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타이완 최대의 유리 공예 브랜드인 유리공방(琉璃工房)의 창립자이자 현임 예술감독인 양후이산(楊惠姍)은 과거 1980년대 타이완에서 가장 유명했던 배우였으나 사랑을 위해 연예계를 은퇴하고 유리 예술 분야에 투신하게 됐는데요. 오늘 연예계소식에서 양후이산을 주제로 방송을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양후이산의 배우 활동은 유성의 불꽃처럼 짧지만 찬란했습니다. 양후이산은 23세인 1975년 배우로 데뷔하여 이후 9년의 시간 동안 근 50편 영화에 출연했으나 연기보다는 ‘천사의 얼굴에 악마의 몸매’로 더 주목받았고, 그러다가 1984년 ‘백락(伯樂)’인 장이(張毅) 감독의 《위칭 아주머니(玉卿嫂)》에 출연하며 과거 선보였던 캐릭터들과는 전혀 다른 색깔의 연기를 보여주며 ‘찐배우’로 거듭났습니다. 《위칭 아주머니》는 타이완 문학의 거장인 바이셴융(白先勇)의 동명의 중편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로, 영화는 중일전쟁을 배경으로 하며, 젊은 과부 위칭이 자기보다 어린 남자 칭셩(慶生)과 사랑에 빠졌고 그를 위해 희생하며 모든 걸 다 해주지만 칭셩으로부터 배신을 당해서 결국 그를 죽이고 스스로도 목숨을 끊는 이야기입니다. 양후이산은 영화에서 ‘위칭’ 역을 연기하고 제29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위칭 아주머니》 외에, 양후이산이 주연한 《젊은 탈주범(小逃犯)》도 1984년에 상영됐습니다. 이 영화는 한 젊은 탈주범이 경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한 일반 가정집에 들어가서 숨는 이야기를 그리며, 한 도시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통해 근대화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외감이 점점 심각해지는 현상을 반영합니다. 양후이산은 영화에서 자녀보다는 사업과 취미생활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어머니를 연기했으며, 비록 주연 치고는 출연 분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연기력과 캐릭터 해석력으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양후이산은 이 영화로 동년의 영화시상식 금마장(金馬獎) 시상식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다음 해인 1985년 양후이산은 장의 감독의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我這樣過了一生)》라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는 장의의 아내 샤오사(蕭颯)의 소설 《샤페이의 집(霞飛之家)》을 각색해서 만든 것입니다. 샤오사는 1980년대의 타이완 대표적인 여류 소설가 중 하나이며, 16세부터 소설 창작을 시작했고 현재까지 근 20권의 소설을 발표하며 '천재소녀작가'라고 불렸습니다. 샤오사는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를 통해서 시나리오 작가의 대열에 합류하게 됐으며, 당시에는 장의와 양후이산과 함께 영화계의 ‘아이언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렸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는 1949년 중국에서 건너온 여자 구이메이(桂美)가 타이완에서 결혼하고 집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돈을 모으고 나서 타이완으로 돌아와 《샤페이의 집》이란 식당을 차리는 이야기입니다. 양후이산은 소박 근면하고 끈기있으며, 가정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마다하지 않는 전통시대의 여성 구이메이 역을 연기했습니다. 양후이산은 뚱뚱한 몸매의 성인 여성을 연출하기 위해 살을 무려 20킬로그램이나 찌웠으나 영화 촬영이 끝난 후 금방 또 원래 체중을 회복시키며 철저한 자기관리와 프로정신을 보여줬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는 제22회 금마장 시상식에서 최우수 영화상을 비롯해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색상 등 4관광을 차지하며, 양후이산도 금마장 역사상 최초로 2년 연속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가 됐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의 기세를 이어가며 샤오사, 장의, 양후이산은 이듬 해인 1986년 샤오사의 소설 《웨이량의 사랑(唯良的愛)》을 바탕으로 《나의 사랑(我的愛)》이란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양후이산과 장의가 파트너 관계를 넘어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면서 ‘아이언 트라이앵글’은 결국 파열됐습니다. 1986년 10월 18일, 샤오사는 <전남편에게 보내는 편지(給前夫的一封信)>라는 제목의 공개편지를 통해 전남편 장의의 불륜 사실을 밝히며 큰 화제가 됐습니다. 이 논란으로 인해 장의와 양후이산은 영화계를 떠났고, 《나의 사랑》의 성적도 부진했습니다. 《나의 사랑(我的愛)》을 촬영하던 당시 양후이산과 장의는 유리 예술을 처음 접하고 관심이 생겼으므로 영화계를 은퇴한 후인 1987년에 《나의 사랑》에 남자주인공으로 출연한 왕샤쥔(王俠軍)과 함께 타이완 최초의 유리 공예 브랜드인 ‘유리공방’을 창립했는데 그 전에 타이완에서 유리공예 미술창작에 종사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기 때문에 세 사람은 타이완 유리 예술 분야의 개척자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유리공방은 마침내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현재 타이완 타이베이, 중국 상하이, 베이징, 그리고 미국에 사무실을 두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50개 이상의 아트갤러리를 운영하고 있고 천 여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양후이산은 1995년 제3회 우수 중화문화예술 계승상을 수상하며 유리공예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았습니다.
영화 분야에서 정점을 찍자마자 사랑을 위해 영화계를 떠났으나 양후이산이 배우로서 이룬 빛나는 성취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 영화계 은퇴 후에는 좌절하지 않고 신속하게 다른 분야로 옮기고 수 년간의 노력 끝에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오늘 방송의 주인공을 양후이산으로 정하고 소개를 해봤습니다. 재밌게 들어셨으면 좋겠습니다.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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