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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시인 - 우줘류

  • 2021.06.18
포르모사 문학관
본명이 우젠티엔(吳建田)이며,타이완 북부 신주(新竹)시 신푸(新埔)진 출신 하카인 작가이자 기자인 우줘류(吳濁流) - 사진: 위키백과

우줘류(吳濁流)는 본명이 우젠티엔(吳建田)이며,타이완 북부 신주(新竹)시 신푸(新埔)진 출신 하카인 작가이자 기자입니다. 1900년 일제시기에 태어나 중일전쟁과 제2차세계대전을 겪고, 1976년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우줘류는 어려서 전통 한문 교육과 일본식 교육을 모두 받았으며 1920년 타이베이사범학교(台北師範學校)를 졸업해서 교사로 21년이나 근무했습니다.  

우줘류는 일본어로 쓰인 소설로 가장 유명하지만 소설 쓰기를 시작하기 전 주로 한시(漢詩)를 썼는데요. 그는 완전한 일본식 교육을 받게 됐으나 한시에 대한 관심은 하나도 떨어지지 않고 1000편이 넘은 한시를 통해 일상 속의 사소한 일과 감정, 사상, 경험 등을 표현하고 ‘철혈시인(鐵血詩人)’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36년 우줘류는 하카인을 묘사한 그의 첫번째 단편소설 《수월(水月)》를 창작하고 《타이완신문학(台灣新文學)》이라는 문학 잡지에 게재됐으며, 두번째 소설 《시궁창 속의 황금잉어(泥沼中的金鯉魚)》는 문학 작품 공모전 1등상을 받았습니다.1940년 타이완 출신 교사를 능욕한 일본인 장학사에 항의해 사표를 내고 21년 동안의 교사생애를 끝냈습니다. 그다음해인 1941년 중국으로 건너가 약 1년 동안 기자로 일하고 나서 다시 타이완으로 돌아와 기자 활동과 작가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1943년 일본어로 첫 장편소설 《아시아의 고아》를 쓰기 시작해 2년 뒤인 1945년에 탈고했습니다. 원래 제목이 《후타이밍(胡太明)》이었던 《아시아의 고아(亞細亞的孤兒)》는 타이완 출신의 식민지 지식인 후타이밍(胡太明)은 타이완에서는 일본인 식민자에게 억압을 당하고 일본에 유학을 갔다와서 타이완 친우의 조롱을 당하고 나중에 중국으로 가서도 중국 사람으로 인정되지 못해서 차별을 받아 결국 정신 이상자가 되어버린 이야기로 타이완의 복잡한 정체성을 표현합니다.

1967년 그는 두번째 장편소설 《무화과(無花果)》을 창작했습니다. 《무화과》는 우줘류가 일제시기부터 제2차세계대전 후 초기 사이에 경험했던 일들을 소재로 한 자전적 소설입니다. 우줘류는 이 소설을 통해 식민통치를 받은 타이완 지식인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며1947년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인들을 학살한 2.28 사건을 기록하여 교훈을 잊지 말라고 효소한 겁니다. 소설은 2.28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어서 한참동안 금서였습니다.

1974년 우줘류는 세번째 장편소설이자 마지막 문학작품인 《타이완 개나리(台灣連翹)》를 완성했습니다. 《타이완 개나리》는 자전적 소설로  백색테러와 일제시기에 중국으로 가서 살다가 제2차세계대전 후 타이완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  2.28 사건에서 타이완 지식인 명단을 국민당에 제공해서 간접적으로 수많은 지식인이 학살을 당하게 만든 것을 묘사합니다. 소설 내용은 당시 아직도 활약하게 활동하고 있었던 정치인들에게 관련되어서 우줘류는 자신이 죽은 지 10년이 지나서야 이 소설을 공개하라고 친구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문학 창작 외에 우줘류는  작가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기 위해 1964년 잡지사 《타이완문예(台灣文藝)》를 창립하고 타이완 신규 작가를 많이 육성했습니다. 《타이완문예(台灣文藝)》는 1964년부터 2003년까지 40년동안 타이완 향토 문학의 중요 간행물로 제2차세계대전 후의 타이완 문학 발전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타이완문예(台灣文藝)》를 세운 다음해에 우줘류는 타이완 달라 10만원(한화 약 400만원, 210616기준)의 퇴직금으로 ‘우줘류 문학상’을 제정했습니다. 이 문학상은 현재도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타이완 문학의 중심을 이어갈 뛰어난 작가를 발굴하고 있습니다.

우줘류는 민족운동 최전선에서 정부와 직접 대항하지 않았지만 정부의 감시의 눈을 피해 목숨을 걸고 당시의 사회 현상이 담겨져 있는 여러 소설을 썼습니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일본 지배 하의 타이완 사회, 제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과 두려움을 겪은 타이완인의 모습, 광복 후의 사회 불안정과 경제 공황 형상 등을 엿볼 수 있니다. 우줘류는 ‘아첨하는 말은 문학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가 있는데 이러한 정직한 성격 때문에‘철혈시인’이라는 칭호을 얻을 수 있고 후대 사람에게 큰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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