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타이완 남부 최대 도시인 가오슝에 가보셨다면 가오슝 시내를 오가는 지하철이 낯설지 않으실 건데요. 특히 지하철 노선 중심에 위치한 메이리다오역(美麗島站, 미려도역)은 여러 외국 언론들에 의해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역의 하나로 꼽힌 바 있습니다. 2008년 가오슝 지하철이 개통된 후 메이리다오역 지하 1층의 천장에 있는 유리 예술작품 ‘빛의 돔(光之穹頂)’이 큰 화제가 되어 가오슝의 랜드마크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저와 같이 10대였던 타이난 학생들은 주말에 항상 기차를 타고 가오슝에 가서 이 예술작품의 라이팅 쇼를 보곤 했습니다. 화려한 라이팅 쇼 외에 저는 ‘메이리다오’라는 역 이름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눈치 채신 분들이 아마 계신 것 같은데, 메이리다오는 바로 포르모사 타이완입니다. 16세기 포르투갈사람들이 타이완섬을 지나갔을 때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Ilha formosa!’ 외쳐서 타이완은 포르모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가오슝 지하철 메이리다오역 지하 1층에 있는 유리예술작품 '빛의 돔' - 사진: 가오슝시관광국
어제 12월 10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인권의 날(Human Rights Day)’이었습니다. 1948년 12월 10일 국제사회는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기 위해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했고, 해마다 이날에 인권 의식을 높이고자 하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합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인권의 날 뿐만 아니라, 12월 10일은 메이리다오역의 이름이 비롯된 곳이기도 합니다.
1970년대의 타이완은 시국이 매우 불안정한 격동의 10년이었는데요. 내부적으로는 피비린내가 나는 백색테러와 1975년 장제스 전 총통의 별세, 외부적으로는 1971년 중화민국의 유엔 탈퇴, 1972년 타이완-일본 단교, 2차례의 석유 파동, 1979년 타이완-미국 단교 등 중대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중 1979년 12월 10일에 일어난 ‘메이리다오 사건’은 228사건 이후 규모가 가장 큰 민중봉기로 타이완 민주화운동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페이지입니다.
메이리다오 사건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한 노래를 틀어야 하는데요. 지금 청취자 여러분들이 듣고 계시는 노래는 1977년 발표된 ‘메이리다오(美麗島)’입니다. 가사는 단쟝대학교(淡江大學) 독어독문학과 량징펑(梁景峰) 교수가 타이완의 첫 번째 여성 시인인 천슈시(陳秀喜)의 작품 <타이완>을 각색한 겁니다. 시인은 타이완을 어머니의 요람으로, 풍부한 자원을 어머니의 모유로 묘사해 타이완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작곡가 리솽저(李雙澤)가 녹음 전에 의외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지인 양주쥔(楊祖珺)과 후더푸(胡德夫)가 대신 녹음을 완성하고 그의 장례식에서 처음으로 노래를 공개했습니다. 타이완이 점차 국제적 위상을 잃어버리던 1970년대, 국제화의 물결 속에서 타이완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관심을 환기하도록 ‘메이리다오’를 비롯한 타이완 민요들은 대대적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천슈시(陳秀喜) - 타이완(臺灣)
形如搖籃的華麗島
요람과 같은 화려도는
是 母親的另一個永恒的懷抱
어머니의 또 다른 영원한 품안
傲骨的祖先們
강직한 선조들이
正視著我們的腳步
우리의 발걸음을 지켜보고 있다
搖籃曲的歌詞是
자장가의 가사는
他們再三的叮嚀
그들이 거듭 당부하는 것
稻 草
볏짚
榕 樹
용수(반얀나무)
香 蕉
바나나
玉蘭花
옥란화(목련)
飄逸著吸不盡的奶香
다 빨 수 없는 젖내를 풍기고 있다
海峽的波浪衝來多高
해협의 파도가 얼마나 높게 밀려오는지
颱風旋來多強烈
태풍이 얼마나 강하게 휘몰아치는지
切勿忘記誠懇的叮嚀
간곡한 당부 잊지 마라
只要我們的腳步整齊
우리의 발걸음만 가지런하면
搖籃是堅固的
요람은 튼튼해지고
搖籃是永恒的
영원할 것이다
誰不愛戀母親留給我們的搖籃
누가 어머니가 넘겨준 요람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정치적으로 파란만장한 1970년대, 국민당 이외의 새력이 주도한 사회운동은 ‘당외운동(黨外運動)’, 이러한 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당외인사(黨外人士)’라고 합니다. 당외운동의 목표는 국민당의 독재정권에 반항하며 타이완의 자유와 민주를 쟁취하는 데 있습니다. 1950-60년대 당외인사들은 주로 잡지를 창간해 정치적 주장을 퍼뜨리며 1970년대 이후부터는 선거를 통해 보다 조직화된 운동을 추진했습니다. 계엄령 해제의 전해인 1986년 당외인사들로 구성된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이 창당되었으며, 2000년 대선에서 국민당 후보를 물리치고 타이완에서 사상 최초로 선거를 통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뤘습니다. 민진당 창당 초기에 지도층 중에는 메이리다오 사건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1979년 8월 당외운동의 선구자이자 향후 민진당 당대표를 맡은 황신졔(黃信介)는 노래 메이리다오, 그리고 역사서《타이완통사》 중의 문장(婆娑之洋,美麗之島)을 바탕으로 ‘메이리다오 잡지’를 창간했고, 창간 경축대회에서 모두가 메이리다오를 합창했는데요. 정당설립의 자유가 부재했던 당시 메이리다오 잡지는 ‘이름이 없는 정당’으로 국회와 지방 장관의 전면 재선거를 호소했습니다. 잡지의 인지도와 영향력이 놀라운 속도로 높아지면서 지도층은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에 가오슝에서 대규모 행진을 거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부터 타이완 곳곳에 있는 잡지사 사무실과 창간자 황신졔의 저택이 잇따라 파괴되었고 행진의 신청도 가오슝 경찰서에 의해 여러 차례 기각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행진의 전날인 12월 9일 정부는 ‘교통 및 사회질서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텔레비전을 통해 가오슝 지역의 통행금지령을 긴급히 발포해 모든 시위행진을 금지했습니다. 잡지사의 가오슝 지사는 경찰들에게 포위되었고 경찰에 반항하는 잡지사 자원봉사자 두 명이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원래 행진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사람들은 가오슝에 가서 성원했습니다.
12월 10일 밤 6시, 예정된 행진 장소가 폐쇄되어 시위행렬은 가오슝 지사부터 다강푸 로터리(大港埔圓環)로 행진하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인권을 상징하는 횃불을 들고 로터리까지 행진한 후 불을 끄고 땅바닥에 앉아 시위를 게속했습니다. 이 때 경찰은 횃불이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최루탄을 발사하고 폭동 진압 부대를 출동시키며 대규모의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해당 로터리는 바로 지금 가오슝 지하철 메이리다오역이 있는 곳입니다.

1979년 12월 10일 저녁에 일어난 메이리다오 사건 - 사진: AP(미국연합통신)
시위대와 경찰 양쪽은 모두 큰 부상을 당했지만 당시 언론사들이 경찰과 헌병의 입원 소식만 보도해 당외인사에 대한 타이완 국민의 불만을 조장하려 했습니다. 12월 13일 아침 6시부터 정부는 행진에 참여한 당외인사와 시민들을 체포해 구타, 위협, 수면박탈, 전기고문 등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통해 당외인사들을 학대했습니다. 당시 입법위원이었던 황신졔를 체포하려면 입법원의 동의가 필요했는데, 입법원 회의에서 체포동의서가 밝힌 후 만장에 박수소리가 울리며 일부 입법위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입법원장은 즉각 가결을 선포했습니다. 황신졔, 스밍더(施明德), 장쥔홍(張俊宏), 야오쟈원(姚嘉文), 린이슝(林義雄), 천쥐(陳菊), 뤼슈롄(呂秀蓮)、린홍쉬안(林弘宣) 등 8명 핵심 인물은 사형과 같은 반란죄로 기소되었고, 이들을 변호하는 변호인단에는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 수전창(蘇貞昌) 전 행정수반, 셰창팅(謝長廷) 주일대사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이리다오 사건의 피고인들을 변호했던 변호인단, 천수이볜(陳水扁, 앞우1) 전 총통, 수전창(蘇貞昌, 앞우2) 전 행정수반, 셰창팅(謝長廷, 앞우2) 주일대사 등이 포험되어 있다. - 사진: Linda Gail Arrigo 제공
1980년 3월 18일 타이완의 미래를 바꾸는 획기적인 심판 ‘메이리다오 군사재판(美麗島大審)’이 시작되었습니다. 백색테러 시대에 반란죄는 비공개로 진행된 군사재판이었는데, 미국을 비롯한 국제적 압력으로 정부는 공개 심판을 동의했을 뿐만 아니라, 9일간에 걸친 재판 과정과 피고인의 진술을 국내 신문에 게재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요. 이는 전례없는 엄청난 양보였습니다. 삶이 곧 끝난다고 자각하는 소탈함 때문인지 피고인과 변호인단은 법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당당하게 진술해 엄숙한 군사법정을 당외인사들의 정견발표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또한 언론 보도를 통해 그들의 생각과 정신은 처음으로 정치를 자유롭게 논할 수 없었던 전 타이완 국민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심판 결과, 한 명은 무기징역, 나머지 7명은 12-14년의 징역을 받았으며, 이 8명 외에 일반 법원에서 심판된 자 중 30여 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1990년 리덩후이 전 총통이 취임하자 메이리다오 사건의 정치범들을 전부 사면했습니다. 반란죄로 기소된 8명 피고인과 그들의 변호사들은 훗날에 민진당의 핵심 인물이 되어 타이완 정계에서 활약해 왔습니다.
메이리다오 사건은 1979년 서울의 봄,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마찬가지로 즉각적인 민주화를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1987년 민주화의 튼튼한 기초를 다졌습니다. 애초에 정치적 성향이 전혀 없었던 노래 메이리다오는 메이리다오 사건으로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노래는 훗날에 당파와 정치성향을 불문한 민중가요로 자리매김했는데, 1990년 야백합운동(野百合學運), 2006년 천수이볜 전 총통 퇴진 시위, 2012년 마잉주 전 총통의 대선 로고송 , 2014년 해바라기 운동(太陽花運動), 2016년 차이잉원 총통 취임식 등 자리에서 모두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가오슝 지하철을 타실 때 아름다운 리이팅 쇼 뿐만 아니라 메이디다오 사건의 역사순례를 한 번 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주 수요일에 방송될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에서 1987년 타이완 계엄령 해제 이전의 민주화 사건을 계속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許瑜菁、鄧宇青,「全球最美捷運站,美麗島站排第二」,ETtoday。
2. 胡慧玲,《臺灣之春:解嚴前的臺灣民主運動》。
3. 台灣研究基金會,《三代臺灣人:百年追求的現實與理想》。
4. 李筱峰,〈美麗島事件的回顧與省思〉。
5. 鄭睦群,「美麗島的歲月:新總統的就職選曲,曾是不能在臺灣傳唱的禁歌」,故事。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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