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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난 400] 수도는 왜 타이난이 아닌가? 타이완 수도 이전 과정 🌼

  • 2024.09.11
랜드마크 원정대
타이난 성 건립 400주년을 맞아 타이난미술관에서 열린 ‘투시·타이난(透・南城)’ 전시회 - 사진: 안우산

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글로벌 여행 플랫폼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에서 ‘타이완’을 검색하면, 톱10 명소는 타이베이101, 고궁박물원, 중정기념당, 마오콩 케이블카, 샹산(象山) 등산로, 룽산사(龍山寺), 타이베이 시립동물원, 양민산(陽明山) 국립공원, 난터우(南投) 르웨탄(日月潭), 화련(花蓮) 타이루거(太魯閣)의 순입니다. 르웨탄과 타이루거만을 제외하고 모두 타이베이에 있습니다. 국제적 인지도로 볼 때 타이베이는 틀림없이 타이완의 가장 유명한 도시죠. 하지만 역사적으로 타이베이가 수도로서 급성장한 것은 불과 150년 전인 1870년대 이후부터입니다. 

청나라 말기인 1875년 타이베이부(台北府)가 설치된 후 타이베이는 본격적인 도시 건설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1884년 타이베이 성곽이 완공되면서 시내에서 동문, 서문, 남문, 소난문, 북문 등 5개의 성문이 설치되어 오늘날 많은 지명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이어 1894년 타이완성의 성도(省會)가 타이베이로 이전됨에 따라 타이베이는 공식적인 수도가 되었습니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는 타이완총독부 소재지로 훗날의 정치·경제적 지위를 확립했죠. 


타이베이 북문 '승은문(承恩門)' - 사진: 가오잔셴(高贊賢) via 타이베이시관광국

그런데 비교적 늦게 발전된 타이베이는 어떻게 타이완의 고도 타이난(台南)을 대체해 수도로 부상했을까요? 네덜란드인이 1624년 타이난에 질란드아 요새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올해 400주년을 맞이했는데, 정씨왕국을 거쳐 청나라 말기까지 타이난은 줄곧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 18-19세기 타이완 3대 항구도시인 타이난, 장화 루강, 타이베이 멍자(艋舺)를 지칭하는 속담 ‘이푸얼루싼멍자(一府二鹿三艋舺, 1푸청, 2루강, 3멍자)’에도 선두에 섰습니다. 그 후 100년 동안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오늘은 타이완 수도의 이전 과정에 대해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타이완에서 가장 먼저 발전된 지역 '타이난' 🛳️

서양에 발견되기 전에 이 아름다운 섬 포르모사에 사는 사람은 원주민과 중국에서 온 소수의 한족뿐이었습니다. 당시 타이완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일본 해적인 왜구들의 보급소와 피난처였습니다. 17세기에 들어 네덜란드인은 중국과 무역하기 위해 마카오와 타이완 외딴섬 펑후(澎湖)를 목표로 삼았지만 포르투갈과 명나라에 잇달아 패배해 결국 명나라 영토가 아닌 타이완섬으로 건너왔습니다. 타이난 안핑(安平)에 상륙한 네덜란드인은 요새와 도로를 건설하는 한편, 현지 기후와 지형 조건에 잘 맞는 사탕수수와 벼를 도입해 대규모 재배를 시작했습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항만에 힘입은 타이난은 크게 발전되어 자연스럽게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같은 시기, 현재 타이완 남부 최대 도시인 가오슝은 수심 부족으로 작은 항구에 불과했습니다. 추가로 요새의 명칭 ‘질란드아(Zeelandia)’란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뜻하며, 타이난의 지리적 위치를 상징합니다. 


네덜란드인이 1624년 타이난에 세운 질란드아 요새의 유적지 - 사진: CNA

이어 청나라에 반항하는 명나라 장군 정성공이 1662년 네덜란드인을 몰아낸 후 타이완섬을  ‘반청복명(反清復明, 청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부활시킨다)’의 근거지로 삼았습니다.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둔전제(屯田制)’를 실시하여 황무지를 개척하고 도시 규모를 확대했습니다. 지금 지명에 ‘영(營)’자, ‘진(鎮)’자가 들어간 곳은 대부분 당시 군부대의 주둔지였고, 대표적으로는 신영(新營, 신잉), 류영(柳營, 류잉), 림봉영(林鳳營, 린펑잉), 좌진(左鎮, 줘전) 등이 있습니다. 문화 분야에서는 정씨왕국의 참모 천융화(陳永華)의 추진으로 타이완 최초의 학교 공자묘가 세워져 타이난의 문화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타이베이를 수도로 만드는 '찻잎'과 '철도' 🍵

그렇다면 17세기의 타이베이는 어땠을까. 1679년 타이완을 방문한 청나라 관원 위융허(郁永河)는 《비해기유(裨海紀遊)》에서 단수이(淡水)를 숲이 하늘을 가리고 사슴이 무리짓는 황무지로 묘사했습니다. 당시 북부 지역은 스페인과 네덜란드에 의해 점령된 바 있지만 계획적으로 개발된 타이난에 비하면 미개발지역이었죠. 특히 정씨왕국의 세력권은 타이난과 가오슝 일대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북부지역은 죄인의 유배지로 취급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청나라는 타이완의 전략적 중요성을 착안해 정씨왕국을 격퇴하고 타이완을 판도에 넣었습니다. 정부 소재지였던 타이난은 성곽이 세워진 후 '푸청(府城, 부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 변화가 생겼는데요. 타이완 경제발전에서 주도역할을 했던 사탕수수와 쌀 외에도 차와 장뇌는 국제 시장의 새로운 인기상품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로 인해 차와 장뇌 재배에 적합한 북부지역은 크게 발전되어 남부와 북부의 발전 격차를 줄였습니다. 


타이난의 대남문 '녕남문(寧南門)' - 사진: 타이난시관광국

철도의 개통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기차를 괴물로 여겨지던 시절에는 지방 세력이 뿌리깊은 타이난보다 늦게 발전된 타이베이는 신기술을 더욱 반겼습니다. 타이완이 일본에 할양되기 전까지는 지룽(基隆)-신주(新竹) 구간의 철도만 완성했습니다. 경제 중심이 북부지역으로 이전되면서 타이난은 수도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렸죠. 또한 최대 항구였던 안핑항은 토사 침적으로 더 이상 무역항의 기능을 갖추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타이베이, 수도로 확립 👑

이어서 일본 정부도 타이베이를 수도로 정했습니다. 일본 본토와 가까운 데다가 오래된 도시보다 백지 같은 타이베이가 관리와 현대화에 더 편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타이베이뿐만 아니라 지룽부터 핑동(屏東)까지의 서부 철도가 개통되면서 타이중(台中), 가오슝도 크게 발전되었습니다. 비록 타이난은 1930년대까지만 해도 타이베이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였지만 점차 신설 항구를 가진 도시인 가오슝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1949년 중화민국 정부가 타이완으로 이전한 뒤에도 현대화 시설이 잘 갖춰진 타이베이를 택했습니다.

지난 400년을 돌이켜보면 타이난과 타이베이의 운명이 참 다르죠. 2010년 6개 직할시인 6도(타이베이, 신베이, 타오위안, 타이중, 타이난, 가오슝)가 확립된 후 타이난은 6도 중 유일하게 지하철이 없고 인구가 가장 적은 ‘쓸데없는 직할시’라고 비아냥거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10년 동안 관광업과 과학단지로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경이 봉쇄된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잘 보존되어 있는 문화경관과 풍부한 길거리 음식을 통해 역경을 발전의 계기로 만들어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습니다.

▲관련 프로그램:
‘문화 사막’에서 ‘문화 오아시스’로! 타이완의 항구도시 가오슝(高雄)
“이곳으로 이주하고 싶다!” 살기 좋은 도시 1위 타이중

올해로 타이난 성 건립 400주년을 맞아 타이난미술관이 주최한 ‘투시·타이난(透・南城)’ 전시회가 지난 7월부터 9월 1일까지 타이난미술1관에서 열렸습니다. 예술장치, 문학작품, AI기술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400년 동안 타이난의 발전 과정을 미학적 관점에서 풀어냈습니다.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타이난은 더 이상 수도가 아니지만, 뿌리깊은 문화적 기반을 통해 문화 수도로 자리잡았습니다. 


'투시·타이난'에서 전시된 일본 식민지 시대의 변기 - 사진: 안우산

엔딩곡으로 네덜란드 시대 타이난을 배경으로 한 노래 ‘안핑 추상곡(安平追想曲)’을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透・南城:城市穿行四百年」,台南市美術館。
2. 張靜茹,「從流放荒地到現代都會──台北神話」,光華雜誌。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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