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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주인공일까? 덩쥬윈(鄧九雲) 《여자 조연배우(女二)》

  • 2023.04.10
포르모사 문학관
제23회 타이베이 문학상에서 연금(年金, 보조금) 부문 대상을 수상한 《여자 조연배우(女二)》의 책 표지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여자를 통해 사람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전에 마음이 비어 있는 상태를 표현한다. - 사진: Readmoo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지난 2월 타이베이 국제 도서전에서 교류를 펼친 한국 작가 홍칼리와 타이완 작가 덩쥬윈(鄧九雲)을 소개해 드린 바가 있는데요. 오늘은 제23회 타이베이 문학상에서 연금(年金, 보조금)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최신작 《여자 조연배우(女二)》를 출판한 덩쥬윈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해당 소설의 중국어 제목을 직역하면 ‘뉘얼(女二)’ 이라고 읽는데 타이완에서 ‘주연배우’와 ‘조연배우’라는 이분법적 호칭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출연 분량에 따라 남자 주인공은 ‘난이(男一, 남1)’, 분량이 가장 많은 남자 조연은 ‘난얼(남2)’, 여자 주인공은 ‘뉘이(女一, 여1)’, 분량이 가장 많은 여자 조연은 ‘뉘얼(女二, 여2)’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유추하자면 ‘난싼(男三, 남3)’, ‘뉘싼(女三, 여3)’, ‘난쓰(男四, 남4)’, 뉘쓰(女四, 여4) 등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만 ‘난이’, ‘뉘이’, ‘난얼’, ‘뉘얼’까지만 말하는 것은 대부분입니다. 

덩쥬윈의 《여자 조연배우》는 배우로서, 딸로서, 동생으로서 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배우이자 작가인 덩쥬윈은 줄곧 ‘배우’라는 직업을 ‘작가’ 앞에 둡니다. 이는 남이 자신이 더 이상 연기하지 않거나 연기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연기와 글쓰기 사이에 부딪치고 배우보다 작가로서 오히려 더 큰 성과를 얻은 덩쥬윈은 ‘연기를 포기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고 싶지 않고 결국 여자 배우에 관한 장편소설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덩쥬윈은 ‘연기 때문에 나는 글쓰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자신을 내려놓고 연기를 다시 배웠다’고 작성했습니다. 따라서 《여자 조연배우》는 덩쥬윈의 자전적 소설이자 그의 연기와 글쓰기의 집대성입니다.

《여자 조연배우》의 주인공 황청(黃澄)이 아버지가 부재한 집에서 태어나 12살 많은 언니 황쳰(黃茜)의 보살핌 속에 자랐습니다. 5살 때 황청은 언니의 학교 연극 공연을 보고 몸을 꿰뚫듯이 언니의 연기에 압도되었는데요. 그 후 황청은 배우가 되려는 꿈을 키우고 연기에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황청은 덩쥬윈과 같이 연예인 닮은꼴로 처음 인지도를 얻었고 연극부터 시도한 후 광고, 드라마, 영화에서 등장하게 되며 영국에서 연기학 석사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설정은 덩쥬윈이 자신을 황청에게 투사한 거죠. 

거울은 해당 소설을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지난 24일에 열린 《여자 조연배우》 신간발표회에서 덩쥬윈은 “연극할 때 흔히 하는 거울연습이 있는데요. 2인 1조로 한 사람은 주도자, 다른 사람은 거울에 비추듯이, 즉 거울상(鏡像, mirror image)처럼 주도자와 같은 포즈를 취합니다. 누구가 주도자인지, 누구가 거울상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연습하는 것은 포인트입니다. 소설에서 황청의 가장 중요한 거울상은 언니 황쳰입니다. 12살 차이인 두 자매는 띠동갑이고 황청에게는 마침 쌍둥이와 같지만 황쳰에게는 모녀와 더 가까운 거죠.”라고 설명했습니다. 책에서 등장한 황청의 독백들 ‘나는 언니가 되고 싶다’, ‘자화상을 그릴 때 거울을 보면서 그려야 한다. 그러나 언니의 삶은 나보다 훨씬 더 멋져서 나는 항상 언니를 보면서 자화상을 그린다’...... 황청의 인생에서 주인공은 늘 언니고 자신은 조연에 불과합니다.

그럼 언니 황쳰의 입장은 어떨까요? 어릴 적부터 안정감이 부재한 집에서 술주정이 심한 아버지와 맹목적으로 아버지를 사랑한 어머니 대신 가장 역할을 담당해온 황쳰은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성격상의 결함이 있습니다. 동생에 대한 사랑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황쳰은 자신이 계속 동생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동생이 배우가 되려는 꿈을 단 한 번도 마음속으로 지지한 적이 없습니다. 황청이 영화 신인상을 수상했을 때도 축하 대신 ‘가수 역할을 하니까 진짜 가수가 되면 어떻게?’라고 장난했습니다. 덩쥬윈은 “황쳰의 결함은 여자 사이에 자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자는 은근한 말이나 행동을 통해 자신을 경모하는 사람을 찌를 수 있습니다. 의심, 지적, 부정, 불신 등 부정적인 수단으로 사랑을 표하는 거죠. 따라서 제목에 ‘여자’ 두 글자를 넣었습니다. 저는 여자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언니에 대한 경모와 부러움은 동생을 배우의 길을 걷게 하며 안정감이 결여한 집안은 두 자매를 잘못된 사랑에 빠지게 했습니다. 대학교 때 황쳰은 어머니와 소개팅한 남자와 사귀다 결국 낙태로 사랑을 끝냈는데 황청은 배우로서 활동하면서 나이 차이가 많은 감독과 대등하지 않은 관계를 시작했습니다. 덩쥬윈은 ‘황청은 감독을 따라가는 것은 연극을 따라가는 것과 같고, 온몸으로 바치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착각했다. 평생 이렇게 산다면 망치는 것은 감독도 아니고 연극도 아닌 황청 자체이다.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여배우일 뿐’, ‘황청은 이 관계를 끝내고 싶지만 막상 하면 자신이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을까봐 두려워한다. 감독을 버리는 것은 연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은 결코 가망에서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작성했습니다. 황청이든 황쳰이든 두 자매 모두 독한 관계 속에 깊이 빠졌습니다.

언니 뿐만 아니라 황청은 늘 상대 배우를 가상적(假想敵)이나 경쟁자로 여기는데요. 여자 주인공의 대역으로 처음 영화 촬영에 참여한 황청은 여자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를 쭉 지켜봤습니다. 그는 모든 관객이 자신을 위해 영화관에 오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 과도한 경쟁의식과 열등감을 생기게 되었습니다. 미인 선발 대회에서 우승한 라이벌이 “큰 에이전시와 계약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황청도 같은 것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황청은 항상 남에 따라 행동합니다. 언니, 상대 배우, 경기에 있는 라이벌들 모두 황청의 거울상입니다. 덩쥬윈은 “내가 되게 얄미운 주인공을 만든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저는 황청만큼 이 세상의 거짓과 진실을 잘 드러내는 캐릭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황청처럼 다른 사람의 기대를 만족하기 위해 매일매일 하기 싫은 일을 하고 결국 스스로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덩쥬윈은 이처럼 사회가 정한 목표만 향해 달려가는 것을 깨기 위해 자신의 각성이 필요하다며《미운 오리 새끼》에서 등장한 오리 새끼는 오리가 아닌 백조라고 말했습니다. 남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하기만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지 않으면 영영 이 악순환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황청은 자신 이름 중 아무 색깔도 없는 투명함을 의미하는 청(澄)자보다 언니의 이름 중 석양과 노을의 색을 의미하는 쳰(茜)자를 더 선호했는데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그는 마침내 본색, 즉 자신 본래의 모습을 인식하는 중요성을 깨닫게 되어 더 이상 거울상을 통해 정체성을 활립하지 않습니다. 덩쥬윈은 ‘지금 황청은 더 확실하고 든든한 것을 추구하고 있다. 아무도 그를 생각하지 않을 때도 끊음없이 노력하고 있다. 그는 마음속에 남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에만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고 묘사했습니다.

타이베이 문학상 심사위원은 “덩쥬윈의 유창한 글솜씨로 통속적인 스토리에 생명에 대한 탐구와 철학적 사고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겉으로는 배우와 연예계의 이야기지만, 사실은 계급과 성별 권력에 대한 외침”이라며 덩쥬윈의 수상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저는 특히 추악한 인간성과 사람 사이 은근한 경쟁에 관한 덩쥬윈의 묘사에 무척 감탄했습니다. 

엔딩곡으로 타이완 여자 그룹 ‘SHE’ 출신, 현재 솔로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톈푸전(田馥甄)의 노래 ‘독선적으로(獨善其身)’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노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전에 우선 자기를 사랑한다는 내용을 다룹니다. 우리 모두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鄧九雲,《女二》。
2. 鄧九雲X蕭詒徽:我們是照鏡子後剩下的東西——談女二中的看與被看。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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