 마지막으로 장제스의 고향인 중국 저장성(浙江省)의 사투리로 ‘장미(玫瑰)’는 ‘미국(美國)’처럼 들리는데요. 따라서 ‘장미 장미 사랑해’는 ‘미국 미국 사랑해’가 될 겁니다. 이 소설은 타이완과 미국이 단교한 지 5년 후인 1984년 출판되었는데, 당시나 지금이나 타이완은 미국의 수교국이 아니더라도 이 패권국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위의 세 가지 의미를 통해 소설의 풍자 효과가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타이완 향토문학의 서막 🚪
타이완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 등 타이완 사회상을 잘 드러내는 다언어의 사용도 이 책이 고전이 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인데요. 타이완문학 학자 천팡밍(陳芳明)에 따르면, 왕전허는 타이완어로 문학작품을 쓰는 첫 번째 작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민당 정부가 추진한 국어운동과 반공문학, 그리고 1960년대 타이완 문학계를 주도한 모더니즘 때문에 타이완 문학은 오랫동안 뿌리 없는 나무였습니다. 모국어로 창작할 수 없는 것은 물론, 타이완을 배경으로 한 작품도 부재했습니다. 왕전허를 비롯한 본토작가들의 추진으로 타이완인의 이야기를 하는 ‘타이완 향토문학’이 드디어 1970년 후반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패권국들 사이에 끼어 있던 타이완도 점차 중국이 아닌 타이완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작가이자 기자 리둥하오(李桐豪)는 타이베이 그랜드호텔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붉은집(紅房子:圓山大飯店的當時與此刻)》에서 당시 장제스 전 총통이 타임지의 특집보도에 분노하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장제스가 화난 이유는 타이완이 희화화된 것이 아니라 타이완과 미국 간 원시적인 성관계처럼 대등하지 않은 관계가 설파되었기 때문이다. 즉, 미국 군인과 타이완 소녀, 남성과 여성, 돈 주는 쪽과 몸을 바치는 쪽.” 마찬가지로 왕전허는 터무니없는 코미디를 통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유곡에 빠진 타이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냈습니다.
《장미 장미 사랑해》는 소설 외에도 영화로 각색된 바 있는데, 관심이 있다면 한 번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王禎和,《玫瑰玫瑰我愛你》。
2. 李桐豪,《紅房子:圓山大飯店的當時與此刻》。
3. 蔡昇璋,〈元氣補給:美軍大兵在臺灣〉,國家發展委員會檔案管理局。
4. 「70年代鄉土小說家登場 改寫台灣文壇樣貌【民視台灣學堂】台灣新文學史—陳芳明」,民視台灣學堂。
5. 管仁健,「老蔣為美軍打造的『性』福台灣」。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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