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작가, 화가, 사진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레이샹(雷驤)이 지난 29일 향년 85세로 별세했습니다. 레이샹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리위안(李遠) 중화민국 문화부 장관은 지난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레이샹은 생명을 사랑하고 삶을 즐기는 예술가라며,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는 태도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언급했습니다. 문학상 금정장(金鼎獎), 방송대상 금종장(金鐘獎), 예술상 금작장(金爵獎) 등 타이완의 국가급 영예를 받은 레이샹은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인 다재다능한 아티스트입니다.
레이샹은 1939년 상하이에서 태어나 9살에 가족과 함께 타이완 남부 자이(嘉義)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1956년 타이난 사범학교(현 국립타이난대학교)에 입학했고, 이듬해 타이베이 사범학교(현 국립타이완사범대학교) 예술학과로 전학했습니다. 졸업한 후 글을 쓰면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1967년 《문학 계간지(文學季刊)》에서 첫 단표소설 《견(犬)》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레이샹은 소설을 완성한 뒤 지인 치덩성(七等生)에게 원고를 보냈는데, 치덩성은 원고를 읽고 좋다고 생각해 《문학 계간지》 편집실에 보냈습니다. 편집실에서는 마찬가지로 소설을 좋게 보고 심지어 이미 문단에 입성한 치덩성의 작품인 줄 알고 바로바로 계간지에 편입했습니다. 결국 레이샹은 자연스럽게 《문학 계간지》에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죠.
1966년 창간된《문학 계간지(文學季刊)》는 치덩성, 레이샹, 위톈충(尉天驄), 천잉전(陳映真), 황춘밍(黃春明), 시수칭(施叔青, 지난주 소개해 드린 작가 리앙의 친언니) 등 모더니즘 작가들을 발굴해 타이완 문학사에서 중요한 잡지의 하나로 꼽힙니다. 그러나 천잉전을 비롯한 작가들이 중화민국 주재 일본대사관의 외교우편을 통해 좌파 서적을 타이완으로 수입해 독서회에서 돌려본 것이 고발된 후 관계자 36명이 국가전복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천영진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뤼다오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이는 ‘민주타이완연맹 사건(民主台灣聯盟案)’이라 불리며 타이완 백색테러 기간 문학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연루된 사건입니다. 이 일로 《문학 계간지》는 큰 타격을 받았고 비정기적으로 출간되었다가 1970년 10호를 끝으로 폐간되었습니다. 레이샹은 타이완문학관과의 인터뷰에서 천잉전이 체포되기 전 쓴 마지막 편지는 자신에게 보냈던 것이라며, 다행히 연루되지 않았고 그냥 넘어갔다고 토로했습니다.
《문학 계간지》를 통해 등단한 후 1980년대부터 티비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의 창작에 투신하기 시작했습니다. 20살에 혼자 자전거를 타고 타이완섬 한 바퀴를 도는 여행을 기점으로 타이완의 아름다움을 영상에 담았습니다. 또한 음악 프로듀서이자 가수인 큰 딸 레이광샤(雷光夏)와 함께 작업하고 후진들을 적극 발탁했습니다. 남다른 관찰력과 풍성한 감수성을 통해 타이완의 생명 이야기를 기록하고 <이미지 여행(映象之旅)>, <대지의 노래(大地之頌)>, <훌륭한 솜씨(靈巧的手)>, <작가의 모습(作家身影)> 등 티비 프로그램으로 타이완 방송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으로 꼽힌 금종장(金鐘獎)을 여러 차례 수상했습니다.
레이샹의 창작은 대부분 일상 생활에서 비롯되었는데, 주변의 아름다움을 기록하기 위해 항상 작은 수첩을 가지고 보고들은 것들을 스케치했습니다. 소설, 에세이, 그림에세이, 사진집, 그림책 등 37권의 저서를 출판했고 창작의 에너지가 강한 편입니다. 절친한 사진가 장자오탕(張照堂)이 지난 4월 별세했을 때도 페이스북을 통해 추모의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세월을 증명하듯 레이샹은 1987년 소설 《화살의 의지(矢之志)》로 중국시보 소설 추천상, 1993년 에세이집《슬픈 브람스(悲情布拉姆斯)》로 문화부가 개최한 국가급 문학상 금정장, 2018년 타이완 문화계에 크게 기여한 자를 표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타이베이문화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출판인이자 소설가인 푸웨안(傅月庵)은 중앙사와의 인터뷰에서 레이샹은 만능 예술가로서 문학적 성취가 간과되기 쉬운데, 사실 그의 작품 중 가장 흔한 형식은 글과 그림으로 경험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무시당하기 쉬운 시대에 가장 소박한 방식으로 타이완에 대한 사랑을 창작에 표현했다고 긍정했습니다.
레이샹은 2016년 치료를 위해 입원한 이후 공개 활동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레이샹 일가와 가깝게 지내는 작가 랴오위훼이(廖玉蕙)는 중앙사와의 인터뷰에서 레이샹은 큰 병에 걸린 후 그림 속 색채가 많이 밝아졌다며, 병은 그를 무너뜨리지 않고 오히려 격려시켰다고 언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미학교육에 투신한 레이샹은 학교들을 돌아다니며 회화와 사진 촬영을 가르치고 생일파트를 열어줄 정도로 학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며, 문학가, 사진가들이 구성된 ‘화우회(畫友會)’라는 예술동호회에서도 회장으로 추대되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레이샹은 창작은 생명 순환의 중요한 피드백 수단으로, 우리가 영양을 섭취하는 것처럼 몸의 소화를 거쳐 에너지로 변하여 자신 이외의 사람에게 피드백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반드시 ‘에이미에게 바치는 X번째 책’이라는 한 마디가 있는데, 에이미는 그의 아내입니다. 레이샹은 타이완문학관과의 인터뷰에서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심지어 살 수도 없었을 것”이라며, “그래서 작품에 그녀의 이름을 표기해 독자들에게 내 뒤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레이샹에게 창작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거나 부를 축적하는 도구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선순환을 이루는 매개체입니다.
마지막으로 레이샹의 딸 레이광샤의 최신곡 ‘휴업한 해수욕장(歇業的海水浴場)’을 추천드리고 싶은데요. 저작권 문제로 방송에서 틀 수 없지만 이 노래는 레이샹이 별세한 다음날인 30일 발표한 곡으로, 레이샹의 시 〈휴업한 욕장(歇業的浴場)〉을 모티브로 한 작품입니다. 가사는 레이광샤가 아버지와 작곡가 서숭룽(徐松榮)이 60년 동안 서로에게 주고받은 손편지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것이고 메인 비주얼도 아버지가 그린 그림입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지인이 모두 세상을 떠난 지금, 이 곡은 두 사람의 두터운 우정을 증명하는 중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레이샹의 작품들도 그가 존재했던 소중한 기록으로 이 세상에 영원히 남을 겁니다.
그럼 엔딩곡으로 ‘휴업한 해수욕장’ 대신 레이광셔의 다른 노래 ’잊고 싶지 않은 소리(不想忘記的聲音)‘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王寶兒,「藝術家雷驤辭世 文化部長李遠哀悼」,CNA。
2. 王寶兒,「雷驤逝世一生用筆與鏡頭記錄台灣 作品橫跨小說繪畫攝影創獨特風格」,CNA。
3. 雷驤美術館。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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