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한국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타이완에서 크리스마스는 빨간 날이 아니어서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크더라도 퇴근 후에야 놀 수 있죠. 하지만 타이완 달력을 보시면 12월 25일에 크리스마스 뿐만 아니라 제헌절도 되어있는데, 두 날이 겹치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요? 답을 찾기 위해 우선 1947년 12월 25일 중화민국 헌법이 발효되었던 날에 장제스 전 총통이 발표한 대국민 담화부터 살펴봅시다.
중화민국 36년, 즉 1947년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크리스마스는 중화민국과 모든 국민이 통일, 독립, 평등,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새 헌법은 기독교 교리의 기본 요소인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전국민에게 부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는 중국 3천 년 간 실시해 온 독재체제와 봉건사회를 타파하는 획기적인 진보입니다. 우리 동포들 모두 신앙에 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장제스 전 총통의 담화를 통해 그의 크리스천 신분을 알 수 있는데요. 불교도였던 장 총통은 부인 쑹메이링(宋美齡)의 기독교 집안과 유대를 맺은 후 세례를 받아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했습니다. 따라서 중화민국의 새로운 탄생을 상징하는 헌법이 1946년 성탄절에 통과, 1947년 성탄절에 실시되었던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계획된 것이었죠. 이로 인해 12월 25일은 중화민국의 제헌절이자 성탄절이 되어 1963년부터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다만 2001년 주5일근무제가 확립되면서 정부가 경제적 타격을 줄이기 위해 이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했습니다. 이제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법정공휴일이 아니지만 기독교와 천주교 학교, 일부 기업에서 여전히 쉬는 날로 여겨집니다.
타이완에서 기독교와 천주교 신자수는 인구의 7%에 미달하는데, 크리스마스는 종교적 명절이라기보단 연말을 맞이하는 축제에 더 가깝죠. 길거리를 걷다 보면 하늘로 높이 솟아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반짝거리는 조명, 듣기만 해도 설레고 따뜻해지는 크리스마스 캐롤… 정부기관, 기업, 학교, 마트, 식당, 가게 등 곳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물씬 납니다. 지금 RTI 방송국 정문에도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와 포인세티아가 많이 있는데, 빛나는 2023년의 마지막을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양 명절인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타이완에서 뿌리를 내렸을까요? 19세기 중반부터 중국이 서구 열강에게 계속 패하면서 타이완의 주요 항구도 잇달아 개항되었습니다. 이 때 서양 선교사들이 대대적으로 타이완에 와서 선교하기 시작해 크리스마스를 들여왔습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의 세속화를 막고 종교의 본래 의미를 지키기 위해 선교사들은 관련 경축행사에 대해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따라서 당시 타이완에서 크리스마스는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죠.
일본 식민지 시대에 들어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문화적으로 크게 발전되면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은 유행이 되었습니다. 청나라 시절과 다르게 이 때 크리스마스는 비종교적인 경로를 통해 타이완 사회에 들어왔습니다. <타이완일일신보>를 비롯한 주로 신문에는 산타 할아버지, 크리스마스 선물 등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물론 관련 행사는 여전히 교회나 기독교 학교에 가장 많이 있었지만 크리스마스라는 개념은 이미 타이완사람의 머릿속에 박혀 있었습니다.

타이완 일본 식민지 시대 산타클로스 관련 보도 - 사진: 타이완추억탐험단
다음으로 바로 앞에 소개해 드린 장제스 전 총통 내외의 이야기입니다. 장 총통은 독실한 기독교 신도로서 228사건이 일어난 1947년에 대국민 담화를 통해 헌법제정과 크리스마스가 가진 특별한 의미를 접목시켰습니다. 비록 타이완 국민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아시아 첫번째 민주공화국인 중화민국의 헌법 제정을 확립했습니다. 총통 내외의 추진, 그리고 훗날에 활발해진 상업활동으로 크리스마스는 타이완에서 현지화하여 모든 사람이 즐기는 명절이 되었습니다. 이는 타이완의 다민족 문화와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죠.
크리스마스를 맞아 타이난에 위치한 타이완문학관이 5년 만에 다시 크리스마스 트리를 선보였는데요. 지난 12월 8일부터 오는 2월 25일까지 매일 밤 5시반 문학관 앞에 있는 트리의 조명이 켜집니다. 나무 모양의 일반 트리와 다르게 올해는 현대적, 과학적인 디자인에 타이완 전통 요소를 가미했습니다. 선형을 이룬 은백색 구조물에 알록달록한 조명을 더해 전형적 크리스마스 트리와는 전혀 다른 세련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트리 위에 스타 토퍼 대신 타이완 전통 결혼식 또는 사찰 행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그란 붉은 테이블을 올려놓아 타이완만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낮에는 타이완문학관 건축과 어울리는 조형물, 밤에는 타이난 시내를 밝혀주는 희망의 빛입니다.


남다른 세련미를 보여주는 타이완문학관 크리스마스 크리 - 사진: 타이완문학관
이색 크리스마스 트리 외에 문학관도 크리스마스에 관한 타이완 문학작품 리스트를 공개했는데요. 이 중 ‘에세이 대가’로 불리는 치쥔(琦君 기군, 본명 潘希珍 판시전)의 작품 〈크리스마스 이브(聖誕夜)〉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치쥔의 작품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필치로 옛일을 다루는 것이 특징인데, 그의 작품은 타이완 중고교 국문 교과서에 여러 차례 선정된 바 있습니다. 의무교육을 받은 타이완 학생이면 누구나 치쥔이 낯설지 않을 겁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치쥔이 중학교 때 외국인 영어교사와 만났던 이야기를 다루며 신앙과 사랑의 힘을 그려냈습니다. 선생님을 처음 봤을 때 치쥔은 선생님의 남다른 외모를 보고 많이 무서워했는데, 선생님은 그에게 “자 봐봐, 너는 손가락 열 개가 있고 나도 손가락 열 개가 있는데,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라며 치쥔을 위로했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 아래 그는 영어에 능통해졌을 뿐만 아니라 종교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연세가 높은 선생님은 건강이 날로 나빠져 결국 방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화장으로 병색을 감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선생님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사탕과 선물을 준비해 학생들과 보내기로 했는데요.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기색이 가득한 치쥔에게 “평소에 기도했냐”고 묻고 치쥔은 “기도를 했는데도 계시를 얻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의 기도는 거센 풍랑이 잠잠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길고 긴 밤이 지나고 크리스마스 아침에 눈이 내렸습니다. 학생들이 위독한 선생님을 둘러싸아 기도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치쥔에게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았다”는 일깨움을 알려주고 편히 눈을 감았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치쥔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따뜻함이 가득찬 날입니다.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부터, 크리스마스, 신정, 설날, 정월 대보름까지, 타이완의 연말은 현재와 과거, 서양과 동양, 세계와 타이완을 연결해 주는 기쁨의 날입니다. 올해 타이완문학관 크리스마스 트리의 이름 ‘포르모사에서 만개하는 꽃’처럼 타이완의 크리스마스는 모두를 받아들이는 행복한 날입니다. 그럼 청취자 여러분, 다시 한번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Geta君的台湾塾,「每年12/25,你會想到聖誕節還是行憲紀念日?」,TVBS。
2. 陳柔縉,「為何馬偕在世時,台灣北部教會從未慶祝聖誕?99%人不知道,這牧師拒過耶穌生日真正原因」,風傳媒。
3. 「寶島萬花特展」,臺灣文學館。



Rti 중앙방송국
Rti 중앙방송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