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출신이자 중화민국 국가안전회의 비서장(사무총장)을 지냈던 후웨이전(胡為真) 전 외교관이 쓴 《국운과 천야》(國運與天涯)에 따르면, 어느날 천창환(沈昌煥) 당시 외교부 장관이 후웨이전 외교관을 불렀고, 사무실에 들어서자 어두운 표정에 沈昌煥 외교부 장관님에 지시에 따라 문을 걸어 잠그고 후 외교관님은 천 외교부 장관님 맞은 편에 자리 잡고 앉아 천 장관님이 하시는 말씀들은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선 문서에 표제는 중미관계 변화 발생 시 지침 매뉴얼, 그리고 단교 후 타이완과 미국이 체결한 협약을 이렇게 처리해라 이 조약은 이런 식으로 이어가라는 매뉴얼을 시작으로 미국에 있는 재산 처분 매뉴얼, 미국에 거주 중인 화교 연락 지침, 미국에 있는 타이완 대사관에 후속 처리 지침 등 총 9가지 조항을 말씀하시는 데로 받아적었고, 이어 천 외교부 장관이 문서를 기밀문서 보관함에 넣으라고 후외교관님께 지시해 집무실을 나서려고 하는데 갑자기 후 외교관님을 다시 불러 세웠답니다, 그리고는 웨이전 이리로 오게 한가지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네하고 말씀하시길 제 10조 외교부장 사임이라고.
그로부터 며칠 뒤 새벽에 잠을 자고 있던 후 외교관님께 천 외교부 장관님에게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당장 외교부로 가서 기밀문서 보관함에서 저번에 작성한 매뉴얼을 들고 ‘그곳’으로 가져오라고 지시한 것이죠.
매뉴얼을 가지고 ‘그곳’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이미 첸푸(錢復) 외교부 차장, 옌자간(嚴家淦) 부총통, 숭추위(宋楚瑜) 신문국 부국장,숭장즈(宋長志) 참모총장 등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자리에는 장징궈(蔣經國)총통이 있었죠.
후 외교관님이 가져온 문서는 곧바로 장징궈 총통에게 전해졌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바로 알 수 있는 참모관들이 모인 이 자리 짐작이 가시죠, 바로 1978년 12월 16일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 수립을, 타이완과는 단교를 선포하기 몇 시간 전에 장징궈 총통이 참모관들을 긴급 소집한 자리입니다.
후웨이전 외교관이 매뉴얼을 들고 달려간 ‘그곳’, 총통부가 아니라 바로 장징궈 총통의 관저 치하이위소(七海寓所) 입니다.
치하이위소(七海寓所)의 공간은 2008년 일부 공개되었지만, 공간 리모델링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타이베이 시 정부는 이르면 내년에 모든 공간을 개방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Rti 중앙방송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