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최근 몇 년 간 타이완은 아시아 최초의 동성결혼 합법화 국가, 성평등 지수(Gender Inequality Index, GII) 아시아 1위 등 눈부신 성과로 전 세계에 알려지고 있지만, 불과 30년 전인 1990년대에는 뿌리 깊은 가부장제도가 많은 사회적 비극을 가져왔습니다. 남편 린아치(林阿棋)로부터 7년 동안 신체적·심리적 폭력을 당한 22살 여성 덩루원(鄧如雯)이 1993년 남편을 죽였습니다. 덩루원이 린아치와 결혼한 이유는 성폭행을 당해 임신했기 때문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린아치가 덩루원을 만나기 전에 덩루원의 어머니를 수차례 성폭행했고, 결혼 후에도 덩루원 일가를 계속 협박했다는 점입니다. 사건 발생 후 가정폭력과 여성 권익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자 관련 인권단체들은 덩루원에게 법적 협조를 제공하며 가정폭력에 관한 법 제정을 촉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관련법이 제정되기 전에 또 하나의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성평등 운동에 장기적으로 투신했던 펑완루(彭婉如) 전 민진당 여성부 주임이 1996년 살행당했습니다. 민진당 당내의 여성 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회의에 참석한 후 호텔에 가던 중 성폭행을 당하고 칼에 35번을 찔려 완전히 벌거벗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진범을 찾지 못해 미결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펑완루 사건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가운데, 입법원은 같은 해 ‘성폭력범죄방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며 교육부는 성평등 교육을 법제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덩루원 사건부터 추진해온 ‘가정폭력방지법’도 2년 후인 1998년 통과되었습니다. 수많은 비극을 겪으면서 타이완의 여성 권익은 날로 향상되며, 사회구조로 인한 성차별 의식도 점차 해소되고 있으나 성평등을 이루기엔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초등학교 여학생 수 명을 성폭행한 체조 코치 량메이종(梁梅宗)의 범행이 2018년 밝혀지면서 타이완 미투 운동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이어 직장 내 성희롱을 다룬 정치 드라마 <인선지인(人選之人)>이 2022년 공개된 후 타이완에서 또 한 차례의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언가를 이루려면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위에서 언급한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 그것도 타이완 민주화 이전인 1983년, 한 편의 문학작품이 보수적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요. 이 작품은 타이완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인 리앙(李昂)의 소설《남편 죽이기(殺夫 살부: 도살꾼의 아내)》입니다. 제목부터 임팩트가 강한 작품이죠. 가부장제 아래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 그리고 성학대, 성폭력 등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이 소설은 남편으로부터 오랫동안 학대당한 여성이 남편을 살해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제한된 시대에 논쟁적인 작품을 출판하기 위해 리앙은 타이완 3대 신문사의 하나인 연합보가 주최하는 문학상에 지원했고 운 좋게 소설 대상을 받아 약 한 달 동안 신문에 연재했습니다. 그러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신문사를 향한 항의 편지가 빗발치는 것은 물론 직접 리앙에게 팬티와 생리대를 보내 인신공격을 하는 독자도 있었습니다. 정부는 역시 이러한 파격적인 작품을 받아들이지 않고 리앙을 ‘빨갱이(공산주의자)’로 몰았습니다. 리앙은 지난 8일 《남편 죽이기》 동명 영화의 방영 이벤트에서 관련 이야기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李昂:「他說要把殺夫那塊剪掉,不要讓女兒看到所以剪掉,我們(聽到)就哈哈笑,你剪掉家裡的報紙,可是其他地方的報紙你剪不掉。」
리앙:“한 독자는 딸이 소설을 읽지 못하게 하려고 항상 그 부분의 신문을 자른다고 했는데, 저는 이 말을 듣자마자 웃었어요. 집에 있는 신문을 잘를 수 있더라도 다른 곳의 신문은 자를 수 없으니까요.”
李昂:「一個女讀者會寄內褲給一個女作家,因為那個時代他們不會把作品跟作家分開,一定你是這樣的人才會寫出這樣的小說,所以寄內褲的意思就是你需要很多內褲來更換,我想如果我是男作家的話大概不會受到這麼大的攻擊。」
리앙:“여성 독자가 여성 작가에게 팬티를 보낸 것은 그 시절 독자들이 작품과 작가를 따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생활이 음란한) 사람만이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다”, “팬티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저한테 팬티를 보냈죠. 제가 남자였다면 그렇게까지 공격받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지난해 《남편 죽이기》 출판 40주년을 맞아 출판사가 기념판을 출간했는데, 기념판에는 홍콩, 한국,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폴란드, 체코, 세르비아 등 15개 외국어판의 표지, 그리고 과거 연합보에 연재되었던 신문 지면이 수록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타이완 현대문학 중 번역본이 가장 많은 작품으로, 중요한 시대적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리앙은 같은 방영 이벤트에서 번역본의 출판을 언급했는데요.

2023년 출판된 《남편 죽이기》 40주년 기념판 - 사진: 링킹(聯經)출판사

한국어, 영어, 스웨덴어, 프랑스어판의 《남편 죽이기》
李昂:「早年台灣在國際間很難發聲,因為我們退出聯合國後基本上沒有國際地位,國家單位當然不會協助,甚至會打壓,曾經有一度的台灣社會不自由、不民主到這種地步。所以15個國家的翻譯與出版都是外國學者或出版社直接聯絡我來出版。」
리앙:“타이완은 (1971년) 유엔에서 탈퇴한 후 과거의 위상을 잃고 국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워졌는데, 당시 협조는커녕 정부가 앞장서서 작품의 출판을 억압할 정도로 자유롭지도, 민주적이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15개국의 번역과 출판은 모두 외국 학자 또는 출판사가 직접 저를 연락해서 출판한 거예요.”
《남편 죽이기》의 서문에 따르면, 이 소설은 1945년 상하이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인데, 리앙은 소설 첫머리에 “남편을 죽인 여자에게는 반드시 간부가 있다”는 전통 관점으로 여주인공이 남편을 죽였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여주인공이 간부와 함께 살인한 것이 아니라, 남편의 지속적인 성폭력, 그리고 가부장제에서 같은 여성을 혐오하는 이웃 여성들 때문에 범행을 저지렀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폭행을 당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간부와 함께 남편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수동적 자세에서 자신의 의지만으로 행동하는 능동적 자세로, 리앙은 파격적인 서사를 통해 보수적인 1980년대 타이완 사회에 핵폭탄과 같은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40년이 지났지만 가정폭력과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만큼 지금 《남편 죽이기》를 읽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40주년 기념판 소설 외에도 1984년 개봉된 동명 영화는 디지털 복원 작업을 거쳐 지난 6일 다시 상영되었습니다. 1980년대 타이완 농촌의 모습, 전통적인 돼지 도축 과정 등 추억 속에만 존재했던 장면들이 다시 생명력을 되찾았습니다. 리앙은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정부의 검열로 인해 많은 중요한 장면과 캐릭터의 정서가 영화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1980년대 타이완의 사회상을 잘 보존했다”며 “최근 영화를 보고 리메이크할 의사를 밝힌 관계자가 있는데, 새로운 작품을 기대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남편 죽이기》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소설 또는 영화를 직접 관람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므로 관람하는 데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엔딩곡으로 여성의 자주성을 호소하는 노래, 차이이린(蔡依林)의 ‘I’m not yours’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李昂,《殺夫》。
2. 余弦妙,「台灣性別平等 蟬聯亞洲第一」,經濟日報。
3. 徐禎苓,「女性同胞,革命尚未成功——與李昂談《殺夫》」,聯經50。
*1991년 한국에서 출판된 이 작품의 제목은 《살부: 도살꾼의 아내》였지만 보다 원활한 해설을 위해 중국어 제목을 직역한《남편 죽이기》로 소개해 드렸습니다.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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