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동아시아 최대 퀴어 퍼레이드인 ‘타이완 LGBT 프라이드(Taiwan LGBT)’가 지난 26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가운데, 샤오메이친(蕭美琴) 부총통을 비롯한 정부 고위층, 장완안(蔣萬安) 타이베이 시장, 그리고 제2야당 타이완민중당, 시대역량 등이 총출동했습니다. 샤오 부총통은 이 자리에서 “20여 년 전 수백 명만이 참여한 퍼레이드는 모두의 노력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가 되었다”며, “정부는 다원적, 진보적 가치 실현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장 시장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어라(love who you love,be who you are)”고 말했습니다.
또한 총통 임기 내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차이잉원(蔡英文) 전 총통도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유럽 순방 기간에 타이완의 동성결혼을 언급한 유럽 친구들이 많았다”며, “앞으로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우리가 멀고 먼 길을 함께 걸어왔고 민주주의와 무지개의 자부심으로 타이완의 가치를 세계에 증명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공존공영(邁向共融,交織共生Embrace Inclusion)’을 주제로 한 올해 퍼레이드는 차이 총통의 발언처럼 대화를 통해 모두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샤오메이친(蕭美琴, 핑크색 옷) 부총통을 비롯한 정부 고위층이 2024 타이완 LGBT 프라이드에 참여했다. - 사진: Rti
게이 작가 천쓰홍(陳思宏) 👨
장편소설 《귀신들의 땅(鬼地方)》으로 타이완 양대 문학상인 금전장(金典獎)과 금정장(金鼎獎)을 수상, 타향과 고향, 성별과 신체, 삶과 죽음을 작품에 다룬 게이 작가 천쓰홍(陳思宏)은 타이완 언론 ‘미러 주간(鏡週刊)’과의 인터뷰에서 1970년대 보수적인 농촌에서 자란 동성애자의 심정을 언급한 바 있는데요. 타이완 중부 장화(彰化) 용징(永靖) 출신인 그는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티비를 보다가 유럽 퀴어 퍼레이드에 관한 뉴스를 접했는데, 어머니가 동성애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시골에는 동성애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천쓰홍은 어려서부터 전통적인 남성과는 다른 성격을 보였지만 돌아가신 부모와 여섯 명의 누나들에게 공식적인 커밍아웃은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독일인 남편과 함께 고향에 간 적도 있지만, 말 대신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타이완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사랑을 입에 달고 사는 가정을 동경했습니다. 자녀의 성적 취향으로 갈등이 생긴 부모와 어떻게 화해하느냐는 독자의 질문에 그는 “모든 일이 화해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때로는 가족이 반드시 우리가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부분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타이완의 성소수자 권리운동이 약 30년을 지나면서 동성애는 더 이상 도시에서만 존재하는 막연한 단어가 아닙니다. 그러나 남들과 다른 성적 취향이나 성정체성 때문에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거나 차별을 당한 이들이 여전히 많고 사회적 존중이 필요합니다. 가부장제 아래 비뚤어지게 자란 이들의 모습이 천쓰홍의 작품에서 구현되었습니다. 과거 방송에서 소개해 드린 그의 대표작 《귀신들의 땅》은 최근 롼극단(阮劇團)의 연극으로 각색되어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작품, 그리고 천쓰홍 작가의 최신 소식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귀신들의 땅(鬼地方)》으로 타이완 양대 문학상인 금전장(金典獎)과 금정장(金鼎獎)을 수상한 천쓰홍(우) 작가 - 사진: CNA
귀신은 누구인가 😨
작가의 자전적 색채가 짙은 《귀신들의 땅》은 천쓰홍의 출신배경과 비슷한 장화 용징의 천씨 집안을 배경으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 억눌린 1970-80년대 타이완의 시대상을 그려냈습니다. 독일에서 살던 주인공 톈홍(天宏)은 독일인 연인을 살해해 투옥되었다가, 형기를 다 채운 뒤 음력 7월 15일 중원절에 용징에 돌아갔습니다. 타이완에서 귀신의 달이라 불리는 음력 7월은 귀신들이 우리가 사는 인간세계로 오는 날로 여겨지는데, 이 중 중원절에는 귀신들을 달래기 위해 성대한 제사를 지냅니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에서 소외된 농촌 마을 용징은 외지고 황량해 귀신을 기르고, 또 옛 기억은 귀신을 불러옵니다. 중원절에 귀신들의 땅으로 돌아간 톈홍은 과거에서 온 귀신들과 마주치기 마련입니다. 평생토록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지구 한 바퀴를 돈 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귀신은 가난과 억압의 화신입니다. 소설에서 1인칭 ‘나’는 이미 죽은 사람, 2인칭인 ‘너’와 3인칭의 이름은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천씨 집안의 모든 구성원에게는 비밀이 있습니다. 작가는 구성원들의 다양한 시점을 통해 가족의 비밀을 차근차근 파헤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타이완 현대사에서 비롯된 비극도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당시 질병으로 취급되었던 동성애자는 민주화 운동가와 같이 주류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었습니다. 톈홍의 부모와 누나들도 전통적인 가부장제에 억압된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뜻대로 살지 못한 이들은 귀신같이 형체가 없는 투명인간입니다.
이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을 소개하기 전에 타이완 대표 인디밴드 ‘노 파티 포 차오동(草東沒有派對, No Party For Cao Don)’의 ‘귀신(鬼)’을 띄워드립니다. 열등감과 슬픔에 휩싸인 심리 상태를 귀신으로 묘사하는 노래입니다.
소설에서 연극으로 💃🏻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비밀의 핵심에 가까워지는 소설과 달리, 10월 19~20일 장화 위안린(員林)에서 첫 공연을 한 《귀신들의 땅》 동명 연극은 무대를 대형 장례식으로 만들어 시작부터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습니다. 복잡한 소설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극단은 톈홍과 톈홍 어머니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남동성애자와 여성의 시각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을 부각시켰습니다. 대사 하나하나가 모두 소설에서 나왔지만 타이완 중남부 농촌의 일상을 반영하기 위해 모두 타이완어로 표현했습니다.
이 연극의 가장 큰 특징은 신(scene)과 신 사이에 나오는 타이완 전통예술 ‘란라오(弄鐃, lāng-lâu)’입니다. 란라오는 장례식에서 행해지는 민속예술로, 사람과 고인의 넋을 달래기 위해 광대들이 서커스처럼 다양한 잡기를 합니다. 무대 위에서 타오르는 횃불이 마치 도깨비불처럼 어두운 공연장을 괴상한 분위기로 물들여 명실상부한 장례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천쓰홍은 공연 후 QA시간에 소설의 창작 배경을 언급했는데요. 《귀신들의 땅》은 천쓰홍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 온 가족이 붉은 원형 테이블에 앉아 어머니의 이야기를 나눈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가족마다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 대화는 말다툼으로 끝났다고 합니다. 《귀신들의 땅》과 동명 연극은 이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적인 작품입니다.

타이완 장례식에서 행해지는 민속예술 ‘란라오(弄鐃, lāng-lâu)’ - 사진: 롼극단 제공

공연 후의 QA시간 - 사진: 안우산
천쓰홍은 《귀신들의 땅》은 외로움에 관한 소설이라고 합니다. 이에 한 연극 관객은 “캐릭터들은 이야기 끝에서 죽더라도 죽기 전에 원하는 것을 쟁취했고, 얻지 못하더라도 시도해봤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며 작가와 다른 관점을 공유했습니다. 천쓰홍은 이 피드백을 듣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외로운 존재지만 살아가면서 서로 많이 표현하면 외로움이 덜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로 무대 아래 있는 관객들도 덜 외로워 보였습니다.
《귀신들의 땅》은 최초로 한국에 소개된 천쓰홍의 소설로 한국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에 이어 최신작 《67번째 천산갑(第六十七隻穿山甲)》도 지난 9월 한국에서 출판되었습니다. 데이즈드 코리아(Dazed Korea), 씨네21 등 한국 언론에서도 천쓰홍을 인터뷰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내보냈으니 관련 기사를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추가로 최근 타이완에서 활동하는 치어리더 이다혜씨가 용징을 주제로 한 유튜브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천쓰홍의 작품과 함께 시청하시면 용징에 대해 더 깊은 인식을 갖게 될 겁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출판된 천쓰홍의 작품들 - 사진: 교보문고
▲관련 프로그램:
집이란 무엇인가… 천쓰홍(陳思宏) 《귀신들의 땅(鬼地方)》
▲참고자료:
1. 賴于榛,「台灣彩虹最耀眼 蕭美琴挺同志遊行盼多元價值更共融」,中央社。
2. 陳思宏,《鬼地方》。
3. 蔣宜婷,「【陳思宏專訪1】文學獎百萬獎金得主憶兒時 全家11口擠進4人座裕隆轎車」,鏡週刊。
4. 林琬玉,「喪葬儀式中的『弄鐃』是什麼?用雜耍娛人娛靈,讓人又哭又笑的心靈療癒」,觀點同不同。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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