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밤, 타이베이 101에서는 “올림픽 2연패 기록(二連霸創奧運紀錄)”, “타이완의 자랑(台灣的驕傲)” “린양팀의 금메달 획득을 축하합니다.(恭喜麟洋奪金牌)”라고 적혀있는 등불이 타이베이 시내를 환하게 밝혔습니다.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 복식 결승전을 앞둔 4일, 타이완의 리양(李洋)과 왕치린(王齊麟) 선수는 중국팀을 상대로 짜릿한 우승을 차지하며 타이완에 첫 금메달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난 2020 도쿄 올림픽 금메달에 이은 2회 연속 금메달입니다. 결승에서 배드민턴 세계 최강인 중국 선수들을 만나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특히 남자 복식 세계랭킹 12위인 리양과 왕치린 팀은 결승전 상대로 세계랭킹 1위인 중국의 량웨이컹(梁偉鏗)과 왕창(王昶) 선수를 상대해야만 했죠. 다행히 타이완의 남자 복식팀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어 이들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환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난 4일, 타이완 시간으로 일요일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시작된 이 날 결승전에서 리양과 왕치린 선수는 1세트 21대 17로 비교적 순조롭게 상대를 제압했으나, 2세트에서는 18대 21로 중국의 량웨이컹과 왕창 선수에게 내주고 말았죠. 두 팀의 순위를 결정짓는 마지막 세트에서 선수들은 서로 점수를 주고 받으며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하다 결국 21대 19, 2점차로 타이완의 리양와 왕치린 선수가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우승이 확정되자, 리양 선수는 코트 장 가운데 있는 네트 밑 그라운드에 새겨진 Paris 2024 로고 위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입을 맞추고, 왕치린 선수는 허리를 최대한 뒤로 젖힌 채 격하게 손을 흔들며 축하하는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특히 리양 선수의 축하 세레모니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데에는, 그가 이번 올림픽을 이후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겠다고 했던 발언과도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타이완 배드민턴의 간판인 다이즈잉(戴資穎) 선수와 마찬가지로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라스트 댄스’를 선보이는 리양 선수의 도전이 금메달과 함께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어 지켜보는 관중과 시청자들에게도 큰 감동을 선사했는데요.
경기 후 시상식에서 중화민국의 ‘국기가(國旗歌)’가 흘러나오자 왕치린 선수는 마지막까지 참아왔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두 선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지난 도쿄올림픽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관중 없이 우리만 노래를 불렀는데, 이번에는 관중들이 함께 노래를 따라 불렀다”며 두 선수는 경기장에 입장하자마자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을 보고 정말 놀랐고, 팬들의 응원이 경기를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경기장 속 리양과 왕치린 선수를 응원하는 관중들의 응원은 그리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타이완 팀을 응원하는 현장의 팬들의 백지판까지 압수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등 중국 관계자들이 관객석에서 안보 행위를 지휘하는 모습이 여러차례 포착되었기 때문인데요. 타이완과 중국의 경기인 만큼, 이 날 경기는 경기 시작 전 경기장 밖에서부터 강렬한 응원전이 펼쳐졌습니다. 1979년 이래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지정한 ‘차이니즈 타이베이(Chinese Taipei, 中華臺北)’라는 명칭으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 밖에 없는 타이완 선수들은, ‘타이완’이라는 국명은 물론, 청천백일만지홍기가 아닌 매화 모양에 올림픽 오륜기가 새겨긴 일명 ‘매화기’를 사용해야만 하죠. 금메달을 딴 리양과 왕치린 선수가 “삼민주의(三民主義)”로 시작하는 ‘국가(國歌)’ 대신 ‘국기가(國旗歌)’를 불러야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경기장 밖에서는 해당 규정이 적용이 안되므로, 결승전 당일 많은 타이완인들은 청천백일만지홍기를 흔들며 타이완을 응원하기도 했습니다.
중화민국 국기가 금지된 경기장 안에서 관중들은 국기 외에 ‘타이완(Taiwan)’, ‘린양(麟洋)’ 등이 써있는 슬로건을 들고 선수들을 응원했습니다. 그러나 한 남성이 ‘타이완’이라고 적힌 녹색과 흰색의 슬로건은 관계자로부터 강제 압수되는 등 각종 제지를 당해야만 했는데요.
쉐야주(薛雅俶) 주프랑스 타이완협회장에 따르면, 아직 어떤 슬로건을 쓸지 결정하지 못해 들고온 빈 백지판 마저 보안요원 3명에게 압수되었다고 중앙사(中央社, CNA)에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중국 팬들은 국제올림픽위원회가 허용한 크기를 초과하는 중국 국기를 가져와 낮은 층의 맨 앞줄 좌석에 앉아 시야를 가린다고 고발했으나 현장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중국의 간섭이 공정과 포용, 비차별을 강조하는 올림픽의 틀을 넘어섰다고 비판했습니다.
타이완의 정체성과 자결권을 둘러싼 양안 간의 날선 대립으로 인해 리양과 왕치린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은 선수들의 우승과 관계없이 경기장 현장에서 중국 측 관계자로부터 수많은 제제를 받아야했던 것입니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배드민턴 남자 복식 경기가 가져온 타이완의 정체성 문제는 또 다시 이슈가 되었습니다. 국민당 의원이자 칭화대 교수인 웡샤오링(翁晓玲)이 두 선수의 경기를 축하하는 문구로 위챗에 “중국인의 자랑(中國人的驕傲)”라고 발언해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기 때문인데요. 그러자 대학 내 그녀의 연구실에는 ‘중국인 교수’라는 쪽지가 붙기도 하고, 민진당 의원은 결승전에서 어떤 팀을 응원했냐며 그의 발언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사건이 커지자 당사자인 웡 의원은 “역사, 문화, 혈통 등 여러 방면에서 우리는 중국인인데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다”며 “중화민국 국민으로서 타이완에 사는 사람도 똑같이 중국인(中國人), 넓은 의미의 화인(華人)”이라며, 중요한 것은 두 선수를 축하하는데 있다고 반박했는데요.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딴 리양과 왕치린 선수가 오늘(7일) 오전 귀국해 타오위안 공항에서 금메달을 입에 무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CNA
오늘(7일) 오전, 금메달을 목에 건 리양과 왕치린 선수가 올림픽 일정을 마치고 타이완으로 귀국했습니다. 선수들의 귀국길에 라이칭더(賴清德) 총통은 귀국편 기내 방송을 통해 선수들의 선전에 감사를 전하며, “파리에서 도전하고 끝까지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많은 이들에게 격려가 되고 타이완도 단결할 수 있다”며 타이완의 화합을 전하는 메시지를 선수들에게 전했는데요. 선수들이 공항에 도착하자, 이곳에는 ‘중국인의 자랑’ 대신 ‘타이완의 빛(台灣之光)’이라고 적힌 플랜카드가 선수들을 반겼습니다.
리양과 왕치린 선수의 결승전 다음 날인 5일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에서는 한국의 안세영 선수가 중국의 허빙자오 선수를 물리치며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의 방수현 선수에 이어 28년 만에 여자 단식 금메달을 차지했죠. 그러나 경기 직후 안세영 선수는 인터뷰에서 협회를 가리키는 대표팀의 선수 처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해 그녀의 금메달은 한국 배드민턴계가 묵혀온 여러 문제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타이완의 리양과 왕치린 선수도 이번 올림픽 결승에서 중국 선수들을 이기고 2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영광을 기록하며 귀국했습니다만, 이들의 경기를 통해 재점화된 타이완의 정체성과 자결권 논란은 여전히 불타고 있습니다.
엔딩곡으로는 2024 파리 올림픽 중화 타이베이 팀을 응원하는 공식 주제가, ‘네버 기브 업(Never Give Up)’을 띄워드립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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