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아버지!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한국 그룹 위너의 멤버 송민호의 ‘겁’ 가사 중 하이라이트입니다. 여기에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와 인간 아버지로 이중적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송민호 부친이 방송에 얼굴을 비춰 아들을 응원하는 모습이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면서 인간 아버지의 대표 가사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반복되는 하루하루에 지키거나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아버지는 인생의 멘토로서 우리에게 조언을 해주고 앞길을 밝혀줍니다.
오는 8월 8일 목요일은 타이완의 아버지날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아버지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한국의 어버이날과 달리, 타이완에서는 아버지날과 어머니날을 따로 기념합니다. 8월 8일을 선택한 이유는 중국어 아버지 ‘바바(爸爸)’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날은 ‘88절(八八節, 바바제)’ 또는 ‘아빠절(爸爸節, 바바제)’로 불리기도 합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이날을 아버지날로 정한 나라는 타이완과 몽골밖에 없고 대부분은 미국을 따라 6월 셋째 주 일요일에 아버지날을 기념합니다.
아버지는 우리 인생에서 맡은 역할만큼 문학작품에서도 중요한 존재입니다. 타이완에서 아버지에 관한 작품 하면 주쯔칭(朱自清)이 1925년 발표한 수필 <아버지의 뒷모습(背影)>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집안에 변고가 생겨 의기소침해진 아버지가 저자를 기차역까지 바래다주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가장 회자되는 부분은 아버지가 뚱뚱한 몸으로 왔다갔다하며 저자에게 귤을 사주는 장면인데, 그때 저자는 늙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가수 송민호는 방송에서 “어릴 때 아빠는 늘 슈퍼맨이었는데 내가 성인이 되고 아빠도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는데요. 못할 게 없는 슈퍼맨으로 여겨지던 아버지가 늙어가면서 우리는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날을 맞아 오늘은 타이완 문학 속 아버지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적인 관점에서 1970년대 타이완의 시대상을 묘사한 황춘밍(黃春明)의 단편소설집 《아들의 인형(兒子的大玩偶)》은 타이완 향토문학의 대표작으로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1950년대 타이완 정부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 중국대륙을 수복하기 위해 추진한 ‘반공회향문학(反共懷鄉文學)’, 1960년대 미군과 함께 타이완에 들어온 모더니즘 문학에 이어 타이완이 1970년대 유엔 탈퇴, 미국과의 단교 등 외교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타이완 현지에 초점을 맞추는 향토문학이 대두하기 시작했습니다. 황춘밍의 작품에는 가난한 살림에 힘겹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담겨져 있는데, 이 중 당연히 형형색색의 아버지 캐릭터가 있습니다.

한국판 《아들의 인형(兒子的大玩偶)》 - 사진: 우리집은도서관
우선 소설 제목과 같은 <아들의 인형> 편에서 일자리를 잃은 주인공은 생계를 위해 어릿광대로 분장하고 극장 홍보판을 등에 맨 ‘샌드위치 맨’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퇴근 후에도 어릿광대 분장으로 아들과 놀아주고, 아들도 자신의 이런 모습을 매우 좋아하지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이 한심스러운 직업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느 날 극장 주인은 그에게 어릿광대 분장 대신 자전거를 타고 새 영화를 홍보하라고 했습니다. 일이 원하는 대로 진행될 것처럼 보였으나 퇴근 후 집에 들어가자 아들은 분장을 하지 않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 아내의 품에 얼굴을 박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는 아들을 달래기 위해 다시 어릿광대로 분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이야기죠. 아들에 대한 깊은 애정은 확실하지만 삶의 주체성과 자신의 참모습을 잃어버린 슬픔은 더욱 강하게 각인되었습니다. 아버지들이 가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바쳤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어 소설에 수록된 또 다른 단편 <사과의 맛(蘋果的滋味)>에서도 선명한 이미지를 가진 아버지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출근길에 주타이완 미군 장교가 몰던 차에 치여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일반적으로 한 집안의 경제적 버팀목이 교통사고를 당하면 많은 어려움을 가져오기 마련인데, 뜻밖에도 주인공 일가의 형편은 이 덕분에 크게 호전되었습니다. 사고를 친 미군 장교는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은 물론, 주인공을 호화로운 미군 병원에 입원시키고 청각장애인 주인공의 딸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야기 말미에 전화위복이 된 주인공은 가족들과 함께 비싼 미국산 사과를 먹으며 온 세상을 얻은 듯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사과가 맛있어서 웃는 건가요? 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과의 맛은 저자의 묘사처럼 “생각했던 것만큼 달지는 않고 신맛이 조금 나며 씹을 때 가짜 같다”입니다.
소설 창작 당시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던 타이완은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강대국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습니다. <아들의 인형>과 <사과의 맛> 중의 아버지 캐릭터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노력으로 운명을 바꾸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어릿광대 분장이든 미군의 협조이든 삶의 주도권은 늘 남에게 있습니다. 저자는 풍자적인 필치를 통해 자신의 앞길을 파악하지 못하는 타이완인의 심정을 그리는 동시에,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가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아버지들의 처지를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5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도 가슴에 와 닿는 작품이죠. 이 두 편의 소설은 1983년 영화 <샌드위치 맨>으로 각색되어 타이완 뉴웨이브 영화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황춘밍의 막내아들 황궈쥔(黃國峻) 작가가 2003년 32세의 나이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타이완에서는 살면서 가장 불행한 일로 ‘백발인송흑발인(白髮人送黑髮人)을 꼽는데요. 머리가 흰 사람이 머리가 검은 사람을 먼저 보낸다는 뜻으로, 부모가 자식을 잃은 경우를 일컫는 말입니다. 황춘밍은 이듬해 〈궈쥔은 밥 먹으러 돌아오지 않는다(國峻不回來吃飯)〉라는 시를 발표했는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로 볼 수 있습니다.
궈쥔아
네가 저녁 먹으러 돌아오지 않을 걸 알아
그래서 먼저 먹었어
엄마는 항상 조금만 기다리자고 했는데
너무 오래 기다리다 보니까 아예 안 먹었어
그 쌀 한 포대는 오래 먹었는데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고
심지어 쌀바구미까지 생겼어
엄마는 네가 밥 먹으러 돌아오지 않을 걸 알아
그래서 밥을 짓고 싶지 않아
엄마와 전기밥솥은 잊어버렸어
쌀을 얼마나 넣고 물을 얼마나 부어야 하는지
오늘에서야 알았어
엄마는 너를 위해 밥을 지으려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걸
네가 밥 먹으러 돌아오지 않으니
엄마는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않고
밥조차 먹고 싶지 않아
궈쥔아
1년이 지났는데, 너는 여전히 밥 먹으러 돌아오지 않았어
네 친구들을 위해 집에서 몇 번이나 볶음쌀국수을 만들었는데
양저(楊澤), 자오퉁(焦桐), 후이즈(悔之), 리얼(栗兒)...
그리고 위안저성(袁哲生)
오! 저성은 아니야
그는 3월에 왕쩐치(汪曾祺)의 책을 빌리러 집에 왔고
너의 사진을 보고 몇 마디 했어
그도 너처럼 밥 먹으로 집에 돌아오지 않을 거야
우리는 네가 밥 먹으러 돌아오지 않을 걸 알아
그래서 기다리지 않았어
일부러 너에 대해 말하지 않았어
하지만 네가 밥 먹으러 돌아오지 않아도
그 자리만은 영원히 거기에 있어
네 친구들은 내가 신맛이 좋아서
모든 음식에 식초를 넣었다고 놀렸어
나 정말 억울해
식탁에 가득한 시큼한 냄새가 어디서 나겠어
매실을 보며 갈증을 달래는 거야
네가 밥 먹으러 돌아오지 않는데
그 빈자리를 바라보며 누가 마음이 아프지 않겠어?
궈쥔아
國峻
我知道你不回來吃晚飯
我就先吃了
媽媽總是說等一下
等久了,她就不吃了
那包米吃了好久了,還是那麼多
還多了一些象鼻蟲
媽媽知道你不回來吃飯
她就不想燒飯了
她和大同電鍋也都忘了
到底多少米要加多少水?
我到今天才知道
媽媽生下來就是為你燒飯的
現在你不回來吃飯
媽媽什麼事都沒了
媽媽什麼事都不想做
連吃飯也不想
國峻
一年了,你都沒回來吃飯
我在家炒過幾次米粉請你的好友
楊澤、焦桐、悔之、栗兒……
還有袁哲生,噢!哲生沒有
他三月間來向你借汪曾祺的集子
還對著你的掛相說了些話
他跟你一樣:不回家吃飯了
我們知道你不回來吃飯
我們就沒等你
也故意不談你
可是,你不回來吃飯
那個位子永遠在那裡啊
你的好友笑我
說我愛吃酸的
所以飯菜都加了醋
天大的冤枉
滿桌的醋香酸味那裡來?
望梅止渴吧
你不回來吃飯
望著那個空位叫誰不心酸?
國峻

황춘밍의 아들 황궈쥔의 작품이 지난 24일 재출판되었다. - 사진: 연합문학
저희를 바르고 곧게 키워주신 아버지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엔딩곡으로 리중성(李宗盛)의 ‘새로 쓴 옛 노래(新寫的舊歌)’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 노래는 가수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치는 곡입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黃春明,《兒子的大玩偶》。
2. 黃春明,〈國峻不回來吃飯〉。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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