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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절] 일제시기에도 ‘추석(중추절)’이 있었을까?

  • 2024.09.17
대만주간신보
2024 중추절 타이완 신베이시 하늘에 뜬 보름달. - 사진: CNA

오늘은 ‘일 년 중 가장 밝은 보름달이 뜬다’는 타이완의 중추절(中秋節), 한국의 추석(秋夕)입니다. 전통적인 명절에 현대인들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아무래도 ‘연휴'일텐데요. 타이완의 중추절은 당일 하루만 쉬는 반면, 한국은 구정 설 때와 마찬가지로 추석 당일을 포함한 앞, 뒤 날도 함께 쉬어 올해 추석은 14일 토요일부터 18일 수요일까지 5일간의 황금연휴 주어지는 시기이기도 하죠. 이곳 타이완에서도 추석 전 날인 16일 월요일 연차를 쓰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은데요. 바로 달콤한 연휴를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타이완이나 한국이나 1년에 몇 번 없는 이런 황금연휴에 많은 현대인들은 전통적인 예식이나 놀이 대신 아껴두었던 국내 여행지나 가까운 나라로 여행을 가는 사례가 부쩍 증가한 요즘입니다. 

타이완, 한국, 그리고 중국은 ‘음력 8월 15일' 추석/중추절을 오늘 날에도 세는 반면, 또 다른 이웃 나라인 일본은 오늘을 추석으로 세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일본은 ‘양력 8월 15일'을 ‘오본'이라고 해서, 공식적인 공휴일은 아니지만, 대개 회사들이 쉬어 많은 사람들이 연휴를 보내 일본의 대표적인 연휴 중 하나라고 하네요. 여름 밤에 마을 사람들이 다함께 거리로 나와 전통 춤을 추는 ‘본오도리' 행사를 하는 시기도 바로 이 때이고요. 

그렇다면 일본엔 ‘음력 8월 15일'을 세는 추석이 없을까요? 한국에서 흔히 알고 있는 ‘십오야(十五夜)'라는 말의 원조는 사실 일본의 ‘주고야'인데요, 이는 음력 8월 15일을 일컫는 용어로, 일본에서도 이 날을 보름달을 즐기는 날로 보냈다고 합니다. 달을 구경한다는 의미의 ‘츠키미(月見)' 즉 달맞이를 하는 날인 거죠. 한국에서 보름달 하면 흔히 떠올리는 달에 토끼가 방아를 찧는 다는 이미지는 사실 일본에서 들어온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에 들어오고부터 일본에서는 음력 8월 15일에 달맞이하는 문화가 급격히 사라졌습니다. ‘달’을 기준으로 날을 세는 고대 중국의 역법 체계인 ‘음력(농력)'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태양'을 기준으로 날을 세는 서양의 역법 체계인 ‘양력'을 일본이 들여오면서부터 인데요. 그렇다면 고대 중국의 ‘음력'을 기준으로 중추절/추석과 설을 세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던 타이완과 한국, 그리고 서양의 신문물을 일찌감치 받아들이면서 ‘음력' 대신 ‘양력'을 사용하게 된 메이지 일본. 이 두 문화가 공존하던 일제시기 타이완과 한국에서는 각각 추석/중추절이나 설과 같은 전통 명절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일제시기 타이완 서력 도입과 설 문화의 변화

1911년, 타이중 펑위안(豐原)에 사는 장리쥔(張麗俊, 1868-1941)은 음력 12월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 새벽 3시에 일어나 촛불을 켜고 조상을 공경하는 의식을 지냈습니다. 이때의 거리는 "여기저기 터지는 폭죽 소리로 묵은 해를 보내고, 집집마다 복숭아 나무판 부적을 달아 새해를 맞이한다"고 말했는데요. 아침 9시에 그는 아이를 데리고 종이돈을 태우고 오후에는 근처 절에 가 향을 피우고 배밭에서 놀다가 저녁에 만찬에 갔죠. 장리쥔의 일기를 보면 일제시기에도 타이완 사람들은 집집마다 전통 새해인 음력 설을 축하하고 여러 전통 의식으로 새해를 맞이하며 떠들썩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1895년으로 돌아가, 일본이 타이완을 식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근대화의 상징인 ‘서력(西曆)’이 도입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타이완 사람들은 기존에 지내던 전통적인 음력 설날과 함께 서력의 새해도 맞이하는 1년에 두 차례의 새해맞이 문화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1909년 일찌감치 공식적으로 기존에 사용하던 ‘태음력’을 폐지하였으나, 전통 명절을 성대하게 치루고 있던 타이완 사람들을 회유하기 위해 음력 설을 쇠는 것까지 금지하지는 않았었죠. 당시 신주(新竹)에 살았던 황왕청(黃王成) 씨는 공립학교 교사를 지냈던 인물로, 그의 일기를 보면 그는 학교에서는 더이상 음력 설에 쉬지 않아 아이들 가정에 다소 영향을 미쳤다고 써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지배하에 있는 공기관들은 양력을 기준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문화를 점차 도입하고 있었으나, 민중들의 문화는 결코 쉽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1910년대 말에 이르러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1919년 덴 켄지로(田健治郞) 총독이 타이완 총독부에 취임하자 그는 일본연장주의를 채택하고 동화(同化) 조치를 취했습니다. 타이완 도시의 상점들은 양력 설인 신정에 휴업을 하고 도시 문화에 적응한 타이완의 중상류층이나 지식인들은 점차 신정을 쇠며 일본이 들여온 설날 행사에 참여하기 시작했죠. 이렇게 새것과 옛것 이 한데 섞인 설날 문화가 타이베이와 같은 도시를 중심으로 성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타이완의 대표적인 지식인이가 상류층 인사였던 린셴탕(林獻堂) 집안은 1929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일본식 새해인 신정을 축하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자녀들은 양력 1월 1일 부모에게 설날 축하의 인사를 하고 공학교의 축하식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조상을 숭배하는 등 기존의 전통 제의는 ‘구력', 즉 ‘음력'을 기준으로 여전히 행해지고 있어, 그는 1년에 신정과 구정, 두 번의 새해맞이를 해야했습니다. 

“1920년대 이후 대도시의 중상류층 타이완인들은 보편적으로 '두 번의 새해맞이' 생활을 하게 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전시상황이 되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신임 총독 고바야시 세이조(小林躋造)는 황민화(皇民化)를 통치 방침으로 하고 타이완 사람을 “진짜 일본인”으로 개조하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 일환으로 음력 설을 쇠는 문화를 엄격히 금지하고, 음력 설날에는 '근로보국주간'을 실시하여 노동자들에게 계속 출근할 것을 요구한 것이죠. 이러한 강압적인 조치에도 음력 설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음력 설에는 돼지에 대한 수요가 특히 높아지는 날로, 1938년 장화(彰化)에서만 450마리의 돼지를 도살했다고 보고했는데, 이는 전년도에 비해 감소했지만 여전히 평소의 50마리보다 훨씬 높은 수량으로, 민중들은 여전히 몰래 설을 쇠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시기 일본의 강제점령으로 국권을 잃었던 조선에서도 조선총독부는 기존의 음력 설을 폐지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양력 설은 ‘신정(新正)’, 기존의 음력 설은 ‘구정(舊正)’이라고 불리게 된 것도 바로 일제강점기때 일본에 의해 붙여진 이름인 것이죠. 당시 경찰들은 음력설에 설빔을 입고 나온 조선 사람들에게 일부러 먹물을 뿌리기도 했다지요. 

설보다는 자유롭게 보냈던 중추절

설날은 이렇게 엄격하게 관리했던 반면, 음력 8월 15일을 쇠는 추석은 특별히 금지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조선에서도 그리고 타이완에서도요. 따라서 경성 도시에 살았던 조선인들은 각 가정에서 추석에 송편을 빚고 좋은 차례상을 준비해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문화가 계속 이어져왔다고 해요. 1938년의 추석 <매일신보> 보도에 따르면 전시하에도 조선인들은 여전히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성묘를 하러 가 “사람이 탈 수 정도로 초만원”을 이뤘다고 합니다. 물론 추석의 성묘문화를 부정적으로 서술하는 기사가 없었던 것 아닙니다. 추석을 ‘전근대적인 명절'이라 여겨서 ‘구(舊)추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으니깐요. 심지어 1930년대 이후에는 추석에 밀조에 대한 금지와 억압이 강화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소개해드렸다시피, 메이시 시기 이전 일본에도 음력 8월 15일이면 둥근 보름달을 맞이하는 전통문화, ‘츠키미'가 있다고 했었죠. 그래서인지, 일제시기 타이베이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추석 당일 밤, 지붕 밑이나 안뜰에 상을 차려 대나무 가지를 꽂은 둥근 자루와 삶은 밤, 꽃병 등을 올려 놓고 달을 맞이하는 의식을 치루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지금의 타이베이 수원(水源) 자리인 가와바타(川端)와 중산교(中山橋) 자리인 메이지교(明治橋) 주변에서요. 타이베이에 사는 일본인들의 달맞이 성지였던 두 곳 모두 큰 강이 흘러 강변이 조성되어 있는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달밤 하늘 아래 저마다 짧은 노래나 하이쿠(俳句)라는 일본 고유의 단시를 를 읊는 '음행회(吟行會)'를 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일본인들도 여전히 일본식 추석인 ‘츠키미' 문화를 계승하고 있었던 흔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메이지 일본 정부의 ‘서력(양력)' 도입으로, 타이완과 한국은 1년에 새해 맞이를 두 번하고, 기존의 음력 설 문화를 부정당하는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만, 이러한 일제의 강압 정책에도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며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통해 새해를 더욱 뜻깊게 보낼 것을 중시했던 타이완과 조선의 민중들 덕분에 두 나라는 지금까지 음력 설과 추석 문화를 잘 유지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참고문헌

     林玉茹, 〈過新年:從傳統到現代臺灣節慶生活的交錯與嫁接〉《臺灣史研究》 21(1),2014, 1-43.

     ​안주영, 일제강점기 경성의 음력 추석과 양력 마츠리, 서울민속학 제7호, 2020, 7-42.​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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